♧ 해녀할망
아직도 슬지 않은 산호초 기억 같다
절대로 난 안 죽을 거야 팔십다섯까지는 물에 들고 싶다던 해녀할망 물 일이 마음먹은 대로 안 되었던가 눈발이 세차게 퍼붓던 어느 겨울날 테왁만 바다에 둥둥 떠다녔다 어서 물 위로 올라오세요 목숨줄 테왁도 없이 어느 바다를 헤매시나요 테왁 주인 찾으러 거센 바다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 간절함은 먹빛 되어 돌아왔다
다시 잔잔한 바다는 수런거렸다
아이고, 우리 할망 올라와서 참 착ᄒᆞ다
이 사람 저 사람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이렇게 올라왔구나
바다는 다시 물알로 물알로 외치고
돌고래 같은 설움만 휘몰이로 감겨진 해녀할망
끝끝내 손 놓지 못한 마지막 미역 한 줌
♧ 오징어 말리는 시간
내 삶은
거친 물살 지나간 물밑이다
빨랫줄에 켜켜이
배어나온 소금기는
조금씩
빠져나갈 뿐
억하심정 하나 없네
인생은 바다였다
망망한 순간 여행
울고 웃는 인간사 미련이야 없으랴만
한 번쯤
기억상실증에
걸리고도 싶었다
나도
메말라가는 연체동물 같았다
꿈 하나 사랑 하나
혼신으로 찾다가
자구내 가을바람에
추억마저 비운다
♧ 제주해녀․3
부르튼 굵은 손
짓무른 무감각에도
물에 들고 온 날은
아픈 몸이 낫는다
바다가
살아 있으니
제 몸도 출렁출렁
♧ 제주해녀․5
뇌선 한 포
털어 삼킨
이승꽃 잠수한다
물살과 한 몸 되는
꽃잎의 항곱사기
찰나에,
적울음*으로
뚝뚝 지는 관절통
---
*적울음 ; ‘적’이 울다는 말이다. 깊은 바다 속에 들어갔을 때, 물속에서 ‘뚝뚝’하는 소리가 난다.
♧ 제주해녀․9
꿈인 듯 감장돌던
청춘이 흘러갔다
물 위에
둥실둥실
허기진 미망사리
아직도
이팔청춘인
큰눈*만 쳐다본다
---
*큰눈 : 주로 해녀들이 물질을 할 때 물속을 들여다보는 둥그렇고 큼지막하게 만들어진 물안경
*김신자 시집 『용수리, 슬지 않는 산호초 기억 같은』 (한그루, 202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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