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5월호의 시(4)

김창집 2023. 5. 25. 10:13

 

 

감포 종점 - 박숙경

 

 

추령재를 지나면서부터 더 설레었네

 

포구에 닿으면

온 바다가 내 것인 양 들뜬 기분으로 읍내를 통과해야 하네

 

문득, 예리한 시선에 포착된 감포 종점

밤이 깊어야 했지만 분명 한낮이었고

나도 모르게 마포 종점이 입술을 빠져나왔네

있을 리 만무한 갈 곳 없는 밤 전차를 호출하는 사이

갈 곳 바쁜 자동차들은 녹슨 간판이 걸린 다방 거리를 지나가네

 

불행하게도 비는 내리지 않았고

오가는 사람들 눈빛에 담긴 무수한 기다림도 읽지 못했네

 

차들은 수평선 쪽으로 자꾸 달아나네

 

내가 이다음 지나가는 사람이 될 때 궂은비 정도는 내려주겠지

 

포구 맞은편 그야말로 옛날식 항구 다방 구석진 자리 물 날린 비로드 의자 위에 쓸데없이 명랑해지는 엉덩이를 주저앉히고 퀴퀴한 냄새 따윈 모른 체하며 늙은 마담의 주름진 손으로 건네는 칡차나 마시면서 연락선 뱃고동 소리가 얼마나 서글픈지 들어 보고 싶었네

 

생각 없이 지나가다 우연히 눈 맞은 종점을 생각하면

어디서 나처럼 늙어가지 싶은 첫사랑 하나쯤은 있어야 될 것만 같았네

 

 

 

 

시의 날갯짓 정해란

 

 

봄은 하늘로 자라는 별

별은 지상에 뿌리는 봄

태양은 눈이 되어 낮을 읽고

바람은 귀가 되어 밤을 쓴다

시인은 어느 길 찾아가나

구름의 눈썹 끝 가르던

새의 날갯짓이 월척인가

하늘 땅 경계도 막힘없이 풀어가는

의 날개

그 바다 속까지 유영하는

의 지느러미가 마침내 찬란하다

 

 

 

 

연꽃 박태근

 

 

납작한 잎사귀 띄워

연화가 오란 갑다

 

사풋사풋 들어간 미풍

설렁한 바람 일으켜 나울거린다

 

단아해 접근조차 어렵더니만

곱다란 옷 춤을 헐렁하게 풀어

한 주름 두 주름 벗어 물결에 띄운다

 

놀란 눈 비볐던 손을 때자

듬성듬성 머리가 난 멀대같은 놈

진즉 품 안에 자리 잡고 있었네

 

반해서 꿀꺽 삼킨 넋이

목에 걸려

! 튀어나오네

 

 

 

 

나비도 채 들

 

 

애벌레인 적 없는

나비가 없듯이

나비도 나비를 벗으면

허공을 입겠지

 

저 구름은

나비가 벗어놓은 오늘

저기 어디쯤 있을 나비도

 

언젠가는 나도

안개꽃 같은 구름 한 아름 안고

다다를 그곳, 나비도

 

오늘의 나의 어디쯤이지?

생의 등딱지가 가렵다

 

 

 

 

정희성

 

 

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 월간 우리5월호(통권 419)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