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신자 시집 '용수리, 슬지 않은 산호초 기억 같은'(3)

김창집 2023. 5. 23. 00:01

 

 

해녀할망

 

 

  아직도 슬지 않은 산호초 기억 같다

 

  절대로 난 안 죽을 거야 팔십다섯까지는 물에 들고 싶다던 해녀할망 물 일이 마음먹은 대로 안 되었던가 눈발이 세차게 퍼붓던 어느 겨울날 테왁만 바다에 둥둥 떠다녔다 어서 물 위로 올라오세요 목숨줄 테왁도 없이 어느 바다를 헤매시나요 테왁 주인 찾으러 거센 바다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 간절함은 먹빛 되어 돌아왔다

  다시 잔잔한 바다는 수런거렸다

  아이고, 우리 할망 올라와서 참 착ᄒᆞ다

  이 사람 저 사람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이렇게 올라왔구나

  바다는 다시 물알로 물알로 외치고

  돌고래 같은 설움만 휘몰이로 감겨진 해녀할망

 

  끝끝내 손 놓지 못한 마지막 미역 한 줌

 

 

 

 

오징어 말리는 시간

 

 

내 삶은

거친 물살 지나간 물밑이다

빨랫줄에 켜켜이

배어나온 소금기는

조금씩

빠져나갈 뿐

억하심정 하나 없네

 

인생은 바다였다

망망한 순간 여행

울고 웃는 인간사 미련이야 없으랴만

한 번쯤

기억상실증에

걸리고도 싶었다

 

나도

메말라가는 연체동물 같았다

꿈 하나 사랑 하나

혼신으로 찾다가

자구내 가을바람에

추억마저 비운다

 

 

 

 

제주해녀3

 

 

부르튼 굵은 손

짓무른 무감각에도

 

물에 들고 온 날은

아픈 몸이 낫는다

 

바다가

살아 있으니

제 몸도 출렁출렁

 

 

 

 

제주해녀5

 

 

뇌선 한 포

털어 삼킨

이승꽃 잠수한다

 

물살과 한 몸 되는

꽃잎의 항곱사기

 

찰나에,

적울음*으로

뚝뚝 지는 관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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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울음 ; ‘이 울다는 말이다. 깊은 바다 속에 들어갔을 때, 물속에서 뚝뚝하는 소리가 난다.

 

 

 

 

제주해녀9

 

 

꿈인 듯 감장돌던

청춘이 흘러갔다

 

물 위에

둥실둥실

허기진 미망사리

 

아직도

이팔청춘인

큰눈*만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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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눈 : 주로 해녀들이 물질을 할 때 물속을 들여다보는 둥그렇고 큼지막하게 만들어진 물안경

 

 

      *김신자 시집 용수리, 슬지 않는 산호초 기억 같은(한그루,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