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절 아침 – 양시연
그냥 가도 좋으련
아주 가도 좋으련
섬 건너 오름 건너 담장 건너 마당까지
온 세상 메아리 돌 듯 돌고 도는 돌림병
내 남편은 어디서 어떻게 걸렸을까
세상에 반항 한 번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순순히 받아들였나,
전단지 받아들 듯
아침저녁 겸상하고 숟가락 바꿔 봐도
스스로 네 인간성 네가 알 거라는 듯
내게는 구원의 손길 내밀지를 않는다
♧ 홀어멍 국수집 - 김미영
누구나 그렇게들 살아낸다 하지만
변소 표 공동수도
걸쭉한 욕 한 바가지
국수 맛 소문난 그 집 서문시장 한 귀퉁이
홀어멍집,
화투패도 딱 맞아떨어진 날
족발에 쌀막걸리 흥얼흥얼 탑동바다
그때쯤 어느 단골의 수작질도 보인다
하굣길 삼삼오오 재잘재잘 단발머리들
슬쩍 기운 사내 어깨,
“아빠 온댄 전화 왔어요”
새초롬 말 둘러대며 문 쾅 닫는 다락방
아버지도 저렇겠지 저렇게 기울겠지
이왕 그럴 거면 그 바람기도 놓아주지
어머니 술주정 같이 왔다가는 저 파도
♧ 동문아리랑 · 3 - 김현진
새벽 네 시 시장은 고기비늘 반짝인다
공판장 파도 소리 만 원 떼기 생선 상자
간밤에 어느 바다를 헤매다 온 것일까
“아이고 조캐 왔는가”
“아주망도 옵디강”
볼락 장수 할아버지 볼락만 한 눈으로
한 마리 덤이 없어도 분주한 저 발길들
총각 때 무작정 탄 제주 뱃길 안성호
“아이들 다 떠난 자리 좌판대만 남았제”
50년 섬에 살아도 여태껏 ‘육지 것’이네
하나 둘 마스크만 떠다니는 동문시장
볼락볼락 버텨온 볼락 장수 할아버지
“봅써게, 공짜 아니꽝 ”
밑밥을 또 던진다
♧ 소나기 – 강경아
칠월 내내 참았던 비 먼 갈 돌아오는가
세상 한 번 후려치고 창문에 와 적는다
기어코 살아 내자며 담쟁이와 하는 말
♧ 유행포차 – 고순심
비늘을 걷어내고 다진 물회를 떠올리는 건
다 갉아 먹힌 어머니를 떠올리는 일
유행포차에서 질근질근 씹는 어금니 사이로
가끔씩 걸리적거리는 어머니 생의 조각들
울음으로 쏟아질 것 같은 말을 걸러내면서
레몬 술잔 위로 떠오르다 다시 가라앉는 어머니
노오란 미소 단숨에 들이켜면
바로 튀어 오르는 어머니의 숨비소리
난바다를 튀어 오르다 잡혀 온 자리돔 껍질은
뒤뜰 귤나무 아래 조그만 불빛에도
어머니 눈빛인 듯 번뜩거리지
어머니의 일주기를 보내고 왔노라며
얼굴이 둥둥 떠다니는 술잔을 단숨에 들이키며
어금니 사이에서 걸리적거리는 생生을 걸러내면서
술잔 표면에 핑그르르 도는 이슬방울
까끌거리는 비늘을 소매로 쓰윽 훔치고 마는
유행 지난 유행포차에서
* 동인지 『바람집 사람들』 (황금알, 202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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