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동인지 '바람집 사람들'의 시(3)

김창집 2023. 5. 28. 03:05

 

 

부활절 아침 양시연

 

 

그냥 가도 좋으련

아주 가도 좋으련

섬 건너 오름 건너 담장 건너 마당까지

온 세상 메아리 돌 듯 돌고 도는 돌림병

 

내 남편은 어디서 어떻게 걸렸을까

세상에 반항 한 번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순순히 받아들였나,

전단지 받아들 듯

 

아침저녁 겸상하고 숟가락 바꿔 봐도

스스로 네 인간성 네가 알 거라는 듯

내게는 구원의 손길 내밀지를 않는다

 

 

 

 

홀어멍 국수집 - 김미영

 

 

누구나 그렇게들 살아낸다 하지만

변소 표 공동수도

걸쭉한 욕 한 바가지

국수 맛 소문난 그 집 서문시장 한 귀퉁이

 

홀어멍집,

화투패도 딱 맞아떨어진 날

족발에 쌀막걸리 흥얼흥얼 탑동바다

그때쯤 어느 단골의 수작질도 보인다

 

하굣길 삼삼오오 재잘재잘 단발머리들

슬쩍 기운 사내 어깨,

아빠 온댄 전화 왔어요

새초롬 말 둘러대며 문 쾅 닫는 다락방

 

아버지도 저렇겠지 저렇게 기울겠지

이왕 그럴 거면 그 바람기도 놓아주지

어머니 술주정 같이 왔다가는 저 파도

 

 

 

 

동문아리랑 · 3 - 김현진

 

 

새벽 네 시 시장은 고기비늘 반짝인다

공판장 파도 소리 만 원 떼기 생선 상자

간밤에 어느 바다를 헤매다 온 것일까

 

아이고 조캐 왔는가

아주망도 옵디강

볼락 장수 할아버지 볼락만 한 눈으로

한 마리 덤이 없어도 분주한 저 발길들

 

총각 때 무작정 탄 제주 뱃길 안성호

아이들 다 떠난 자리 좌판대만 남았제

50년 섬에 살아도 여태껏 육지 것이네

 

하나 둘 마스크만 떠다니는 동문시장

볼락볼락 버텨온 볼락 장수 할아버지

봅써게, 공짜 아니꽝

밑밥을 또 던진다

 

 

 

소나기 강경아

 

 

칠월 내내 참았던 비 먼 갈 돌아오는가

세상 한 번 후려치고 창문에 와 적는다

기어코 살아 내자며 담쟁이와 하는 말

 

 

 

 

유행포차 고순심

 

 

비늘을 걷어내고 다진 물회를 떠올리는 건

다 갉아 먹힌 어머니를 떠올리는 일

유행포차에서 질근질근 씹는 어금니 사이로

가끔씩 걸리적거리는 어머니 생의 조각들

울음으로 쏟아질 것 같은 말을 걸러내면서

레몬 술잔 위로 떠오르다 다시 가라앉는 어머니

노오란 미소 단숨에 들이켜면

바로 튀어 오르는 어머니의 숨비소리

난바다를 튀어 오르다 잡혀 온 자리돔 껍질은

뒤뜰 귤나무 아래 조그만 불빛에도

어머니 눈빛인 듯 번뜩거리지

어머니의 일주기를 보내고 왔노라며

얼굴이 둥둥 떠다니는 술잔을 단숨에 들이키며

어금니 사이에서 걸리적거리는 생을 걸러내면서

술잔 표면에 핑그르르 도는 이슬방울

까끌거리는 비늘을 소매로 쓰윽 훔치고 마는

유행 지난 유행포차에서

 

 

                     * 동인지 바람집 사람들(황금알,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