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손
작대기로 탁탁탁
털어내는 어머니
쭉정이 이리저리
흩어지던 시간 앞에
손안에 참깨 뭇들도
기꺼이 함께 했네
곰방메 섭골갱이
소라 보말 날미역
뜨인 눈 한 순간도
손을 놓지 않았네
어느 날
다 놓아두고
저 건너에 간 빈손
♧ 용수리 소고
단발머리 소녀가 넓미역을 따던 곳
그 건너 성창동네
긴 머리 땋은 숙자
캄캄한 콘크리트 속으로 하나둘 묻혀가네
절부암 열녀마을 굽이돌아 저 차귀도
용마저 떠날 것 같은 한숨을 푹푹 쉬고
찔레꽃
눈물 날리는
아버지의 당산봉
용수포구 접한 땅
급매물로 팝니다
힐긋힐긋 눈치 보는
감정가와 낙찰가
어쩌나,
내 소녀의 눈
용수리가 팔려가네
♧ 제주해녀․11
한평생 항해라야
발동선 하나였네
자나미* 뒤로 하고
물 말아 밥 한 숟갈
난바르
뱃길 물결은
해녀노래 추임새
상군해녀 오천 원 중군해녀 사천 원
물어멍** 무섭다고 안 든다면 하군해녀
삼천 원 뱃삯을 내고
항곱사는 인생사
---
* 지나미 : 제주시 한경면 용수 쪽에서의 동남풍으로 감돌아 부는 바람
** 물어멍 : 해녀들이 물질할 때 물 속에서 만난다는 유령의 하나
♧ 제주해녀․15
물질 없는 날 해녀들은
밭에서 품을 판다
해녀만큼 독한 이는
어디도 없을 거야
각시가
제일 겁난다는
지삿개 성환이 삼춘
살기가 편했으면
억척을 부렸을까
물일이 생각대로
호락호락하던가
나에게
맡겨진 물숨
전사처럼 사는데
♧ 제주해녀․17
숨을 오래 참다가
못 버텨 올라온다
뼈가 쑥 빠져가고
하늘이 노래진다
바다 밑
다시마 틈에
왕전복 붙었는데
두통이 몰려들고
정신이 아뜩해도
희뿌연 뇌선 봉지
해녀의 만병통치
다시마
넓은 팔 벌려
빗창을 기다린다
* 김신자 시집 『용수리, 슬지 않는 산호초 기억 같은』 (한그루, 2023)에서
'문학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인지 '바람집 사람들'의 시(4) (1) | 2023.06.02 |
---|---|
문영종 시집 '물의 법문'의 시(1) (0) | 2023.06.01 |
월간 '우리詩' 5월호의 시(5) (1) | 2023.05.30 |
동인지 '바람집 사람들'의 시(3) (4) | 2023.05.28 |
김신자 시집 '용수리, 슬지 않은 산호초 기억 같은'(4) (2) | 2023.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