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김신자 시집 '용수리, 슬지 않은 산호초 기억 같은'(5)

김창집 2023. 5. 31. 10:20

 

 

빈손

 

 

작대기로 탁탁탁

털어내는 어머니

쭉정이 이리저리

흩어지던 시간 앞에

손안에 참깨 뭇들도

기꺼이 함께 했네

 

곰방메 섭골갱이

소라 보말 날미역

뜨인 눈 한 순간도

손을 놓지 않았네

어느 날

다 놓아두고

저 건너에 간 빈손

 

 

 

 

용수리 소고

 

 

단발머리 소녀가 넓미역을 따던 곳

그 건너 성창동네

긴 머리 땋은 숙자

캄캄한 콘크리트 속으로 하나둘 묻혀가네

 

절부암 열녀마을 굽이돌아 저 차귀도

용마저 떠날 것 같은 한숨을 푹푹 쉬고

찔레꽃

눈물 날리는

아버지의 당산봉

 

용수포구 접한 땅

급매물로 팝니다

힐긋힐긋 눈치 보는

감정가와 낙찰가

어쩌나,

내 소녀의 눈

용수리가 팔려가네

 

 

 

 

제주해녀11

 

 

한평생 항해라야

발동선 하나였네

 

자나미* 뒤로 하고

물 말아 밥 한 숟갈

 

난바르

뱃길 물결은

해녀노래 추임새

 

상군해녀 오천 원 중군해녀 사천 원

물어멍** 무섭다고 안 든다면 하군해녀

삼천 원 뱃삯을 내고

항곱사는 인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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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미 : 제주시 한경면 용수 쪽에서의 동남풍으로 감돌아 부는 바람

** 물어멍 : 해녀들이 물질할 때 물 속에서 만난다는 유령의 하나

 

 

 

 

제주해녀15

 

 

물질 없는 날 해녀들은

밭에서 품을 판다

해녀만큼 독한 이는

어디도 없을 거야

각시가

제일 겁난다는

지삿개 성환이 삼춘

 

살기가 편했으면

억척을 부렸을까

물일이 생각대로

호락호락하던가

나에게

맡겨진 물숨

전사처럼 사는데

 

 

 

 

제주해녀17

 

 

숨을 오래 참다가

못 버텨 올라온다

뼈가 쑥 빠져가고

하늘이 노래진다

바다 밑

다시마 틈에

왕전복 붙었는데

 

두통이 몰려들고

정신이 아뜩해도

희뿌연 뇌선 봉지

해녀의 만병통치

다시마

넓은 팔 벌려

빗창을 기다린다

 

 

 

* 김신자 시집 용수리, 슬지 않는 산호초 기억 같은(한그루,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