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문영종 시집 '물의 법문'의 시(1)

김창집 2023. 6. 1. 00:58

 

 

나의 잠 속에 바다는

 

 

나의 잠 속에 바다는

고요한 어둠이다

별들은 바다 피 빨아올려

곱게 빛나 물소리 깊어

어둠만큼 출렁이고

머뭇거리는 한 점 바람 없고

물길조차 없는 바다에 누워

고요하게 눈 뜨는 빈 배

 

하늘 끝까지 출렁이는 어둠의 고요

수평선을 껴안은 채

뜨겁게 밤바다에 나가 있었네

바다 발소리, 날갯짓 소리

바다는 무덤 속 빛깔로

숨죽인 채 허공에 떠 있고

맨발로 떠도는 것 모두

나의 잠에 스미어 스멀거린다

눈먼 물고기 하나

밤새 온 바다 휘젓고 있다

 

 

 

 

늙은 배의 꿈

 

 

1.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으려고 해

살 속엔 녹슨 피 떠돌아

허파의 바람도 허하군

늪 같은 잠 그리워

심장의 피는 불꽃 시들어가고

등뼈는 고목 등걸

밑창엔 세월의 따개비 잔뜩 붙어

발걸음 붙잡곤 해

바다와 첫 만남은 황홀이었지

늘 푸른 수평선 너머

희망봉에서 알래스카로

알래스카에서 혼곶으로

힘차게 돌아다니며 싱싱한

하루하루 살아 있었지

 

 

 

2.

나를 끌고 다닌 바다여

그 숱한 기억들 기억 속에 묻혀

너무 오래 출렁거렸구나 이제는

깊이조차 알 수 없는 그대

가슴 속에 닻 내려

한 점 기억으로 떠 있게 해 다오

버얼건 녹물 흐르는

갈가리 찢긴 내 모습

내 생 노래해 줄 이 없어 차라리

깊숙이 선하는 모습으로나 가라앉아

물집 짓고 물고기 바다풀들 키우며

그들 꿈 풀어놓아 뛰어놀게

물 끝에 수장해다오

 

 

 

 

바다 눈알

 

 

그 바닷가 돌들은 물고기 눈알을 빼닮았다

파도에 밀리며 서로 몸 부비며

눈알이 휘둥그레지며

한 만년을 살았음직하다

한때는 난바다의 눈알이 되어

바다 깊은 속을 누볐을 것이다

만져보면 목탁처럼 매끄럽다

구엄리 바닷가에선 물소리가 불경소리다

바다가 섬섬옥수로 두드리다 가신다

 

 

 

 

水夫手帖(수부수첩)

 

 

바다는 가까이서

아냐, 멀리서 바라보기야

쇠냄새 나는 배에선 혀가 말라, 언제나

먼 공간을 꿈꾸는 바다지

몸속의 물이 출렁거려

물소리가 닫힐 적마다

배가 머리를 숙이고

빛 속에서 만나 물무늬로 모여드는 기억

떠오르는 것들은 물소리로 들리고 있어

노을이 밀리고 있어

바다에서 울고 간 새는 길을 잃어버렸어

다리를 절룩거리는데

뒷얘기는 남아 있지 않고

안개가 우리만 남겨 놓았어

우린 숨겨두었던 섬을 띄워 놓았지

안개 바다에다가

 

 

 

 

정다운 바다에서

 

 

바다는 바람살에 몸 풀어

온 신경이 실핏줄처럼 퍼져

바다는 바람에

바다는 빗살에

그 입김만큼 몸짓하며

거울 조각처럼 깨어져

바다는 환하게 반짝여라

세상은 온통 출렁이는 물빛바다

 

건너온 물길 쪽 하늘은

은은히 맑아

늘 헤어지고 만나는 물결이 정다워라

시간도 물결처럼 꿈틀거려

일생이 바다와 같아지고

물소리 들으며

바다 끝까지 걸어가

바다사람을 완성해야지

물소리 깊게 깨어 있을 때

바다 바퀴를 굴려야지

 

 

 

                           * 문영종 시집 물의 법문(도서출판 각, 201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