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잠 속에 바다는
나의 잠 속에 바다는
고요한 어둠이다
별들은 바다 피 빨아올려
곱게 빛나 물소리 깊어
어둠만큼 출렁이고
머뭇거리는 한 점 바람 없고
물길조차 없는 바다에 누워
고요하게 눈 뜨는 빈 배
하늘 끝까지 출렁이는 어둠의 고요
수평선을 껴안은 채
뜨겁게 밤바다에 나가 있었네
바다 발소리, 날갯짓 소리
바다는 무덤 속 빛깔로
숨죽인 채 허공에 떠 있고
맨발로 떠도는 것 모두
나의 잠에 스미어 스멀거린다
눈먼 물고기 하나
밤새 온 바다 휘젓고 있다
♧ 늙은 배의 꿈
1.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으려고 해
살 속엔 녹슨 피 떠돌아
허파의 바람도 허하군
늪 같은 잠 그리워
심장의 피는 불꽃 시들어가고
등뼈는 고목 등걸
밑창엔 세월의 따개비 잔뜩 붙어
발걸음 붙잡곤 해
바다와 첫 만남은 황홀이었지
늘 푸른 수평선 너머
희망봉에서 알래스카로
알래스카에서 혼곶으로
힘차게 돌아다니며 싱싱한
하루하루 살아 있었지
2.
나를 끌고 다닌 바다여
그 숱한 기억들 기억 속에 묻혀
너무 오래 출렁거렸구나 이제는
깊이조차 알 수 없는 그대
가슴 속에 닻 내려
한 점 기억으로 떠 있게 해 다오
버얼건 녹물 흐르는
갈가리 찢긴 내 모습
내 생 노래해 줄 이 없어 차라리
깊숙이 선하는 모습으로나 가라앉아
물집 짓고 물고기 바다풀들 키우며
그들 꿈 풀어놓아 뛰어놀게
물 끝에 수장해다오
♧ 바다 눈알
그 바닷가 돌들은 물고기 눈알을 빼닮았다
파도에 밀리며 서로 몸 부비며
눈알이 휘둥그레지며
한 만년을 살았음직하다
한때는 난바다의 눈알이 되어
바다 깊은 속을 누볐을 것이다
만져보면 목탁처럼 매끄럽다
구엄리 바닷가에선 물소리가 불경소리다
바다가 섬섬옥수로 두드리다 가신다
♧ 水夫手帖(수부수첩)
바다는 가까이서
아냐, 멀리서 바라보기야
쇠냄새 나는 배에선 혀가 말라, 언제나
먼 공간을 꿈꾸는 바다지
몸속의 물이 출렁거려
물소리가 닫힐 적마다
배가 머리를 숙이고
빛 속에서 만나 물무늬로 모여드는 기억
떠오르는 것들은 물소리로 들리고 있어
노을이 밀리고 있어
바다에서 울고 간 새는 길을 잃어버렸어
다리를 절룩거리는데
뒷얘기는 남아 있지 않고
안개가 우리만 남겨 놓았어
우린 숨겨두었던 섬을 띄워 놓았지
안개 바다에다가
♧ 정다운 바다에서
바다는 바람살에 몸 풀어
온 신경이 실핏줄처럼 퍼져
바다는 바람에
바다는 빗살에
그 입김만큼 몸짓하며
거울 조각처럼 깨어져
바다는 환하게 반짝여라
세상은 온통 출렁이는 물빛바다
건너온 물길 쪽 하늘은
은은히 맑아
늘 헤어지고 만나는 물결이 정다워라
시간도 물결처럼 꿈틀거려
일생이 바다와 같아지고
물소리 들으며
바다 끝까지 걸어가
바다사람을 완성해야지
물소리 깊게 깨어 있을 때
바다 바퀴를 굴려야지
* 문영종 시집 『물의 법문』 (도서출판 각, 201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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