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동인지 '바람집 사람들'의 시(5)

김창집 2023. 6. 7. 01:45

 

나비 양시연

 

 

자에

모기

나에게 날아왔네

 

반평생 헤맨 사랑

이제 제 짝 찾은 걸까

 

허하마

이제 허하마

내 첫사랑

나의 비문飛蚊

 

 

 

 

기러기 통신 - 김미영

 

 

어머니 서랍에는 기러기 울음이 있다

서른 해 전 외상으로 놓고 가신 호마이카 농

반쯤은 칠 벗겨져도 그 울음이 묻어있다

 

때 아닌 역병으로 집안에만 갇힌 날

방청소 하다말고 슬그머니 당긴 서랍

물 건너 내가 보냈던 그 전보를 내가 본다

 

열 글자에 오십 원 납부금 급 송금 요망

원고지 첫 줄에 뜬 가을하늘 기러기 떼

저 하늘 한 줄로 줄여 유서처럼 품고 있다

 

 

 

 

콧구멍 도둑 김현진

 

 

사나흘이 멀다 하고 들어서는 친정 길

올레길 돌담 따라 살짜기 여문 텃밭

찜해 둔 애호박 몇 개 자루에 따 넣는다

 

대대로 내려오는 상할머니 백자 다기

처녀 적 놋숟가락

갓 짜놓은 참기름

서랍 속 은가락지도 군침 한 번 삼킨다

 

모른 척, 모른 척하며 건넌방 코 고는 소리

콧구멍이 넓어서 수저통 딱 좋겠다

아버지 잠드신 얼굴 슬쩍 한번 만져본다

 

 

 

 

운동장이 울었다 - 강경아

 

 

운동장 한가운데 딱 마주친 선생님

 

내년엔 중학교 가지?” 웃어주었을 뿐인데

 

그 말에 노을보다 먼저 운동장이 울었다

 

 

 

 

그리운, 까망 고순심

 

 

창문을 타고 밤이 흘러내립니다

유리창에서 커피 내음이 납니다, 까아만

그대의 시선으로 로스팅한 어둠을 한 잔 내밀면

쌉싸래한 내음으로 다가오는 그대 숨결

아무것도 넣지 않은 순수한 까망

시큼한 어둠이 목젖을 넘어올 때

입 안 가득 부서지는 무수한 낱말들

손잡이가 부러진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쌀 때

문득 등 뒤를 감싸는 그대 심장 소리

숨이 멎을 것 같은 고요를 두드리며

마실 때마다 한 모금씩 다가오는 짙은 발자국

급하게 마시다가 입술이 데지 않도록

그대 발자국이 후루룩 달아나지 않도록

김서린 예가체프 G2*향을 삼키며

어둠 속 더듬어 불면으로 가는 길, 까아만

입맞춤으로 안부를 전합니다

밤새도록 어두워지는

그대 향기 혀끝에 감겨오는 까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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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산으로, 커피의 귀부인으로 불리며 향긋한 꽃향기와 풍부한 과일 향을 가지고 있는 모카계열의 커피.

 

 

 

                                *동인지 바람집 사람들(황금알,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