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비 – 양시연
날‘비’자에
모기‘문’자
나에게 날아왔네
반평생 헤맨 사랑
이제 제 짝 찾은 걸까
허하마
이제 허하마
내 첫사랑
나의 비문飛蚊아
♧ 기러기 통신 - 김미영
어머니 서랍에는 기러기 울음이 있다
서른 해 전 외상으로 놓고 가신 호마이카 농
반쯤은 칠 벗겨져도 그 울음이 묻어있다
때 아닌 역병으로 집안에만 갇힌 날
방청소 하다말고 슬그머니 당긴 서랍
물 건너 내가 보냈던 그 전보를 내가 본다
열 글자에 오십 원 ‘납부금 급 송금 요망’
원고지 첫 줄에 뜬 가을하늘 기러기 떼
저 하늘 한 줄로 줄여 유서처럼 품고 있다
♧ 콧구멍 도둑 – 김현진
사나흘이 멀다 하고 들어서는 친정 길
올레길 돌담 따라 살짜기 여문 텃밭
찜해 둔 애호박 몇 개 자루에 따 넣는다
대대로 내려오는 상할머니 백자 다기
처녀 적 놋숟가락
갓 짜놓은 참기름
서랍 속 은가락지도 군침 한 번 삼킨다
모른 척, 모른 척하며 건넌방 코 고는 소리
콧구멍이 넓어서 수저통 딱 좋겠다
아버지 잠드신 얼굴 슬쩍 한번 만져본다
♧ 운동장이 울었다 - 강경아
운동장 한가운데 딱 마주친 선생님
“내년엔 중학교 가지?” 웃어주었을 뿐인데
그 말에 노을보다 먼저 운동장이 울었다
♧ 그리운, 까망 – 고순심
창문을 타고 밤이 흘러내립니다
유리창에서 커피 내음이 납니다, 까아만
그대의 시선으로 로스팅한 어둠을 한 잔 내밀면
쌉싸래한 내음으로 다가오는 그대 숨결
아무것도 넣지 않은 순수한 까망
시큼한 어둠이 목젖을 넘어올 때
입 안 가득 부서지는 무수한 낱말들
손잡이가 부러진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쌀 때
문득 등 뒤를 감싸는 그대 심장 소리
숨이 멎을 것 같은 고요를 두드리며
마실 때마다 한 모금씩 다가오는 짙은 발자국
급하게 마시다가 입술이 데지 않도록
그대 발자국이 후루룩 달아나지 않도록
김서린 예가체프 G2*향을 삼키며
어둠 속 더듬어 불면으로 가는 길, 까아만
입맞춤으로 안부를 전합니다
밤새도록 어두워지는
그대 향기 혀끝에 감겨오는 까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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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산産으로, 커피의 귀부인으로 불리며 향긋한 꽃향기와 풍부한 과일 향을 가지고 있는 모카계열의 커피.
*동인지 『바람집 사람들』 (황금알, 202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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