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6월호의 시(3)

김창집 2023. 6. 25. 09:30

 

 

동백冬栢 - 이학균

 

 

우주 하나가 떨어졌다

 

설레는 첫사랑 하나

운석보다 무겁고,

 

한설寒雪 속에서

더 짙어진 사랑은

 

죽어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모습

 

그대로, 네 심장에

직선으로 꽂히는 불꽃같다.

 

 

 

 

봄비 위인환

 

 

치부를 감추기 위해

또 다른 핑계를 댄다

만취된 하루가 띄엄띄엄

먹구름 사이로 나타날 때

봄은 왔으나 봄이 아니다

노지에서 탈의한 죄

땅속 양분을 훔친 죄를 씻어내는

거룩한 의식

밤새 성수를 뿌려 세례를 하고 있다

각질 같은 죄가 사해지는 봄

용서 받은 땅에서

새로운 삶이 움트고 있다.

 

 

 

 

소금 김용태

 

 

아무리 먹어도

포만감을 모르는

저 바다는 잡식성이다

 

밤낮 가리지 않고

무언가를 삼켰다 뱉어 내면서

성난 물살을 물어뜯기도 하고

태풍으로 멀리 밀어내기도 한다

 

그걸 알고 있는 염부는

바닷물을 순하게 어르고 달래며

길들인다

 

바람과 햇살 아래서

포복 훈련하는 하얀 사리 꽃송이들

서로 같은 이름을 달고

땡볕 아래서 나란히 엎드려 있다

 

 

 

 

수신 불량 지역에서 - 유정남

 

 

수시로 별의 주파수를 놓치는

이 마을은 수신 불량 지역

 

장밋빛으로 끓는 리모컨의 기도에도

그는 오늘 밤 켜지지 않는다

 

도시의 랜드마크가 된

초고층 아파트 숲까지 자신을 끌고 오느라

떨림도 울림도 놓아버린

한 마리의 검은 짐승

 

가늘어진 발목으로

사각형의 어둠을 받치고 잠들어 있다

 

뜨거워지지 않는 빨간 배꼽은

세상에 맞출 수 없었던 채널의 또 다른 언어일까

그녀의 달뜬 손가락에 응답하지 않는다

 

클라이맥스마다 지지직대던

파동을 잡지 못한 드라마의 시간이

콘크리트 사막으로 흘러와 전파를 방해하는 밤에

 

돌아누운 브라운관 한 점 온기에 닿아 있을

외계를 향한

그녀의 달빛 타전은 계속된다

 

 

 

 

영원한 현재 - 김정원

 

 

작렬하는 뙤약볕이

대나무 울타리 틈에 핀 꽃에서

기린 목 하나 끌어당긴다

 

외로운 꽃대 머리에는

푸른 임을 볼 수 없는 운명

 

그 운명을 사랑하는 연분홍 상사화가

스피커 목 네 개를 쭉 빼고

사방에 향기로 전언한다

 

우리 마을 이장님이

비가 쏟아지다 뙤약볕 나고

뙤약볕 나다 비가 쏟아지는

변덕스러운 날씨에 유의하고

어르신들 오가는 비탈진 골목길

조심하라고 경고 방송하는 장마철

 

나무마다 매미울음이 낭자한데도

소리 없는 꽃향기 소식을 들은

벌 나비는 앉았다 금방 떠나거나

아예 꽃에게 날아오지 못하는

시대는 혼돈이지만

 

무질서 속에 질서가,

질서 속에 무질서가 있고

규범보다 예외가 더 많은

우주는 변화이고 삶은 견해이다

 

학문도 종교도 사상도 사람도 하늘과 땅도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도

어제와 똑같은 것은 없다

 

숨 탄 모든 것은 순간이고

영원한 것은

늘 우주를 새롭게 하려고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변화뿐

 

실은, 강물 같은 현재가 영원이고

누구에게나 무자비하고 공평한

시간에는 대기실이 없다

 

 

                   * 월간 우리6월호(통권 42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