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혜향문학' 2023년 여름호의 시(3)

김창집 2023. 6. 27. 19:06

 

 

[초대시]

 

 

하이힐 - 서일옥

 

어느 겨울 받아 든

출생의 운명처럼

가도 가도 높고 가파른

하이힐이 여기 있다

 

찬바람 무찌르려고

찬바람 허리에 감고

 

세상은 목마르고 뜨거운 사막이었다

그 길을 여자 하나가 절며 걸어간다

 

똬리 튼 파충류처럼

맹독의 입술을 하고

 

 

 

 

대나무 꽃 - 임애월

 

 

대나무가 벼과라는 걸

우연히 알았다

하늘로 가는 가장 정직한 거리

직립의 길을 선택한 그의 의지가

육십갑자의 시간 속에서

가볍게 부풀어 오른다

바람이 불 때마다 부서지던 생의 조각들

게워내고 비워버린 제 속살들은

어디쯤서 포만의 게으름을 좇고 있을까

마지막 공명共鳴으로 밀어올린 한 생애의 방점

딱 한번 피워 올린 꽃이여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의 꿋꿋함이여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땅 속 어둠을 거머쥐었던 단단한 발톱 끝에

비로소 어린 날개가 돋아나기 시작한다

 

 

 

[부산 불교문인협회 초대작품]

 

 

부처님이 오신 까닭은 김성화

 

 

빛과 소리가 하나가 되어 흐르고

하늘의 음악소리 은은하게 흐르는

도리천에서 지구별을 보신 부처님이시여!

 

만생이 어둠 속에 헤매는 것을 보고 자비심을 내시고

사부대중이 탐진치에 얽매이어 길을 잃어버리시니

자비의 등불, 둥근 달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자비의 부처님이시여!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등불을 켜심은 세상의 모든

사부대중이 몽매의 꿈에서 깨어나 부처님 오신 날을

찬양하는 사부대중이 되게 하옵소서

 

자비의 부처님이시여!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춰주시고 고통의 중생들을 인도하시어

열반의 언덕 넘어 열반의 세계를 일깨워주시는 부처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등불을 켭니다. 나무아비타불!

 

 

 

 

곶자왈 박혜숙

 

 

아찔한 여름이다 웅장한 숲은 겹겹이 푸른 옷을 입는다

유월에는 숲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친구, 너덜겅에 비밀이 쌓일 때

제주도 너를 택했다 막 기지개 켠 애기괭이밥, 콩짜개덩굴도 고목 그루터기를

잡고 눈을 떠 너에게 안긴다

 

깊은 시간 방황에서 흔들리는 나를 꺼내 구멍 숭숭 뚫린 지구의 허파로 간다

구부러지고 엉겨 붙은 나의 이력 친구와의 수다로 새로운 잎을 틔운다 치열한

파일을 눕히고 가벼워지는 발걸음 서로 상처 주고받으며 살다 화해하는

시간을 건넌다

 

 

 

 

연비 손순이

 

 

모든 대중들 호궤합장하고

옴 살바 못자 모지사다야 사바하

참회진언 외울 때

인례자가 수계자에게

향불로 왼쪽 팔에 갖다 댄다

 

그 찰나에 여러 생 지은 죄업

마른 풀이 불에 타 사라지듯

봄눈이 녹듯 즉시 소멸된단다

 

 

 

                    * 혜향문학2023년 상반기호(통권2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