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문영종 시집 '물의 법문'의 시(6)

김창집 2023. 7. 1. 00:33

 

 

눈망울

 

 

대롱대롱 여린 나뭇가지에 매달린 물방울은 물의 눈망울이다

나무는 세상을 보고 싶어 물방울로 눈망울 만들어 눈을 떴다

그 맑은 눈망울로 나를 보고 들여다보는 나도 눈망울이 되고 물방울이 된다

여린 바람에 눈망울이 달아날 것 같아 어쩌나 안쓰러움이 더해져간다

눈망울이 되고 물방울이 되어 나무는 우주를 본다

물방울 속에 눈망울이 있고 눈망울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눈망울이 있고 우주가 물방울로 비친다

이상하게도 가늘고 여린 가지만이 물방울로 눈망울을 만들 수 있다

바람도 없이 가는 비가 내리는 날은 우산도 싫고 모자도 싫다

아주 느리게 한발한발 숲길로 들어서다보면

어느새 나는 온몸에 푸르름이 돋아나는 나무가 되고 만다

 

 

 

수평선

 

 

아직도 바다를 보면

유년의 바다 속으로 풍덩 빠져든다

누렁이 데불고

보랏빛 순비기꽃으로 물들이고

머리칼 헤집는 바람은 보드랍다

활시위처럼 놓인 수평선

잡아 당겼다 놓곤 했다

화살처럼 쏜살같이 내 몸은 튕겨 나갔다

수평선 너머엔 뭐가 살지

물고기는 어디서 잠들고

물새 둥지는 어데 있지

누가 물결을 밀려오게 하고 바람은 얼굴이 왜 없지

수평선을 넘어가는 배 꼬리라도 붙잡고

수평선을 넘어갔으면 했다

넘어보았으면 했다

 

 

 

 

수평선

 

 

수평선에 섬이 보인다

바다 숨소리가 가랑가랑하다

수평선에 시선을 고정한 채

어둠에 갇혀가도 움직일 줄 모르는 새가 있다

 

불탄 하늘이 어둑발을 내밀고 있다

어두워져 가는 바닷가에 물새들이 시간도 잊은 채

소꿉놀이만 한다

아직도 까만 돌에 앉아 있는 새는 물소리에 취해서일까

돌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모래톱에 남긴 내 발자국도 이젠 눈을 감는다

빛 기운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수평선으로

한 사내가 섬이 되어 흘러가고 있다

바다와 하늘이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두모악에서

     -김영갑 갤러리

 

 

셔터 소리를 알아듣는 나무가 두모악에 산다

앞뒤로 뻥 뚫린 둥그런 화산석 안에

흙 사내가 고요 속에 젖어 있다

그 사내가 머무는 방은 바람도 둥글다

하늘도 둥글게 두모악에 내려앉는다

두모악엔 미로 같은 돌담길이 있다

돌담 위에서만 사는 흙으로 빚어진 자그만

사내들의 눈빛이

그 사내 눈빛처럼 허허롭다

돌담길을 거닐다 보면 정말로

누군가 부르는 듯한 셔터 소리에

바르르 떠는 나무들을 볼 수 있다

여기선 나무들도

귀를 열어놓고 몸을 열어놓고

토우들과 더불어 산다

그래서 빛도 구름도 오래 머물다 간다

 

 

 

에 대하여 - 문영종

 

 

쓰는 일 미친 짓이다

밤중에 홀로 깨어 새벽까지

쓰여지지 않는 붙잡고

같지 않은 붙잡고

를 캐어내는 일 부질없다

 

한평생 가슴에 를 담고 사는 이여

처럼 사는 일이 유쾌한가

는 밥이 되지 않으며

는 피가 되지 않으며

는 살이 되지 않으며

내 영혼을 비틀기만 하는

너에게서 달아나고 싶다

오늘 밤도 나는 너를 부둥켜안고

원수처럼

몹쓸 담배나 죽이며

 

 

                   * 문영종 시집 물의 법문(도서출판 각, 201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