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혜향문학' 2023년 상반기호의 시(3)

김창집 2023. 7. 2. 00:25

 

 

[부산불교문인협회 초대시]

 

 

화주승 - 이석란

 

 

굴뚝연기 날아가는 허공

식솔들 웅크린 한기寒氣

결빙의 길을 걸어 청솔가지 아랫목 생불 지피던

부모님의 안부가 살을 파고 들어선다

 

산골의 문풍지 칭얼거리는 잉걸불

 

젊은 스님 탁발에 한 되 박 시주는

저녁 예불 속으로 넘어가는 해를 달래는 것인지

시린 손에 잡은 목탁 긴 여운 남긴다

 

돌아 올라선 축담 등 굽은 할머니

염주 알 돌려보는 생의 탑

장삼 속 추위 더욱 가슴 시려

바랑 속 온기를 확인한다

 

 

 

 

낙엽을 보면 이형주

 

 

사는 동안

제 빛깔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낙엽을 보면

 

가을을 배우다가

한창 배우다가

무엇인가 골몰하여 살다가

 

연연하지 않고

단풍을 던지는 것을 보면

 

그러나 멀리 가지 못하고

둥지의 언저리를 떠나지 못할 바에야

가을의 저문 그림자를 눈치 채지나 말자

 

낙엽을 다 떨어낸 나뭇가지 아래

수북이 쌓여 혼의 울음으로

낙엽이 운다, 가을 숲에서

 

시인이여!

 

낙엽을 바느질하여

바람의 별이 되어 태어나는 옷을 지어

섬섬한 낙엽의 그림자를 위로하라

 

 

 

 

백담사의 뜰 정옥금

 

 

당신의 새벽 뜰이 이슬비에 포근히 젖고 있습니다

울창한 숲속으로 저리도 밝게 흘러가는

계곡물이 젖고 산사도 젖고 말없이 젖고 있는

나룻배와 행인 시비 앞에 서서

묵념하고 있는 희끗한 나의 정수리도 젖습니다

이 풋풋한 여름날 당신의 나룻배를 타고

젖은 나뭇잎을 털며 아득한 당신의 세상 속으로

가봤으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마는 감히

당신의 나룻배엔 한 발도 들여 놓을 수가 없어요

죽을 때까지 고귀한 당신을 기룰 수 있기에

오늘도 행복한 날, 잿빛 옷 입으시고

무량한 이 뜰을 새벽마다 거닐었을 것 같은

당신의 뜻을 발자취나마 닮을 양으로 나는

새벽 내내 비잉빙돌고 있습니다

 

 

 

 

한결같아라 예지 심애경

 

 

같은 곳 함께 걷는

부부라 할지라도

 

너와 나 마음속은

볼 때마다 다르더라

 

이 밤은

같은 색으로

한결같이 오고 가네

 

 

 

 

유채, 봄날 손영자

 

 

노랗게 꽃 피는 건 유채만이 아니었다

바람도 꽃이었고 파도도 꽃이었다

걸으며 걸으면서 본 모든 게 꽃이었다

 

현무암 돌담 너머 허리 굽은 바닷길에

윤슬이 눈부시어 유채꽃 흔들릴 때

수채화 샛노란 물감 곳곳에 묻힌 제주

 

 

                        * 혜양문학2-23년 상반기호(2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