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남대희 시집 '어느 날 찾아온 풍경들의 기억'(4)

김창집 2023. 7. 8. 08:09

 

 

풍경

 

 

능수버들 사이 물안개 자욱한데

새벽마다 머리 내밀고

창공을 유영하는 꿈을

꾸었던 시절이었다

끝내 중력을 이기지 못해

물 위에 파문만 내던 시절이었다

 

꿈은

마른하늘에서도 지느러미를 세우고

그림 같은 풍경을 그려낸다

창공에 풍경을 만들고

스스로 갇힌 허공에 바람을 끌어와

소리로 파문을 내는 붕어 한 마리

 

 

 

 

비 오는 날

 

 

숲속 초목들 운다

개복숭아 나무가

망개 넝쿨이

산수국 돌배나무

온몸 눈물범벅 되어 운다

체면 가식 다 버리고

한 번쯤 울어보라고

천둥처럼 통곡해 보라고

 

회초리 자국 어루만지며

눈물 떨구시던

엄니 그리워서

숨어 우는 청개구리 곁에 서서

그렇게 울고 싶다

 

 

 

 

화석과 바람

 

 

숨을 멈춘 지 몇 년

그것은 역사 이전의 사건

 

명치끝 잔뜩 힘주고

어금니 곽 깨물고

참았다가 확 뱉어낼 때

 

큰 짐승은 발목을 자르고 떠나고

새들은 날갯죽지를 구겨 넣고 떠나고

 

숨조차 꽁꽁 잠긴 시절 그렇게

 

바람은 낱낱이 헤아려 지우려고 할 뿐

 

 

 

 

상강

 

 

하늘은 한 뼘쯤 멀다

빛깔 곱게 물러난 하늘로 새들이 스민다

바람 흩어지는 곳으로 마른 낙엽이 따르고

푸르게 달려온 갈대는 푸석한 머리를 하얗게 풀었다

와삭거리는 허리를 흔들어 보아도 시간은

물결같이 흐르고, 물빛은 햇살같이 빛나고

강아지풀 마른 잎에도 하얀 물꽃이 피는

 

 

 

 

오월

 

 

연둣빛 환한 아침

 

하늘 능선 빈틈없고

 

전깃줄에 갈린 앞산

참새 몇 마리 걸어놓고

 

움푹 파인 골짜기로 꽃 진 산벚나무

거뭇거뭇 걸어 나오고

 

장끼 한 마리 솟구친 위로

구름이 몽실몽실

 

 

     * 남대희 시집 어느 날 찾아온 풍경들의 기억(우리,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