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산림문학' 여름호의 시(4)

김창집 2023. 7. 9. 03:52

 

 

 

장항선 김황지

 

 

역사 밖 의자에 햇살이 졸고 있다

 

상 하행선 시간표도

침목 위 철로도

기다림에 늘어지고

 

가까스로 웅천역에 멈춘 열차

무창포에서 잡은 해산물과

속 찬 가을 텃밭 한 평 떼어 싣고

서울로 향한다

 

내 젊은 날을 운반하던 장항선

지금은 어느 청춘을

북적거리는 서울역에 부려놓는가

 

급행도 완행도 종점은 한 곳인데

 

혼자 남아 눈시울 붉히는

먼 산

 

장항선 천천히 웅천역을 떠난다

 

 

 

 

무명용사

 

 

유월이 오면

전설을 노래한다

 

총성과 포성

사선死線을 넘나들던 용사들

서서히 잊혀져 간다

 

흙에서 자라

흙으로 돌아간 이들의 선혈

산하는 붉고 뜨거운데

 

승리는 희생으로 피는 꽃

불후의 서사가 되고

유성처럼 스러져 잠든 영혼

 

하늘에 올라 별이 되어라!

 

 

 

 

보랏빛 생 엄선미

 

 

아침 햇살에

나팔꽃 웃음이 쏟아진다

 

바지랑대 타고

그리움의 끝을 찾아 오르다

바보처럼 뒤돌아서 웃고 만다

 

사랑의 갈증이

보랏빛 꽃잎을 말아 올린다

 

푸른 잎새에

남겨진 그리움은

무심하게 심장을 드러내 보지만

당신은 알아채지 못한다

 

이번 생애도

홀로 사랑을 하고

외롭게 길을 떠나야 할까 보다

 

 

 

 

어느 늙은 벚나무에게 조인환

 

 

젊고 튼실한 나무보다

더 화사한 꽃을 피우는

네 모습을 탐냄이 아니다

 

부러지고 쇠약해진 몸으로

젊은이와 당당히 겨루는

네 열정을 품고자 함도 아니다

 

정년을 한참 지난 나이에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네 노년을 부러워함은 더욱 아니다

 

네 화려하던 꽃이 질 때

꽃비 되어 땅으로 내려앉듯

내 지는 모습 그러할 수 있다면

 

땅에 떨어져서라도

주위를 온통 꽃밭으로 만들어 주는

너처럼

 

내 삶이 그러할 수 있다면

,

그럴 수 있다면

 

 

 

 

개복숭아 홍윤표

 

 

한여름 웰빙과일은 보송보송 털이 솟은

복숭아로 태어나 세상을 채운다

건강을 지켜주는 복숭아

시골 주부들은 간혹 개복숭아에 눈독을 들였다

 

그러나 흔하지 않다

 

돌 복숭아라 불러본 개복숭아

비타민 무기질이 포함된 약복숭아라고

 

잔기침 날 때 차 한 잔 마시라 시장을 넓혔다

 

단맛이 없고 쓴맛 신맛이 줄 서서

보통 싫어하지만

그래도 영약이라 발효시켜 섬기지만

식탁엔 안 오르니 눈을 돌린다

 

사월에 꽃잎 지던 소리도 없더니

직유의 칼날을 세우고

말없이 세상을 떠나 숙제도 잊었나

유효기간 없는 개복숭아 그래도 생약이다

 

 

                * 산림문학2023년 여름호(통권 5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