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혜향문학' 2023년 상반기호의 시(4)

김창집 2023. 7. 11. 01:04

 

 

사월 다랑쉬굴 김정희

    -다랑쉬굴 시혼제에서

 

 

일어서서 간다

긴 시간 속으로

 

동굴 속처럼 깊은 첼로 소리

검정 고무신 등에 올려놓고

걸어라

뛰어라

온몸으로 말을 걸어도

지긋한 미소

지난 일인걸

가랑비에

보슬보슬 젖은 풀밭 흙이

몸이 되고

몸으로 기어 나와 살아

구음으로 건네는 말

들어보면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린다

어둠에 누워

한 바퀴 돌아 나온 다랑쉬 굴 안으로

안으로 이름을 불러내어

검정고무신 가지런히 놓고

온몸으로 걸어 나와

몸으로 드네

비가 되어 흐르는

음악 소리 무겁게 젖는다

 

 

 

 

사람이 없습니다1 윤봉택

 

 

사람이 없습니다

국제선에는

사람이 바글거리는데

마당에 널어놓은 날레*

당그네질 하여 줄

개촐* 막뎅이 ᄒᆞ나 없습니다

시방,

 

강남땅에는 미어 밟히는 게

사름 닮은 거라는데

내 눈에만

콩깍지가 끼어서일까요.

보면 볼수록

사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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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레 : 멍석을 펴고 햇볕에 건조시키기 위해 널어놓은 곡식을 말함.

*당그네 : 고무래의 제주어.

*개촐 : 덮거나 펼쳐놓은 새 또는 풀 무더기를 의미하는 제주어.

 

 

 

 

성도지成道地 붓다가야에서 정예실

 

 

싯달타 태자가 보리수 아래 瞑想명상하다

지혜를 깨쳐 부처가 된 곳

마하보디대탑 사이로 뙤약볕이 존다

 

감실마다 황금색 불상

마치 부처님의 6년 고행 끝에 얻은 결실마냥

인간의 심리

그때 다 알아보시고

중생의 일에 파묻혔다

 

성도하신 거룩하고 성스러운 땅

그곳

오체투지하자

환하게 달려오는 가야의 苦行林고행림의 빛

보리수 아래 매달려 있다

 

조건 없이 울려대는 경적소리

그 소리 뒤로 하고

깨달음의 마음만 뒤쫓고 있을 뿐

 

삶의 근원을 깨친 성지

금강보좌한 자리

연 이파리 같은 구름이 내려앉았다

 

아직 엄연히 존재하는 사성제

태어나면서 천민으로라도 안으로 안으로 삼키며

때묻지 않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메드골드로 만든 꽃목걸이를 선물로 받자

 

난 오르간 연주로 화답한다

아리랑’ ‘고향의 봄

진정한 휴머니즘을 느끼며

묵은 업 덩이 하나를 내려놓았다

 

 

 

 

손톱을 깎으며 강상돈

 

 

며칠 전 깎았는데 어느새 길어진다

갓 배달 온 신문지 살며시 펼쳐놓고

길어진 손톱을 본다, 짧은 안부 묻는다

 

한일자로 입 꾹 닫은 손톱깎이 꺼내들고

모든 번뇌 비우듯 하나하나 깎고 가면

손톱은 쌀 점치듯이 제각각 떨어진다

 

하필이면 운세란 뱀띠 칸에 가 닿았을까

둥글게 살아가라는 말 마음깊이 새길 즈음

감나무 가지사이로 초생달이 따오른다

 

 

 

 

풍경 이이현

 

 

한 사람은

바다를 바라보는 쪽으로 앉아 있고

한 사람은

바다를 듣는 쪽으로 앉아 있다

 

듣는 걸 보고

보는 걸 듣는

 

말보다

더 마주한 시간

 

지척을

건너는 일

저리

깊으다

 

 

                    * 혜향문학2023년 상반기 제20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