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7월호의 시(2)

김창집 2023. 7. 12. 09:06

 

마법이 풀리는가 도경희

 

 

이슬처럼 청초한 아라크네가

칠 짙은 물레를 돌린다

실 한 가닥 한 가닥

몸에서 뽑은 씨줄에

달빛 날줄 엮어

금박 물린 구름 꽃

하늘에 눈부시게 얹혔다

 

사락사락

두메산골 긴긴 밤을 짜는

직녀의 아미는 얼마나 고운가

 

크고 작은 별이 눈을 깜박이며

견디고 살아낸 이방인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은하수가 흐르고

유성이 멀리 날아간다

 

 

 

 

설악 해변에서 방순미

 

 

한낮 수평선 끝

시선 던져 놓고

 

멸치 떼 은비늘 튀듯

잔물결 눈부시다

 

오래 바라보니 파도 소리

사라지고 고요만 남아

 

밀려가며 밀려오다

섰다 지는 물 그림

 

말끄러미 바라보면

모래톱처럼 남은 상흔마저

지워져 흔적 없다

 

 

 

 

백석천 오명헌

 

 

   에미 청둥오리가 갓 부화한 그의 가솔 열두 마리를 데리고 학익진 대형으로 백석천을 유영해 가네 껍질을 깨고 나온 맏이와 막내의 생일 차가 며칠까지는 안 될 듯한데 저것들도 형 동생 언니 아우 하는 서열은 엄격하겠지 하루 이틀 사이에 알 열두 개를 다 낳은 것도 아닐 터이니 알 열두 개가 모일 때까지 보살펴준 하느님이 고맙고 그것 주워다가 삶아 먹지 않은 사람들이 고맙고 냄새를 맡지 못한 탓이겠지만 고것들 탈취해 가지 않은 수달님네가 엄청 고맙네 정확히 스무 날 지나 백석천 그 자리에 에미 청둥오리와 그의 가솔 열두 마리가 학익진 대형으로 다시 나타났네 가솔은 벌써 에미 못지 않게 자라서 분가할 만도 한데 대형을 무너뜨릴 정도로 신이 나서 에미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군 아, 스무 날 동안 이 모진 세상에 낙오자 하나 없이 무탈하다니 이렇게 날씨 화창한 날 코끝이며 명치가 찡해지고 괜스레 눈물 고이누나

 

 

 

 

여름 채영조

 

 

청춘의 열정처럼 식지 않고

밤에도 무더위는 계속되었다

 

도심의 화려한 저 불빛 속에는

낮이 고단함이 누워 있겠지

 

흐르는 강물을 따라 걷다가

문득, 당신 생각이 떠올라

한참 동안 강물 속을 들여다봅니다

뜨거운 시절에 만나

뜨거운 시절에 헤어져

당신도 나처럼 잘 익어가고 있겠죠

 

곧 장마가 온다고 합니다

비 걷히면

슬픈 계절에 만납시다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

 

 

 

 

첫 울음 그 후 김혜천

 

 

말이 먼 길 떠나기 전

 

두 앞발을 쳐들고 히이힝 우는 것은

 

달려가야 할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폐허가 된 궁을 탈출해

 

첫 울음을 운 후 풍경은 덧없이 바뀌고

 

새로운 출발은 언제나 첫이어서

 

흰 막막 앞에 앉으면 언제나 무색 울음이 솟구친다

 

끝없이 펼쳐지는 미지의 세계

 

아득한 계단 한 층 또 한 층을 오를 때마다

 

흘리는 한 방울 성수

 

안개 속을 떠돌던 촉수가 번쩍이는 섬광에 닿기 위하여

 

한 발자국 내 딛기 전 올리는 제의식

 

 

                                *월간 우리7월호(통권 421)에서

                                *사진 : 요즘 한창인 백련(白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