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남대희 시집 '어느 날 찾아온 풍경들의 기억'(5)

김창집 2023. 7. 13. 00:33

 

 

팔월의 강

 

 

강물이 천천히 흐르고

새들의 발자국 더 깊고

돌들도 발목을 걷고

아이들도 아지랑이 같이 걸었다

햇살도 까치발로 걷고

바람도 그늘 찾아 숨는 팔월

 

소나기라도 내리면

빗줄기 타고 오른 송사리 떼

무지갯빛 하늘 가득 비늘을 털어 놓던 그 강가

 

거품 뭉개며 쏟아 내는 저 말들, 말들

 

강물처럼 휘돌던 세월

초록이 고이고 고여 가슴마저

현현玄玄해지던 팔월의 그 강

 

 

 

 

하늘과 우주

 

 

구름이 떠 있고

새들이 날고 바람이 흐르고

고인 시간이 창공에 가득해

 

시간은 말랑한 물질

달리는 우주에 시간을 빼면

공간이 함께 사라져*

 

구름이 모이고 햇살이 내리고

낙엽이 지는 것은

바람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럴 뿐

 

---

*공간에서 시간과 공간은 불가분이다.

 

 

 

 

지나가다

 

 

차창 밖으로 풍경이 지나간다

구름이 흐르고 전봇대가 바쁘게 지나간다

내가 풍경 속으로 지나간다

강물같이 지나간다

구름같이 지나간다

바람같이 지나간다

아직 잔설이 남아 있는 산꼭대기

멀리서 멀리멀리 간다

대지가 푸른빛을 머금고 차창가로 왔다가 멀어진다

다리를 건너 강물을 지나간다

반짝이는 수면이 흐른다

마른 풀잎들이 바람에 눕다가

힘겹게 일어선다

강물같이 구름같이 바람같이 갔다

철길같이 평행선만 놓고 갔다

 

그리고, 봄은 다시 왔다

 

 

 

 

어느 날 3

     -은하수

 

 

어느 여름날

대청호 수면 위로

소나기가 쏟아졌다

물속에 있던 송사리들이

빗줄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날 밤 비가 그치자

송사리 떼가 하늘 가득

비늘을 털어놓았다

 

 

 

 

어느 날 5

 

 

낙영산 자락

공림사에 가면

요사채 뒤쪽에

천년 느티나무가 있는데, 어느 날

천년 그 긴 세월을 어떻게 건너 왔나?”라고 물었더니

마른 가지 하나 툭 던지고 하는 말이

세월이 곁에 머물러 주었을 뿐이라고

 

 

                  * 남대희 시집 어느 날 찾아온 풍경들의 기억(우리,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