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정드리문학' 제11집 박수기정 관점의 시(2)

김창집 2023. 7. 15. 00:16

 

 

서귀포 동문로터리 닭내장탕 - 오승철

 

 

어느 도시에도 찾기 힘든 닭내장탕집

무김치 너덧 개면 접시가 넘치지만

그 식당 아줌마 볼도 김치처럼 물이 든다

 

닭장에 갇히거나 아파트에 갇히거나

닭의 길, 사람의 길, 그게 그걸 테지만

아리랑 아리랑 같은 구불구불 닭내장길

 

무김치와 닭내장탕, 아줌마와 사십 년 간판

궁합도 저리 맞아야 세상맛을 아는 걸까

주문을 넣기도 전에 보글대는 저 냄비

 

 

 

 

별천지 문순자

 

 

산이 깊어 그런가 별이 별을 부른다

자정을 훌쩍 넘긴 내설악 어느 절 마당

낮에 본 불사리탑이 별처럼 반짝인다

 

불상 하나도 없는 대웅전 들어서면

통유리창 안으로 언제 들어오셨나

비워둔 연꽃좌대에 가뿐히 앉아계신다

 

새벽 다섯 시면 하산을 한다는데

그렇게 부처님과 뜬눈으로 지샌 별들

벗어둔 등산화에도 독경소리 넘쳐났다

 

 

 

 

고사리 꺾는 날 - 조영자

 

 

일년에 스물두 번 제사 올리는 어머니

고사리가 없었다면 어떻게 지냈을까

열두 살 고사리손이 없었다면 어쨌을까

 

우리집 족보만 봐도 한 역사가 읽힌다

4·3이며 못 돌아온 배, 까마귀 모른 제사까지

가난한 어머니 눈썹에 밤마다 걸리던 별빛

 

고사리야 고사리야 꾸벅꾸벅 고사리야

이제는 사라진 마을 영남리 그 어디쯤

남루한 그 제상 위에 꾸벅꾸벅 고사리야

 

 

 

 

어머니의 가을 - 강현수

 

 

주인이 떠난 것을 과수원도 아나 보다

해마다 비 상품이 상품보다 늘어간다

이문이 없어도 좋다 출근하던 아버지

 

아버지 가위소리 어머니 가위소리

작년엔 또각또각 연애질 소리 같았다

그 소리 그리운 건지 가위 놓은 어머니

 

풍작은 아니어도 평작이 욕심인가

통장으로 처음 들어온 어머니의 성적표

가을은 늘 청맹과니 저 혼자 잘 익는다

 

 

 

 

발가락 군*의 소식을 듣다 - 김영순

 

 

서귀포 몽마르트르 솔동산길 오르다가

그저 비나 피할까 잠시 들른 이중섭 거처

일본서 당신의 부고가 손님처럼 와 있네요

 

수백여 통 남편의 편지,

그 편지 한 장 없어도

붓과 팔레트마저 미술관에 기증하고도

서귀포 피난살이가 그중 행복했다니요

 

돌아누우면 아이들 돌아누우면 당신

게들은 잠지를 잡고 아이들은 게를 잡고

오늘은 별 따러 가요

하늘 사다리 타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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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화가는 아내를 발가락이 길다고 발가락 군이라 불렀다.

 

 

                   *정드리문학 박수기정 관점(문학과 사람,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