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7월호의 시와 누리장나무 꽃

김창집 2023. 7. 17. 00:43

 

커피국 - 송연숙

 

 

  청춘의 열정처럼 식지 않고

  미국으로 이민 간 고모는 해마다 소고기와 말린 바나나와 원두커피를 보내왔다. 할머니는 양은 냄비에 된장국처럼 커피를 끓였다. 끓인 커피 맛을 보며 설탕을 한 숟가락씩 추가하였다. 설탕 맛이 쓴 커피 맛을 덮을 때 둘러앉은 식구들에게 한 대접씩 배당된 커피

 

  커피에 두근거리는 심장이 들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밤새 두근거리며 울타리 뛰어넘는 양을 세다가, 똘똘 말린 구름을 깎다가, 빽빽하게 별이 뜬 아메리카를 상상하다가

 

  뒤척이는 할머니의 등과 어깨가 심하게 두근거리는 것을 그때 비밀처럼 보고 말았다.

 

 

 

 

마지막 체온 윤태근

 

 

삼 년 전 칠순을 넘긴 아내는

베옷으로 곱게 단장을 하고

하얀 국화 송이송이 사이에서

공주처럼 잠들어 있습니다

 

미친 듯 엄마 엄마를 외치며

관을 부여잡고 울부짖던 큰딸은

엄마, 꼭 마중 나와야 해. 꼭이야

손가락 십자가를 무수히 긋습니다

 

며칠간 꿈속을 헤매듯 허청대던 나는

수골실收骨室 앞에서야 정신이 듭니다

유골함을 받아 드니 아내의 체온이 따끈합니다

휘청한 걸음 떼는데 아들놈이 제 품으로 앗아갑니다

 

 

 

 

파꽃 허향숙

 

 

   무일푼으로 월남한 그는 북가좌동 무허가 판자촌에 살면서 남들보다 서너 시간 이른 새벽보다 서너 시간 이른 새벽 난지도 파밭에서 파를 떼어 와 시장에 팔았다 차비를 아끼느라 걸어 다녔고 밥값이 아까워 해장국집 일 도우며 끼니를 해결했다 그렇게 파를 팔아 연명하고 마침내 부호가 된 그는 기부의 왕이 되었다 파 속처럼 욕심을 비운 그의 일평생이 생의 꽃대 위에서 하얗게 웃고 있다

 

 

 

 

이름표 김정식

 

 

별을 오려 작품란에 달았네

서투른 솜씨에 내 이름표를 달았네

네 자와 다섯 자인 내 이름표는

늘 석 자인 코팅된 이름표에 안 맞아

하느님이 그려주시는 새하얀 도화지 품속에

다시 들어가

새 이름표를 얻어 쓰네

 

가끔은 석 자의 이름표에 내 몸을 구겨 넣어

초성이 떨어져 나가 모음의 신발 끈이 풀리기도 하고

종성의 신발이

벗겨지기도 한다네

 

이중 국적인 나는 작품란 귀퉁이로 낮달처럼 밀려 나가

우두커니 서 있기도 하고, 서성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석 자인 이름표와 함께 작품란에서

샛별처럼 나타나기도 한다네.

 

 

 

 

폭설 이영란

 

 

절 뒤편

벽을 등진 스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 월간 우리7월호(통권421)의 시

                          * 사진 : 요즘 한창인 누리장나무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