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국 - 송연숙
청춘의 열정처럼 식지 않고
미국으로 이민 간 고모는 해마다 소고기와 말린 바나나와 원두커피를 보내왔다. 할머니는 양은 냄비에 된장국처럼 커피를 끓였다. 끓인 커피 맛을 보며 설탕을 한 숟가락씩 추가하였다. 설탕 맛이 쓴 커피 맛을 덮을 때 둘러앉은 식구들에게 한 대접씩 배당된 커피
커피에 두근거리는 심장이 들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밤새 두근거리며 울타리 뛰어넘는 양을 세다가, 똘똘 말린 구름을 깎다가, 빽빽하게 별이 뜬 아메리카를 상상하다가
뒤척이는 할머니의 등과 어깨가 심하게 두근거리는 것을 그때 비밀처럼 보고 말았다.
♧ 마지막 체온 – 윤태근
삼 년 전 칠순을 넘긴 아내는
베옷으로 곱게 단장을 하고
하얀 국화 송이송이 사이에서
공주처럼 잠들어 있습니다
미친 듯 엄마 엄마를 외치며
관을 부여잡고 울부짖던 큰딸은
엄마, 꼭 마중 나와야 해. 꼭이야~
손가락 십자가를 무수히 긋습니다
며칠간 꿈속을 헤매듯 허청대던 나는
수골실收骨室 앞에서야 정신이 듭니다
유골함을 받아 드니 아내의 체온이 따끈합니다
휘청~ 한 걸음 떼는데 아들놈이 제 품으로 앗아갑니다
♧ 파꽃 – 허향숙
무일푼으로 월남한 그는 북가좌동 무허가 판자촌에 살면서 남들보다 서너 시간 이른 새벽보다 서너 시간 이른 새벽 난지도 파밭에서 파를 떼어 와 시장에 팔았다 차비를 아끼느라 걸어 다녔고 밥값이 아까워 해장국집 일 도우며 끼니를 해결했다 그렇게 파를 팔아 연명하고 마침내 부호가 된 그는 기부의 왕이 되었다 파 속처럼 욕심을 비운 그의 일평생이 생의 꽃대 위에서 하얗게 웃고 있다
♧ 이름표 – 김정식
별을 오려 작품란에 달았네
서투른 솜씨에 내 이름표를 달았네
네 자와 다섯 자인 내 이름표는
늘 석 자인 코팅된 이름표에 안 맞아
하느님이 그려주시는 새하얀 도화지 품속에
다시 들어가
새 이름표를 얻어 쓰네
가끔은 석 자의 이름표에 내 몸을 구겨 넣어
초성이 떨어져 나가 모음의 신발 끈이 풀리기도 하고
종성의 신발이
벗겨지기도 한다네
이중 국적인 나는 작품란 귀퉁이로 낮달처럼 밀려 나가
우두커니 서 있기도 하고, 서성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석 자인 이름표와 함께 작품란에서
샛별처럼 나타나기도 한다네.
♧ 폭설 – 이영란
절 뒤편
벽을 등진 스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 월간 『우리詩』 7월호(통권421호)의 시
* 사진 : 요즘 한창인 누리장나무 꽃
'문학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대희 시집 '어느 날 찾아온 풍경들의 기억'(6) (0) | 2023.07.19 |
---|---|
계간 '제주작가' 여름호의 시(1) (0) | 2023.07.18 |
'혜향문학' 2023년 상반기호의 시(5) (0) | 2023.07.16 |
'정드리문학' 제11집 박수기정 관점의 시(2) (0) | 2023.07.15 |
남대희 시집 '어느 날 찾아온 풍경들의 기억'(5) (0) | 2023.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