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혜향문학' 2023년 상반기호의 시(5)

김창집 2023. 7. 16. 07:13

 

 

아이야, 나무처럼 - 한희정

 

 

비탈 선 나무들은 제 스스로 중심 잡는ep

휘면 휜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돌 움켜 생사를 넘듯 뿌리를 내린단다

 

이따금 언쟁에도 함께 사는 법을 배워

재촉하지 않아도 스스로 피고 지는

때 되면 몸살을 앓던 산벚꽃도 환하다

 

아이야, 흔들릴수록 중심을 찾아가지

곶자왈 나무처럼 네가 선 그 자리에

꿈 찾는 이역만리가 발아래 버틴단 걸

 

 

 

[초대작품]

 

 

탱자나무 울타리 민병도

    -추사적거지에서

 

 

참새가 포록포록, 낮달이 조는 빈집

자신이 가시인 줄 탱자나무는 모른다

한 번도 자신을 찔러 피 흘린 적 없기에

 

북소리 기다리는 결의에 찬 병사처럼

어깨동무 결연해도 아, 먼지만 쌓인 댓돌

절며 온 파도 소리를 애써 돌려 보낸다

 

긁힌 햇살, 찢긴 바람 놓친 줄 알면서도

마당가를 서성이는 발자국 일부러 놓쳐

두고 간 붓끝에 남은 숨소리를 지킨다

 

 

 

 

열사烈士의 뼈 - 김연동

    -우수리스크

 

 

황량한 동토의 벌 잡초만 무성하다

칼바람 앞에서도 환한 들꽃 피우듯이

간절한 소망 하나로

꽃피는 날 그렸다네

 

매서운 그 눈초리 차가운 그 결기로

높거나 낮음 없는 당신이 그린 조국

슬픈 강* 뼈를 뿌려서

이르고자 했던가

 

갈기갈기 찢겨진 땅 돌아보면 서러워라

짓밟혀 피 흘리는 넝마 같은 악몽 속에

절망이 바닥을 치던

그 사연 눈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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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설 열사의 유허비가 있는 쑤이펀 강’.(여행객들이 슬픈 강이라 부름.)

 

 

 

 

잠시, 부채 서일옥

 

 

비우러 떠나는데

마음 너무 무겁다

 

꺾어지는 골목길도

자꾸 돌아 보이고

 

물 먹은

포장지처럼

어깨도 내려앉네

 

냉장고에 붙여둔

한 주일의 식단표가

 

고래처럼 헤엄쳐서

달아날까 고심하며

 

마음의

거스러미를

바람에 밀어 보낸다

 

 

 

 

광합성을 위하여 - 임애월

 

 

호흡 푸른 그늘 아래

물관부 깊게 열어

잎새마다 빛살을 끌어 쟁인다

어디에나 초록이 질펀한 5

오래된 원시림 가지 끝에

새롭게 귀를 여는 기억의 세포들

놓쳐버린 시간의 궤도 위에

시퍼런 직립의 문장으로 부활한다

부리 긴 여름새가 물어 온 초록빛

그 살아있는 생명의 원형질

거친 야생의 몸짓으로

5월에 더욱 생생하게 덧나는

그리움을 덧칠한다

 

 

                              * 혜향문학2023년 상반기호(통권 제20)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