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계간 '제주작가' 여름호의 시(1)

김창집 2023. 7. 18. 09:12

 

 

우토로 마을의 먹구슬나무 강덕환

 

 

일본 교토부 우지시 이세다정 51번지 일대

혐오의 방화가 저지른 냉대의 터에

타다 남은 벽이며 기둥, 함석지붕

살갗이 벗겨진 먹구슬나무

살림살이 흔적들 고스란한데

 

웬걸, 그 옆 다른 가지

새 이파리로 살아 버티고 있었다

먹구슬나무야! 고맙다

연보랏빛 꽃이 피고 금빛 열매 맺기를

두 손 모아 으라차차 응원하는데

 

하필 그 순간 불에 타고도

악착같이 살아남아 43을 증언하는

선흘리 후박나무가 생각났을까

소개령으로 텅 비어버린

동광리 무등이왓이 떠올랐을까

 

차별과 편견의 당에도

쉼 없이 새 생명은 돋아날 터이니

현해탄을 넘나들며

평화의 박씨를 심는 찬란한 금빛

그 제비배지를 동백배지와 함께 단다

 

 

 

 

꿩ᄃᆞᆨ세기 강봉수

 

 

풀 덤방ᄒᆞᆫ 낭강알

오시록헌 디 꿩ᄃᆞᆨ세기가 빈주룽

이걸 어떵허코

잇날이라시문 확 ᄀᆞ저당 ᄉᆞᆱ아실 건디

오고셍이 놔둬사켜

 

읏어지문 어멍이 얼마나 을큰ᄒᆞᆯ 거라

베리싸브난 어멍이 ᄂᆞᆯ아난

아멩해도 용심나실 거라

손 타민 알을 품질 안ᄒᆞᆫ덴 ᄒᆞ는디

다 나 죄라

 

ᄆᆞᆫ 깨어낭 주왈주왈 기어나와시믄 좋으켜

거정청이 밧일 허느라

오소록헌딜 두령청이 베리싸부난

숭시가 난 거주

이런 답답도 시카

 

이왕 영 된 거 꿩ᄃᆞᆨ세기 잘 깨와도렌

설문대할망신디 빌어나 보주

우리 밧디 꿩ᄃᆞᆨ세기 굴룬 것 읏이 ᄆᆞᆫ 깨놔줍서

장꿩이 ᄌᆞᄁᆞᆺ디 곱아둠서

꿩꿩 각시를 불럼저

 

 

 

 

제주43, 항일을 잇다 김경훈

 

 

누군가는

한국전쟁 당시 에비검속은

43이 아니라고 우겨대더니

 

어떤 이는

일제강점기 항일투쟁은

43과 관련 없다 잡아뗀다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건 건가

나는 오직 나고 너는 다만 너인가

 

그러나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역사 또한 면면한 항쟁의 유전자로 이어진다

 

43이 다 해결되었다는 착각 속에

항쟁의 주도자들은 두 번 죽고 있다

 

사회주의가 항쟁을 주도했다

사회주의는 항일과 해방공간의 지지 이념이었다

이걸 부정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항일과 43은 하나로 연결된다

예비검속도 43이다

나가 너고 너가 나다

 

---

*소설가 현기영 선생의 말.

 

 

 

 

김광렬

 

 

꽃은 안에 날 선 칼을 지니고 있다

 

무섭게 자기를 단죄하는 칼

 

무슨 큰 탐욕이 자신을 찾아와

눈멀기 전에

 

서둘러 활짝,

 

삶의 정점에 이른 뒤 재빨리 진다

 

 

 

 

정방폭포 3 김규중

 

 

거대한 포말로 폭포수에 부서지던 파도는

구멍 뚫린 눈망울을 가슴에 품은 파도는

섶섬과 문섬을 몇 번이고 휘돌던 파도는

 

덧씌우기로 구멍이 뜷리고

갈라치기로 구멍이 뚫리고

비정상이라고 구멍이 뚫리고

 

죽어야 넘을 수 있다는 수평선

바람 따라 물결을 따라 수평선을 넘어가며

파도는

해상을 봉쇄하고 있던 군함을 보았는지 몰라

쿠로시오 해류에 합류하면서도

구멍 뚫린 눈망울을 놓치지 않고 꼭 껴안아

대마도 해안에 도착해서는

그를 고이두고 인사했는지 몰라

어니면

더 북상해서 동해에 올라 그는 파도의 하나가 되었는지 몰라

 

 

 

                             *계간 제주작가2023년 여름호(통권8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