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7월호의 시(4)

김창집 2023. 7. 22. 06:46

 

 

새들의 저울 - 김명숙

 

 

새들에겐 저울이 있다

나뭇가지에 내려앉는 새들은

발바닥 저울을 믿는다

 

무게를 재지 않아도

중심을 잡고

사뿐히 내려앉는 저 믿음

 

한 치의 오차라도 생기면

날개가 추락한다는 걸 알기에

그들의 믿음엔 흔들림이 없다

 

세상의 부모는

사랑을 무게로 재지 않는다

 

자식의 일 앞에서는

윤리 도덕이나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는다

 

잠시 잠깐 휘청대다가

이내 중심을 잡고

나뭇가지에 내려앉는 새들처럼

헌신의 수레바퀴를 돌린다

 

 

 

 

순간의 꽃 - 나병춘

 

 

돌에도 꽃이 피랴?

종일 돌아 앉아

돌덩이인 자신을 탓한다

 

하지만 햇살이 다가와

꼭 껴안아 주자

그늘에만 숨던 마음

화사하게 풀어놓는다

 

어디선가 흰나비 하나

위로하듯

어깨에 사뿐 앉는다

 

뜬금없이 나비가 떠나가도

결코 잊지 않으리라

그 오붓한 순간

꽃자리 그 향기를

 

 

 

 

느티나무 - 나석중

 

 

괜찮다

몸 한구석에 귀뚜라미가 울어도

 

보이지도 않는 귀뚜라미는 왜 와서 우는지

요즈음 보이지도 않는 아들에게 섭섭한 생각이 들 때

나는 깜짝깜짝 뉘우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나에게 서운한 때 많았을 거라고

 

그러니 아들아 너는 걱정하지 마라

너도 일가를 이룬 나무, 몰아치는 비바람 잘 견디며

귀뚜라미처럼 괜히 와서 우는 일 없도록,

 

해가 짧아지면서 오른쪽 무릎에서 악기 소리가 나지만

몸이 알아서 현 한 줄 심심치 않게 튕겨주는 일

이제 뼈가 닳고 가슴이 밭는 일도

괜찮다.

 

 

 

 

아껴 접는 밤 - 김나비

 

 

명치에 접어둔 말들이 불쑥 울대를 타고 올라오듯

접은 날들이 자꾸만 펴지는 밤이면 나는 색종이를 접어요

대문 접기부터 시작해요

꾹꾹 눌러 접을 때마다

펼 수 없는 몸 가진 영혼을 생각해요

삐거덕 누군가 문을 열고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소리가 들려요

 

접은 것들은 모두 단단해요

펼쳤을 땐 깃털 같고 난로 같은 것들이

접고 나면 차갑게 뼈에 박히죠

빗물을 받아내다 접은 우산도 숨을 접은 당신의 몸도

 

마른 들깨 줄기 같은 손가락에 맥박 줄을 달고 검게 늘어진 밤

심박 그래프 파리하게 멈출 때

세상을 접고 돌이 된 숨

다르촉처럼 펄럭이는 오동나무 아래

접힌 숨을 심고 물을 줘요

 

언제부터 익혔을까요 숨 접는 법을

기억을 아껴 접다가

접히지 않는 시간은 어둠 속에 묻기로 해요

밤새 접은 파란 심장을 꿈속에 두고 오죠

펴고 접고 또 펼친 헐렁해진 종이로

새로운 대문을 접을 수 있을까요

삐거덕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아요

 

접힌 색종이를 명목처럼 펼쳐 밤의 얼굴을 덮어요

 

---

*종이접기의 기본 접기 중 하나.

 

 

 

 

해오라비난초 홍해리

 

 

조카사위 간 날 너를 만났다

해오라비난초!

 

장례식장

신발마다 동서남북 제각각 갈 길을 향하고 있었다

영정 속에 갇혀 있는 저 생생한 사내

겨우 사십을 살고 가는 저 사내 가는 길이나 알까

한켠에서는 벌써 불콰한 얼굴들이 소주잔에 빠져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앞에는 검은 치마저고리들이 훌쩍이고 있었다

겨우 인생 초반을 살고 떠난 사내

조카사위! 하고 한 번 불러보지도 못한 사내

아홉살과 여섯살은 잔치집인 듯

문상객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천진과 난만이 어디까지이고 언제까지일까.

세상에, 세상에, 무엇이 그리 급해

울울창창 사십에 이승을 버리고 가나

부모 앞서 가는 것을 참척慘慽이라 하니

얼마나 참혹한 일인가

누군들 오가는 것을 알 수 있으랴만

누구나 오가는 걸 막을 수 있겠느냐만

그래도 그래도 사람이 하늘이라 했는데

청청벽벽靑靑碧碧 인생 마흔은 돌아설 수 없는 나이

가는 곳이 잔치마당이라면 얼마나 좋겠느냐

저 검은 꽃 한 송이 어쩌란 말이냐

울음에 북받쳐 헉헉대는 목쉰 꽃 한 송이

넋이 나간 저 꽃을 어쩌란 말인가.

 

부디, 좋은 곳으로 가거라

해오라비처럼 날아가거라!

 

 

                   * 월간 우리20237월호(통권 421)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