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남대희 시집 '어느 날 찾아온 풍경들의 기억'(8)

김창집 2023. 7. 29. 00:07

 

 

어느 주검

 

 

참새가 죽었다

한 뼘도 안 되는 풀들도 함께 죽었다

아직 어깻죽지의 근육은 하늘로 치솟아 있고

잔털은 바람을 불러 세우는데

분주했던 공중의 날들

기록되지 않을 역사이며

깃털같이 가벼운 생이었지만

별것 아닌 생이 어디 있냐고

길 없는 하늘에 길을 내며

한 뼘 한 뼘 걸어온 허공이 모두 길이 되기까지

새털 같은 날들 그렇게 다녔다면

창공도 깃털로 낸 한 길

 

어느 외로운 주검에 관한 기사가

인터넷 뉴스 모퉁이에서

광고 박스에 눌려 있다

 

 

 

 

비누

 

 

대리석 위를 걷는 경쾌한 맵시

본 적 있나요

 

만지지 말아요

커지는 것들은 모두 거품이에요

이는 거품만큼 자꾸만 작아져요

 

모양은 취향일지 몰라도

향기는 숙명이에요

 

오늘 하루도

젖은 몸 말리며

거품을 지울 거예요

 

 

 

 

묵상

 

 

나는 지금

 

토끼풀의 조바심에 대하여

개망초 꽃의 허기짐에 대하여

수선화의 상한 자존심에 대하여

소금쟁이 발자국의 가벼움에 대하여

출렁이는 호수의 분주함에 대하여

민들레 꽃씨의 불안함에 대하여

왕버들 가지에 앉은 잠자리의 초조함에 대하여

처마 밑에 길목을 만들고 하염없이 지키는

거미의 소망에 대하여

 

 

 

 

이명

 

 

울창한 숲

매미 떼가 때 없이 울고

전깃줄 위에서

바람이 팽팽하게 시위를 당긴다

댓잎 비비는 소리

베갯머리에서 춤을 추고

급기야

파도가 밀려오고 뱃고동 소리가

눈까풀을 열고 쏟아진다

 

 

 

 

코로나 19

 

 

사람들 얼굴에 코와 입이 사라졌다

까만 눈만 동동 떠 있다

만질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것들

얼굴을 갉아먹고 하얀 헝겊으로 가려 놓았다

 

 

                *남대희 시집 어느 날 찾아온 풍경들의 기억(우리, 2023)에서

                                          *사진 : 요즘 막 피기 시작한 소엽풍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