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메마씸* – 김영란
섬에선 나무들도 바람의 눈치를 본다
머리채 잡혀 끌려가던 북촌마을 머귀나무도
“예”인지 “아니오”인지 끝내 답을 못했나
직립을 포기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거 봐
무자년 섬사람들의 생존의 그 화법처럼
쉽사리 꺼내지 못한 채 맴돌고만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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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의 제주말.
♧ 시국선언 – 김연미
참을 만큼 참은 거야
내 탓이라 하지마
활성화된 DNA 생존본능을 자극해
부당한 분배 앞에서 침팬지처럼 울부짖지
가지 치고 꼬리 자르고
자연선택을 도용해
사람종 진화의 길에 약육강식도 끌어오고
분노의 유전인자를 자꾸 도태시키지
꼬리를 내리지 마
길들여지지 않을 거야
두 발로 선 피테쿠스
지혜에 지혜를 얹어
울타리 걷어치우고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
♧ 문득 흰 바람이 불었는데 – 김정숙
길 잃어야 한다면
딱 여기서 잃고 싶다
밟을까 꺾을까 아님 매달릴까
꽃샘이 날밤을 새도
어쩌지 못한 민오름 아래
이끼 깔고 낙엽은 덮고 한뎃잠을 자다가
느, 피면 나도 피고
느, 돋으면 나도 돋아
눈에는
잎에 잎 맞추는
파르르르 바람꽃
♧ 콩짜개난 – 이애자
콩알만 한 것은 콩알만 한 눈치로 살아 살갑지도 밀어내지도 않는 저 바위에
붙어 산 초록이 전혀 발칙하지가 않네
♧ 느나 웃으멍 살라 – 오영호
무슨 일 있으과?
얼굴에 써 저시냐?
부애*난 사람처럼 보염싱게마씀 속이진 못헛겨 느도 알다시피 요새 세상 돌아가는 걸 모민 북부기** 됐사젼 웃어지커냐 코로나도 좀 수그러들언 이젠 좀 삶이 페와질 건가 ᄒᆞ단보난 말은 국민을 위한 버지르ᄒᆞ게 ᄒᆞ멍 편 갈란 피 터지게 싸움질만 ᄒᆞ니 나랏꼴이 원
경해도 웃으멍 삽서
느나 웃으멍 살라
---
*부아
**폐
*계간 제주작가 여름호(통권 제81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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