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양동림 시집 '여시아문'의 시(1)

김창집 2023. 8. 12. 00:16

 

 

시인의 말

 

 

완생을 꿈꾸는

미생에게 바칩니다.

 

         202382

 

 

 

 

바둑

 

 

내 돌 하나 날라다 놓으면

너도 하나 날라다 놓고

내 집 한 채 지을 때 너도 집 한 채 지으면

그럭저럭 서로 살자고 할 것을

내 살려 터 닦은 곳에

자네가 돌 하나 탁 던져 놓으면

나도 자네 집터에 돌 던지고 싶고

이러저러 서로의 집이 부서지고 깨지고

나 한 번 자네 한 번

흑색이고 백색이고

서로 담장에 색칠만 달리해서

둥가둥가 어울려 살면 될 거인데

어허라 싸우고 어우러지고

힘센 놈이 이기는 게

그런 게 세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슴 아픈

집 없이 떠도는 설움

반반한 내 터에 내 기둥 하나 세워

한 계절 흐르니

그대 또한 한 계절을 기둥 세워

하늘 한 번 바라보고

마주 보고 내 다시 기둥 세우고

그대 또한 어우러지니

잔잔한 세계에 흰 별 검은 별

슬며시 내려와 자리 잡아

어느 순간에 삶의 이야기가 되고

세상사는 노래가 되고

 

 

 

 

수담(手談)

 

 

내가 하는 말보다

상대가 하는 말을 더 들으려 애쓴다

나는 말을 하였으되

상대가 모르길 바라고

상대가 하는 말은 바로 알아차려야 한다

나는 이중 삼중의 뜻을 말하고

상대가 하는 말은

그 중 제일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그러고 그에 맞는 답을 내가 해야 하는 것

손짓 한 번에 세계를 담고

손과 손이 오가며 우주를 담아내는

바둑판 속 돌들의 언어

 

 

 

 

 

 

힘이 없는 나는 쫓기고 있다 외길이다

내가 갈 길을 이미 다 알고 있는 놈은

끈질기게 쫓아오며 목을 죄어오고 있다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머리를 두드리며

양쪽을 번갈아 길을 막아서는 상대는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자칼처럼 날쌔다

나는 결국 동료들과 멀리 떨어진

가젤처럼 최후를 맞을 것이다

 

 

 

 

장문(藏門)

 

 

그물에 갇혀 버렸다

조금만 더 가면 친구가 저기 보이는데

촘촘한 그물을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물고기

서서히 말라가는 내가 보인다

비옵니다! 비옵니다!

비록 내가 살지 못한다 해도

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고

 

 

                     * 양동림 시집 여시아문(한그루,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