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정드리문학 제11집 '박수기정 관점'의 시조(6)

김창집 2023. 8. 17. 00:19

 

 

순례길 정지윤

 

 

멀리서 종소리

꽃나무를 흔든다

 

능선을 자르며 떨어지는 꽃잎들

 

꽃들이 떨어질 때마다

새들이 날아오른다

 

 

도저히 알 수 없는

노래가 출렁거린다

 

언제나 나에게만 들리던 그 노래

 

망초가 하얗게 흔들리고

시간이 우거져 있었다

 

 

 

 

불란지 양희영

 

 

청수리 곶자왈로

반딧불이 찾아간다

 

캄캄한 더듬길에

소리도 불빛도 끄고

 

내 어둠

거두어가는

그 웃뜨르 꽁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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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두 수는 제주를 노래한 시’.

 

 

 

 

씨앗의 힘 - 문순자

 

 

서울 사는 둘째가 카톡카톡 날 부른다

전시회에 왔다며 보내온 사진 한 장

이건 뭐?”

내가 묻자 그만 울먹거린다

 

오래된 주문처럼 여섯 개의 유리병엔

홍두 메밀 흑보리 자색보리 갓 참깨

코르크 마개로도 못 막은

돌아가신 할머니 냄새

 

만지면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좀팍과 푸는체로 까발리던 갯노멀 씨앗

그날 그 감촉이 그만

뇌관을 건드린 거다

 

 

 

 

감자 먹는 날 - 조영자

 

 

유월 초사흘 달도 어떻게 알고 왔는지

까만 손 여남은 개가 낭푼이에 들락인다

봄 내내 허기진 뻐꾸기 울음 몇 점 보태는 날

 

안덕면 상창리는 어머니 단골 마을

자리 삽써, 자리 삽써퐁낭 그늘에 장이 섰다

젓자리 한 됫박이면 하지감자 두어 됫박

 

어머닌 어딜 가나 범섬 자락 안에 든다

자리 몇 줌 슬쩍 건네면 보리밥이 한 그릇

떨이도 다 끝난 구덕 마을 인정 지고 간다

 

 

 

 

아버지의 가을 강현수

 

 

아버지 가슴에도 노을 하나 숨어 산다

11월 과수원은 저 혼자 물이 들고

오래된 기침소리도 상자마다 담는다

 

가끔 술기운에 그 안 살짝 헐리면

지상의 제삿날엔 찾아오지 않겠단다

한평생 가위손으로 다스려온 이 영역

 

초고속 카메라에 가을이 툭 걸리면

포르말린 그 냄새도 이골이 나셨는지

병원 행 아예 뚝 끊고 바람에 몸 맡긴다

 

 

            * 정드리문학 제11박수기정 관점(문학과 사람,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