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양동림 시집 '여시아문'의 시(2)

김창집 2023. 8. 20. 07:59

 

 

칫수

 

 

친구들끼리 당구를 칠 때도

약한 자에게 핸디캡을 주고

정정당당하게 하는데

세상은 모순이다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그는

화점을 빼곡하게 차지한

학벌 인맥 지연 재산 중요한 곳은

모두 상대가 차지하고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은

한 눈에 알 수 있었지만 경기는 시작되었고

부조리한 규칙들은 법이었고 관례였다

새까만 암흑천지에 하얀 돌 하나 툭

던져 놓았다

밤하늘 수많은 별들 사이에

나는 희미하게 반짝이는 조그만 별이었다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까?

 

 

 

 

미생

 

 

집 없이 떠도는 삶을 살아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비참한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저렇게 많은 집중에 내 집이 없다는 것이 더 슬프다.

어렵사리 담을 쌓고 집을 지으면

무허가라고

도로가 없다고

사정없이 허물어 버린다

남의 집에 빌붙어 겨우 지내는 삶

해마다 돌아오는 재계약

꼬박꼬박 올라가는 인상금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하루살이 같다

죽도록 일을 해도 이 땅에 내 집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일지 모르는 생각이 엄습해온다

그래도 완생을 꿈꾸는 나는

시영 임대주택도 신청해보고

공공임대 주택사업도 들여다보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투잡에 쓰리잡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다 보면 예쁜 꽃들이 자라는

마당 있는 집을 짓고 살 수 있다는 생각에

힘차게 돌을 놓는다

 

 

 

 

자충

 

 

검진 결과지를 들여다보며

의사는 뻔한 말을 한다

술 좀 줄이시고요

담배는요? 안 피운다니 그나마 다행이네요

혈관에 기름이 찼네요

운동도 좀 하시고요

로제타라고 고지혈증 약 처방할게요

두 달 후에 봅시다

그때까지 좀 빼시고요

 

무심코 나의 배 속을 채우는 행동이

그나마 남아있는 나의 혈관을 막아 버렸다

포도송이처럼 늘어난 나의 뱃살은

결국은 나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다는 것을

진작 알아차렸어야 했다

살기 위해서는 날렵하게 뛰어다녀야 한다

 

 

 

 

33 침입

 

 

 

1. 알 박기

 

몇 번에 걸쳐 터 닦은 곳에

덩그러니 놓인 돌 하나

알 박기

아무리 궁리해도 치울 수 없어

귀퉁이 집 내주고

울며 겨자 먹기로

이웃하여 사는 삶

 

2. 상륙작전

 

적에게 둘러싸여

모든 땅이 적진이라 생각될 때

기습이다

삼삼한 곳

삶과 삶이 만나는 곳

33을 차지하라

인천 상륙작전처럼

결국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음이니

삶삶을 기억하라

 

 

 

 

돌을 던지다

 

 

더 이상의 싸움은

많은 사상자와 돌아올 수 없는

포로들을 남길 뿐임을 알기에

눈물을 머금고

상대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졌습니다

 

흐르는 눈물은 짜디짜다

혈관마다 다음에는 몇 배로 갚아준다는

피의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불현듯 나라를 되찾으려

만주로 떠났다는 할아버지가 떠오르고

나는 바둑판으로 돌아와

빼앗긴 땅들을 되찾고

소리 높여 웃을 것이라는 각오가 생긴다

 

 

 

                   *양동림 시집 여시아문(如是我聞)(한그루, 2023)에서

                                            * 사진 : 알프스의 사계(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