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서귀포문학' 2023호의 시(1)

김창집 2023. 8. 22. 00:20

 

[고 오승철 시인의 대표작]

 

 

송당 쇠똥구리 1

 

 

겨울 송당리엔 숨비소리 묻어난다

바람 불지 않아도 중산간 마을 한 녘

빈 텃밭 대숲만으로 자맥질하는 섬이 있다

 

대한에 집 나간 사람 찾지도 말라 했다.

누가 내 안에서 그리움을 굴리는가

마취된 겨울 산에서 빼어낸 담낭결석(膽囊結石)

 

눈 딱 감고 하늘 한 번 용서할 수 있을까

정월 열사흘 날, 본향당 당굿마당

4.3땅 다시 와 본다, 쌀점 치고 가는 눈발.

 

그렇게 가는 거다. 신의 명을 받아들면

정 하나 오름 하나 휘모리장단 하나

남도 끝, 세를 든 세상, 경단처럼 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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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당리 : 구좌읍의 중산간 마을. 멸종 위기의 쇠똥구리는 이 지역 인근 오름 등에서만 볼 수 있다.

   

 

 

 

?”

 

 

솥뚜껑 손잡이 같네

오름 위에 돋은 무덤

노루귀 너도바람꽃 얼음새꽃 까치무릇

솥뚜껑 여닫는 사이 쇳물 끓는 봄이 오네

 

그런 봄 그런 오후

바람 안 나면 사람이랴

장다리꽃 담 넘어 수작하는 어느 올레

지나다 바람결에도 슬쩍 한번 묻는 말

?”

 

그러네, 제주에선 소리보다 바람이 빨라

안에 계셔?’ 그 말조차 다 흘리고 지워져

마지막 겨우 당도한

고백 같은

그 말

?”

 

 

 

 

터무니 있다

 

 

홀연히

일생일획

긋고 간 별똥별처럼

한라산 머체골에

그런 올레 있었네

예순 해 비바람에도 삭지 않은 터무니 있네

 

그해 겨울 하늘은

눈발이 아니었네

숨바꼭질 하는 사이

비잉 빙 잠자리비행기

<4. 3> 중산간 마을 삐라처럼 피는 찔레

 

이제라도 자수하면 이승으로 다시 올까

할아버지 할머니 꽁꽁 숨은 무덤 몇 채

화덕에 또 둘러앉아

봄꿩으로 우는 저녁

 

 

 

 

ᄆᆞᆷ국

 

 

그래, 언제쯤에 내려놓을 거냐고?

혼자 되묻는 사이 가을이 이만큼 깊네

불현듯

이파리 몇 장 덜렁대는 갈참나무

 

그래도 따라비오름 싸락눈 비치기 전

두말떼기 가마솥 같은

분화구 걸어놓고

가난한 가문잔치에 부조하듯 꽃불을 놓아

 

하산길 가스름식당

주린 별빛 따라들면

똥돼지 국물 속에 펄펄 끓는 고향바다

그마저 우려낸 ᄆᆞᆷ국,

ᄆᆞᆷ국이 되고 싶네

 

 

 

 

사고 싶은 노을

 

 

제주에서 참았던 눈

일본에 다시 온다.

삽자루 괭이자루로

고향 뜬 한 무리가

대판의 어느 냇둑길

황소처럼

끌고 간다.

 

파라, 냇둑공사 다 끝난 땅일지라도

40여 년 <4·3>은 다 끊긴 인연일지라도

내 가슴 화석에 박힌 사투리를 쩡쩡 파라

 

일본말 서울말보다

제주말이 더 잘 통하는

쓰루하시*, 저 할망들 어느 고을 태생일까

좌판에 옥돔의 눈빛 반쯤 상한 고향하늘

 

송키**, 송키 사압서낯설고 언 하늘에

엔화 몇 장 쥐어 주고

황급히 간 내 눈님아

한사코

제주로 못 가는

저 노을을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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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루하시 : 일본 대판에 있는 쓰루하시(鶴橋)는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 제주도민들이 <평야천>공사를 위하여 노역을 갔다가 집단적으로 모여 사는 곳이다.

**송키 : ‘야채반찬꺼리의 제주어.

 

 

                                 * 서귀포문학2023(통권 3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