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월간 '우리詩' 8월호의 시(4)

김창집 2023. 8. 24. 08:19

 

 

물의 변증법 나병춘

 

 

보이는 물방울,

얼음은 물이 아니다

숲속에 가서

헌걸찬 키 큰 나무 분수대 노래를 들어라

초록 잎사귀들이 늴리리야 춤사위를 보라

 

참나무는 참나무

소나무는 소나무

자작나무는 자작나무의 초록 물방울 소리

새초롬한 오솔길의 슴슴한 바람 소리

성난 바다의 얼굴로

섣불리 판단하지 마라

 

진달래 꽃불의 노래

만리향 만병초 수만리 향기에 함빡 젖어서

천지연 장백폭포 소리 들어라

 

물은 그냥 물방울이 아니다

네 심장 박동소리

그것이 바로 진정한

물방울이다

 

 

 

 

개밥바라기별 이화인

 

 

어슴푸레 동트는

꼭두새벽 길

 

옷깃을 붙드는 이

그 누구신가?

 

징검징검 건너온

해쓱한 달님

 

걸망 속에 넣어 준

통감자 한 알.

 

 

 

 

노송의 말씀 이윤진

 

 

병풍산 제일봉 기슭

면앙정자

솔바람 불어와

억새꽃 은빛으로

몸을 풀었네

 

황혼길 달려온 세월

쉬어 가라

지친 몸 다독여 주네

 

갈잎 속삭임

바람의 숨결 모두 받아 주며

생의 한 모퉁이를

가만히 돌아가는 억새꽃

그 영혼에 입을 맞추네

 

굽이쳐 내려가는 산길

한적하게 걸어 볼까

돌아보지 못한 삶이

나를 보며 손짓하네

 

오래 버린 마음

허무해질까

쓰러질 듯 무심하게

뒷짐 지고 서 있는

노송 한 그루의 말씀

할아버지의 음성처럼

무겁게 다가오네

 

 

 

 

상사화相思花 4 - 임승진

 

 

폭풍우 속으로

눈물처럼 걷는다

 

하루가 천 년 같아도

꽃 피울 날 기다렸는데

 

불타는 햇볕보다

더 뜨거운 약속

 

그리움 지울 수 없다면

언제나 만날 수는 있을까

 

 

 

 

여미다 - 성숙옥

 

 

나는 엄마와 결혼할 때까지 한방에서 잤다

잠버릇이 있는 나를 염려해

밤마다 이불을 여며 주시던 엄마의 손

 

그때는 몰랐다

공기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나는 엄마의 아가여서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그 어떤 일에도 내편인 사람

 

형제간에 서운한 일이 생겨 엄마에게 하소연할 때면

 

마음이 넓은 네가 이해해라

 

이렇게 말씀하시며 찬바람 들어오는 내 마음 간극을 따뜻하게 여며주었다

 

이불 밖에 나와 차가워진 내 발이

추위가 몰아치는 겨울밤을 여밀 때마다

나는

없는 엄마의 이불을 여미고

 

 

                          *월간 우리8월호(통권 422)에서

                                       * 사진 :  소엽풍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