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서귀포문학' 2023호의 시(2)

김창집 2023. 8. 27. 07:10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 강영은

 

 

당신은 나를 건너고 나는 당신을 건너니

우리는 한 불빛에 닿는다

눈발 날리는 저녁과 검은 강물처럼

젖은 이마에 닿는 일

떠나가는 물결 속으로 여러 번 다녀온다는 말이어서

발자국만 흩어진 나루터처럼

나는 도무지 새벽이 멀기만 하다

당신의 표정이 흰색뿐이라면

슬픔의 감정이 단아해질까

비목어처럼 당신은 저쪽을 바라본다

저쪽이 환하다

결계가 없으니 흰 여백이다

어둠을 사랑한 적 없건만

강둑에 앉아 울고 있는 내가 낯설어질 때

오래된 묵향에서 풀려나온 듯

강물이 붉은 아가미를 열고

울컥, 물비린내를 쏟아낸다

미늘 하나로

당신은 내 속을 흐르고 나는 당신 속을 흐른다

 

 

 

 

추억의 솔렌자라Solenzara 강중훈

 

 

   어젯밤 산책길엔 가마우지 한 마리를 만났네 녀석은 바닷가 바위 끝에 앉아 있었네 놀란 가마우지 날개 펼쳐 떠나려다 그냥 차라리 까맣게 날개 접고 말았네 바위도 가마우지도 까맣고 까매서 눈앞에 보이는 건 모두가 까만 것뿐이었네 오던 길에 다시 돌아본 내 모습도 그새 까맣게 물들어 있었네 젊은 연인 한 쌍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네 콧노래를 부르네 추억의 솔렌자라

 

 

 

 

첫눈 강태훈

 

 

장독대에 내린 진객

눈부시고 상큼한데

 

꼬리치며 달려드는

너무나 착한 순둥이

 

섬의 상징인 영산엔

전설 같은 녹담만설.

 

 

 

 

지갑 김성수

 

 

넓이가 아닙니다

 

,

 

깊이가 아닙니다

 

 

,

 

높이가 아닙니다

 

나는,

 

-햇살 너머너머 손그늘 같은 것

 

 

 

 

멀구슬나무꽃 피는 사이 강방영

 

 

!

생각은 동작에 집중

몸은 하나로 통합하고

노래의 길을 따르기

물방울처럼 스며드는 음악

부풀어 오르는 세포들

시간은 새 순처럼 여리다

 

창 밖 멀구슬나무

잎 벗고 열매 떨구면서 겨울 보내고

다시 보랏빛 꽃 무더기로 서서

몇 곡 더 춤이 지나는 사이에

새들과 함께 날며

꽃들은 열매로 노랗게 익어

은빛 겨울 하늘 구름 위로 가고

 

노래!

끊어지지 않는 가락

한 발 또 한 발 지친 몸들 이끌어

모든 일들은 뒤에 남겨두라 하고

다른 세상을 찾아서 가는 길

쉬지 않고 나가는 먼 하늘

 

 

                            *서귀포문인협회 간, 서귀포문학2023(통권35)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