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노을 - 고해자
때로는 저녁노을 경쾌한 저 붓놀림
예술적 감성마저 가감없이 표출한다
제트기 새하얀 연기 직선으로 앉은 터
어떠한 의식 중인 순간 속 찰나처럼
하얀 줄 가로 구름 주홍빛 연출 무대
긴 한 획 한 획씩마다 오롯한 저 집중력
저들도 가감 없이 올곧은 터치 즐겨
사람도 자연계와 맞장뜨면 안 될 처지
갑자기 숙연해지는 이심전심 화들짝
♧ 형제섬 – 윤행순
모슬포 찾아오면
몸쓸 내가 보인다
들물날물 거센 날도 서로가 부둥켜안고
어머니
안 계신 바다
지켜내는 저 섬들
♧ 친정의 별 - 양시연
내 어깨 반쯤 적시고 돌아서는 봄비처럼
춘분 언저리쯤 별 하나를 놓쳤네
서귀포 올레길에서
별 하나를 놓쳤네
한때는 이팔청춘 수평선도 떠돌았다
테왁도 울릉도도 함께 도는 육지 물질
그렇게 여름 한철을
물숨 참듯 버텼다지
차 떼이고 포 떼이고 남는 건 숨비소리
대물릴 게 없어서 물질을 물리냐며
어머니 자맥질 소리
쏘아 올린 카노푸스
♧ 어떤 낙엽 – 오순금
세월이 흐를수록
친구들이 멀어진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움은 깊어진다
내 안에
사는 그대여
벌레 먹힌 낙엽이여
♧ 스마일라식 - 오은기
새벽 눈뜨자마자 휴대폰을 찾는다
교정시력 0.3 미세먼지 농도 높음
안경은 그저 폼이다
똥폼이나 잡아본다
와이퍼로 닦아 봐도 세상은 늘 뿌옇다
어떤 날은 개똥 밟고 돌부리에 걸리고
이럴 땐 지나는 바람
그냥 확 들이박고 싶다
스마일라식이라더니 스마일은 무슨 개뿔
딸아이 떠난 날처럼 눈물콧물 범벅이더니
눈 뜨면 뻔뻔하게도 핸드폰 또 찾는다
♧ 위치 추적기 – 이미순
요금 폭탄 맞고서야
정신이 번쩍 든다
꼭지란 꼭지 다 잠궈도
팽팽 도는 계량기
내 사랑 어디서 새나
두 손 두 발 들었다
제주의 돌 창고 집
리모델링한 지 8년째
머리에 쥐나도록
설계도면 늘려 본다
여자의 촉으로 찾아 나선
그 사람 행선지처럼
오늘 또 실감한다
등 잔 밑이 어둡단 말
한 달째 셀 만한
여기저기 난리 친 후
마침내 찾아낸 곳이
안방 침대 밑이라니
*정드리문학 제11집 『박수기정 관점』 (사람과 문학, 202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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