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양동림 시집 '여시아문'의 시(4)

김창집 2023. 8. 30. 00:56

 

 

귀곡사

 

 

1

귀신이 곡할 노릇

집이 넷이나 있는데

곡사면 살아 있다 했는데

하필 집 지은 곳이

막다른 곳이라

죽음을 맞는 귀곡사

 

2

살아있는 줄 알았다

동굴에 숨어서

숨쉴 활로도 있고

당장 누가 공격해오지도 않을 줄 알았다

가만히 있으면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간간이 총소리 들리고

연기가 피어올라도

토벌대가 찾기 힘든 험한 곳

그들도 들어가면 죽을 수 있는 곳

아무 일 없는 줄 잊혀졌었지

대국이 끝나고

하나 둘 주검들을 찾아낼 때

통곡 소리만 들렸다

아직 살아 있는 듯한 유골이

세상에 드러날 때

굴속에서 생을 마감했을 아픔이

온 다랑쉬를 울렸다

 

 

 

 

먹여치기

 

 

살 수 없음을 알지만

진주 남강 푸른 물에 적장을 껴안고

주저 없이 뛰어든 논개처럼

 

내가 죽어도 이 나라가 살 수 있다면

폭탄을 부여잡고 적진에 뛰어든 이봉창 열사처럼

전부를 살리는 일에 나의 한 몸 두려우랴

 

 

 

 

사석 작전

 

 

이순신

이봉창

전태일

그리고 수많은 동지들

 

나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

우리 승리하리라

 

 

 

 

쇄국정책

 

 

나라가 힘이 세면 굳이 문을 닫을 필요 있겠는가?

힘이 없어 문을 닫으면

이웃들이 갖은 방법으로 위협하여

문 열어라

문 열어라

지켜준다 보호한다

동맹이다 혈맹이다 하지만

정작 자기는 자기가 지켜야 한다

적이 쳐들어와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지만

평상시는 문을 열고 힘을 키워야 한단다

1선과 2선은 나라의 문이니

평상시는 닫지 말고

3선으로 집을 짓고

4선으로 힘을 키우거라

 

 

 

 

반전무인

 

 

네 앞에 누가 있느냐

어제는 누구였고 오늘은

또 누구이더냐

너의 앞에 권력을 잡은 강한 자도 올 수 있고

힘이 없는 노동자가 올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잣대가 다르면 되겠는가

눈을 뜨고 판을 바라보라

어떠한 국면인지

상대가 누구든지 형국에 맞게 착점을 하거라

하수 앞에서 우쭐대지 말고

상수 앞에서 주눅들지도 말고

너는 너의 바둑을 두거라

 

 

* 양동림 시집 여시아문如是我聞(한그루, 2023)에서

* 사진 : 흰 배롱나무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