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배진성 시집 '서천꽃밭 달문 moon'의 시(4)

김창집 2023. 8. 31. 00:10

 

 

헛묘 1

 

 

  정방폭포로 간다 정방폭포 앞바다로 간다 태평양으로 간다 혹시, 아는 사람이 뼈 한 조각이라도 가져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고향으로 간다 동광리로 간다 무등이왓으로 간다 삼밭구석으로 간다 혹시, 살 한 점이라도 붙어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또 다시 낭떠러지 위로 간다 절벽의 바위를 뒤진다 폭포 아래 바위를 뒤지고 물속을 뒤지고 바다 속을 뒤지고 바다 속 물고기들을 뒤지고 물고기 뱃속을 뒤진다 혹시, 숨결 하나라도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 허공 속을 뒤진다 더 높은 하늘을 뒤진다 구름 속을 뒤진다 빗방울 속을 뒤진다

 

  뒤지다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이 지상을 떠난 뒤에도, 집 앞으로 몰려든다 죽어서도 몸을 찾지 못한 영혼들이 작은 단서라도 얻어 들어려고 찾아든다 이렇게 찾아와 밤새 이야기하는 영혼들을, 살아있는 사람들은 목백일홍이라고 말한다 백일홍 나무라고 말한다 배롱나무라고 말한다 그 곁에 있는 충혼묘지에도 백일기도하는 붉은 꽃이 있다 죽어서도 영혼을 찾지 못한 몸들이 있다

 

 

 

4

 

 

1

새벽에 일어나 밖에 있는 화장실에 간다

새벽까지 잠들지 못한 눈빛들이 반짝인다

마루에 서서 마당으로 오줌을 싸는

어린 내가 떨고 있다

예감이라도 한 듯

한기를 느낀 아이들이 떨면서

들어간다

 

2

아침에 소나무와 인사를 한다

새로 올라온 순에서 잎이 돋아난다

태양의 씨앗처럼 솔방울 씨앗도

붉게 떠오른다

부드러운 가지와 부드러운 잎이

가슴을 찌른다

 

3

오전에 바다를 본다

4년 전에도 병실에 누워

침몰하는 세월호 생중계를 보았다

오늘은 바다가 눈부시게 빛난다

 

4

해마다 4월이면

별들이 꽃으로 피어나 심장이 아프다

꽃들이 별들로 빛나서 가슴이 아프다

바다에 침몰한 눈빛이 빛나서 더욱 슬프다

 

 

 

 

바람의 말

 

 

귀뚜라미가 운다

가을을 기다려온 사람들의 귀에는

울음소리도 아름답게 들린다

 

천사의 나팔꽃도 시들고

악마의 나팔꽃도 시든다

해를 따라다니던 해바라기 날개도 마르고

가슴속 가득 피어난 별꽃 젖꼭지들도 이운다

고개 숙여 제 발목을 내려다보는 까만 눈동자

해바라기 씨앗에 젖을 물리던 별들이 떠난다

 

헛묘가 있는 동광육거리에서 영어마을로 간다

무등이왓과 삼밭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김익렬 연대장과 김달삼 무장대 총책이 만나

428 평화회담을 했던 구억초등학교 찾아간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평화가 보이지 않는다

구억초등학교가 보이지 않는다

대정북공립초등학교가 보이지 않는다

노랑굴과 검은굴을 둘러보아도 항아리 하나 보이지 않는다

구억리에는 바람도 영어로만 말한다

 

붉은 노을 속으로 해가 지고

귀뚜라미가 다시 운다 아직은

바람의 말들을 알아들을 수 없어 나도 따라서 운다

 

 

 

 

등에 기대다 1

 

 

등 뒤에서 안아주는 당신의 심장이

나의 잠든 심장을 흔들어 깨운다

 

어린 딸이 자전거 뒷자석에서

아버지 허리를 깊이 끌어안는다

 

나는 바람을 싣고

떡갈나무 숲으로 간다

 

떡갈나무 잎들이 날아

등을 끌어안으며 쌓인다

 

새들이 날아오르고

하늘의 등이 반짝인다

 

해의 등을 한 번 안으려고

달이 부지런히 가고 있다

 

등을 보인 것들이 더욱 깊어진다

 

 

 

 

등에 기대다 2

 

 

옥상 맨바닥에 누워 하늘을 본다

등이 다뜻하니 하늘도 따뜻하게 보인다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내가 무엇인가를 볼 수 있다는 것

내가 무엇인가를 들을 수 있다는 것

내가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다는 것

눈은 어찌하여 볼 수 있게 되었을까

귀는 어찌하여 들을 수 있게 되었을까

마음은 어찌하여 느낄 수 있게 되었을까

 

별을 보니 별의 문구멍으로

하늘 너머까지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바람소리 들으니 바다 건너 파도소리까지 들릴 것만 같다

파도소리에서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등 밑 시멘트는 시나브로 허물어져 내리고

넓은 모래사장으로 남아 파도무늬를 새긴다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카메라는 왜 순식간에 어떤 풍경이라도 빨아들이는지

카메라는 왜 끊임없이 시간을 저장했다가 돌려주는지

카메라는 왜 당신을 번쩍 안아다가 나에게 보내주는지

어둠의 거울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나는 알 수가 없다

 

바다가 곁에서 말한다

너는 지금도 물방울 하나에 불과하나니

물방울 하나가 어찌 바다를 다 알 수 있겠느냐

 

 

               *배진성 시집 서천꽃밭 달문 moon(시산맥,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