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곡사
1
귀신이 곡할 노릇
집이 넷이나 있는데
곡사면 살아 있다 했는데
하필 집 지은 곳이
막다른 곳이라
죽음을 맞는 귀곡사
2
살아있는 줄 알았다
동굴에 숨어서
숨쉴 활로도 있고
당장 누가 공격해오지도 않을 줄 알았다
가만히 있으면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간간이 총소리 들리고
연기가 피어올라도
토벌대가 찾기 힘든 험한 곳
그들도 들어가면 죽을 수 있는 곳
아무 일 없는 줄 잊혀졌었지
대국이 끝나고
하나 둘 주검들을 찾아낼 때
통곡 소리만 들렸다
아직 살아 있는 듯한 유골이
세상에 드러날 때
굴속에서 생을 마감했을 아픔이
온 다랑쉬를 울렸다
♧ 먹여치기
살 수 없음을 알지만
진주 남강 푸른 물에 적장을 껴안고
주저 없이 뛰어든 논개처럼
내가 죽어도 이 나라가 살 수 있다면
폭탄을 부여잡고 적진에 뛰어든 이봉창 열사처럼
전부를 살리는 일에 나의 한 몸 두려우랴
♧ 사석 작전
이순신
이봉창
전태일
그리고 수많은 동지들
나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
우리 승리하리라
♧ 쇄국정책
나라가 힘이 세면 굳이 문을 닫을 필요 있겠는가?
힘이 없어 문을 닫으면
이웃들이 갖은 방법으로 위협하여
문 열어라
문 열어라
지켜준다 보호한다
동맹이다 혈맹이다 하지만
정작 자기는 자기가 지켜야 한다
적이 쳐들어와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지만
평상시는 문을 열고 힘을 키워야 한단다
1선과 2선은 나라의 문이니
평상시는 닫지 말고
3선으로 집을 짓고
4선으로 힘을 키우거라
♧ 반전무인
네 앞에 누가 있느냐
어제는 누구였고 오늘은
또 누구이더냐
너의 앞에 권력을 잡은 강한 자도 올 수 있고
힘이 없는 노동자가 올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잣대가 다르면 되겠는가
눈을 뜨고 판을 바라보라
어떠한 국면인지
상대가 누구든지 형국에 맞게 착점을 하거라
하수 앞에서 우쭐대지 말고
상수 앞에서 주눅들지도 말고
너는 너의 바둑을 두거라
* 양동림 시집 『여시아문如是我聞』 (한그루, 202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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