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서귀포문학' 2023년호의 시(3)

김창집 2023. 9. 3. 07:39

 

 

상사화 김성진

 

 

  이치에 어긋나는 꽃

  눈을 뗄 수 없었다

 

  더위가 누그러드는 하늘에 붉은 핏덩어리 토해냈다. 내 상사병을 버젓이 펼쳐 널었다. 푸른 날개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끝끝내 찾지 못했다.

 

  이룰 수 없는 사랑*

 

  불났다, 불 불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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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화 꽃말

 

 

 

 

새벽 서귀포 바다에 서서 김용길

 

 

바다가 가슴을 열고 있었네

밤새 뒤척이는 섬들을 안고

그 부끄러운 가슴

속내를 보이고 있었네

 

아직도 처녀인 서귀포 바다

순정의 주름살 안으로

물결 소리를 내며

흐르는 동안

섬들은 돌아눕고

전설 따라 울던 새들도

깃을 털고 있었네

 

나는 보았네 나그네처럼

새벽 바다에 와서

, 서귀포여 서귀포의 연인들이여

마음을 열고

노래하듯 조용히 불러보았네

 

 

 

 

하효 김효선

 

 

이곳에서 저녁이라는 말은

노오란 알전구와 같아서

새콤하고 달달한 향기가 꿀벌처럼 달려든다

 

살고 싶지 않아서 이곳으로 도망친 남자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은 여자는

이십 년째 이 마을 토박이 부부가 되어

가로등 없는 저녁을 손잡고 걷는다

 

기적은 죽음 곁에 붙어사는 기생식물처럼

마지막 숨을 찾아 힘껏 날아가는 홀씨

 

서늘한데 다정한 빛

어둠 속에 희미하게 드러나는 실루엣을 고양이라 부르자

이제 더는 쓰다듬을 수 없어 먼저 가 기다리겠다던 사람

 

구럼비나무 숲에선

사랑을 기다리는 바위가 사람 그림자를 쫓고

길목마다 노오란 등이 켜지면

망설이던 인연도 담장 아래로 스미는 곳

 

등 뒤로 새콤하게 물드는 저녁을 알현하는

하효,

하효,

 

 

 

 

성봉이 산억수

 

 

샛 형 작은 아들 성봉이

611963년생 총각

 

나 좀 도우라면

어딨다가도 달려온다

헛부지런 늙은 숙부 혼자

어쩔 수 없음 알기에

 

바람공쟁이 대우자 분 뜨고

하루 한 본 어렵게 옮긴다

성봉이 있어

 

어진 총각 형 성호

두 개나 있다고 콩팥 하나 주어

떠나는 목숨 겨우 붙잡은

조카 성봉이

 

나 돕는다고

오늘도

저만치서 열댓 발짝 걷고 쉬고

다시 쉬고 걸어

 

올라오고 있다

 

 

 

 

제주 메밀의 노래 - 문상금

 

 

왕소금을 뿌린 듯 흰 메밀밭

붉은 대궁 메밀꽃은

소금기 어린 지난날 속울음

자청비 품속의 씨앗 한 톨

 

먼 바다 스무길 물 속 해녀

거친 손마디 끈질긴 목숨

늙은 농부의 메밀꽃 하얀 그리움

- - 이 숨비소리

 

흰 파도 오고 거친 파도 몰아쳐도

너에게로 가고 또 가는

이 형벌 같은 길

영원히 가야 할 길

 

, 메밀꽃 하얀 그 - -

- - 이 숨비소리

- - 이 숨비소리

 

 

          *서귀포문인 협회 간 서귀포문학2023년 통권 제35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