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강동완 시집 '외로움은 광부의 삽처럼 번들거리네'(1)

김창집 2023. 9. 4. 10:25

 

 

시인의 말

 

 

아픈 숨소리가 차가운 바닥을 흐른다.

이불을 덮었다.

눅눅한 이불 위로 눈이 쌓인다.

숨소리가

눈을 녹였다.

 

 

 

 

외로움은 광부의 삽처럼 번들거리네

 

 

외로움은 광부의 삽처럼 번들거리네

어두운 추억들은 검은 석탄들처럼 힘없이 부서져 내리네

광부의 심장 속에서 뿜어져 나온 따뜻한 피가 단단한 암석 틈에서 흘러나오네

땅속에 숨어 있던 죽은 바람들이 광부의 뜨거운 목을 서늘하게 했네

석탄 가루가 날리면 광부들은 코를 손으로 막고 킁킁거리고

자꾸 눈을 깜박거리고 가볍게 날리는 것은 모두 아픈 것 이었네

광부의 시커먼 눈 속에서 잎사귀 가득한 나무들이 자라났네

강물의 냄새를 가진 꽃들이 피어났고 그 어두운 공간은

거대한 숲으로 변했지 광부들은 그 서늘한 그늘 속에서

모든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기도 했네

이 어둡고 사나운 공간에 호랑나비 하나 날아들었네

광부의 따뜻한 눈물이 나비의 영혼이 되었을까

자꾸 나비들은 광부의 젖은 눈 속으로 햇살처럼 뛰어드네

어둠뿐인 이곳에서 희미한 백열전등의 푸른빛이

광부의 가녀린 어깨위로 먼지처럼 떨어지네

삽으로 석탄을 캐던 광부는 어깨가 탈골되기도 했네

광부들의 거칠게 숨 쉬는 소리가 단단한 암석을 깨트린다

이리저리 부딪치는 빗방울처럼 떨어지다가 흔적 없이 말라가네

이 어둠속에서 광부의 시퍼런 입술 같은 추위가 서글프게 밀려온다

광부들의 입술은 차갑게 죽은 나비의 날개 같았네

백열전등이 꺼지면 무거운 어둠속에서 광부의 눈알들이 떨어져 나와

희미하게 불을 밝힌다

나는 이 숨 막히는 어둠속에서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까 아름다운 빛 속으로,

캄캄한 어둠과 두려움, 무의식이 매일 나를 덮쳐온다

외로운 광부들은 오늘도 번들거리는 삽을 들고 어둠이 가득 찬

내 머리 속에서 삽질을 하고 있다

내 머릿속에는 햇살처럼 핏물이 가득 차있다 붉은 눈물이 되어 흘러나온다

단단한 어둠속에서 다이아몬드 같은, 죽음보다 깊은 삶의 불빛을 찾는다

 

나는 오늘도 번득이는 삽을 들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삶속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간다

 

 

 

 

전갈의 노래

 

 

독을 품은 전갈들의 세상이다

 

내 입속엔 드럼을 치는 붉은 전갈이 산다

전갈의 독은 둥둥 드럼소리로 공기 중을 떠다니며 퍼져나간다

나의 독을 품은 몇 마디 말에 너는 온몸에 독이 퍼져 고사목처럼 굳어버릴 것이다

전갈의 독을 쏘인 달은 어린 애처럼 자꾸 눈을 비빈다

눈곱처럼 회색 구름들이 한쪽으로 몰려 있다

전갈이 흙을 뚫고 나뭇잎을 기어 다니면 바싹 마른 이 세상에도

붉은 비가 내릴 것이다

달빛의 주머니 속에서 어머니의 한숨처럼 어둠이 무너져 내린다

이 세상의 모든 우울한 그림자는 독이 퍼진 차가운 눈을 맞으며

벌겋게 녹이 슨 슬픔을 토해내고 있다

살얼음 위에서 아픈 그림자가 녹아내리고 있다

나뭇잎 위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어깨 위로 떨어진 전갈은 완강한 목에

뜨거운 눈물을 투여한다

독이 퍼지면 사람들의 가여린 입술은 빨간 매니큐어 바른 것처럼 붉어진다

사람들이 작았던 귀가 캥거루 귀처럼 커진다

밭에서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전갈을 담은 술을 마신다

아버지는 평생 아픈 전갈처럼 사셨다

아버지의 등에는 신앙처럼 전갈문신이 그려져 있다 깊은 밤 속 어둠이

누군가의 손톱 속에서 녹아내릴 때면 문신에서 전갈들이 나와

마룻바닥을 기어 다니며 슬픈 노래를 불렀다

그대의 젖은 눈을 만지고 싶어요 따뜻한 눈물을 흘리며 잠들고 싶어요

어린 동생과 나는 전갈을 구멍가게에서 넉넉한 돈으로 바꾸기도 했다

배고플 때 향기로운 베이컨처럼 전갈을 씹어 먹었다

내 입 속에서 전갈들은 알을 까고 입 속은 전갈의 모래 무덤이 되었다

어둠과 불타는 태양을 채워 넣은 내 어린 시절의 책가방 속엔 마른 전갈들이 책갈피가 되었다

오래된 상처 자국처럼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숨겨 놓았다

짝사랑하는 옆자리의 여자 친구에게만 아름다운 전갈들을 살짝 보여 주었다

독이 퍼진 내 삶은 뜨거운 구들장 위에서 불타오르며 눈을 감는다

붉은 생채기들이 숨 가쁘게 독이 묻은 꽃가루를 묻히며 아물어간다

내 눈물 속엔 푸른 독이 있다 나의 눈은 언젠간 멀어질 것이다

전갈의 독은 겨울 숲을 날아가는 날개 달린 그리움이다

전갈들이 흙을 비집고 세상 속으로 기어 나온다 내 혀가 얼얼하다

 

 

 

 

우아한 미술관

 

 

어둡고 하수구 냄새 나는 도시의 구석에 미술관 하나 있었다

미술관 안에는 튤립향기가 진동했다

어둡고 차가운 안개로 가득 찼다

미술관은 누군가의 초상화 그림만 걸려 있었다

초상화 속에는 검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미술관으로 들어가려면 손가락 하나를 자르고

잘린 손가락을 불태우는 의식을 치러야 했다

가끔 그림을 구경하던 아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음날 사라진 아이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그림 속 아이들의 눈동자 속에서 아름다운 빛이 새어나왔다

 

나는 문틈 사이로 흘러오는 햇살을 뭉쳐

쇠똥구리처럼 미술관을 돌아다녔다

햇살뭉치는 거대해지더니 초상화들을 불태웠다

초상화에 갇혀 있던 어떤 빛들이 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어떤 빛은 구름이 되고 어떤 빛은 비가 되고

어떤 빛은 별이 되었다

 

아직도 도시의 구석엔 미술관의 있다

그 미술관 안에는 어떤 그림도 없었고 하얀 벽만이 있었다

나는 하얀 벽에 흐르는 눈물로 내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초상화는 울고 있었다

나는 영원히 내 안에 갇혀있다

아무도 미술관을 찾지 않았다

 

 

    *강동완 시집 외로움은 광부의 삽처럼 번들거리네(시와세계, 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