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문학의 향기

양동림 시집 '여시아문'의 시(5)

김창집 2023. 9. 5. 10:06

 

 

아생후살타(我生後殺他)

    -경선

 

 

적을 공격할 때는 우선

나를 튼튼히 해야 하거늘

대표 선수 뽑는다고 힘겨루기 하다가

우리끼리 물어뜯어 상처만 남은 몸으로

어찌

적을 상대해 싸우겠느냐?

 

 

 

 

사활(死活)

 

 

방이 두 개는 있어야 돼!

나만 들어올 수 있는

비밀의 방이 있어야 발 펴고 잘 수 있는 거야

방이 있다고 하여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운동부족으로 오래 못 사는 거야

방이 있으되 밖으로 나가 일하고

넓은 세계로 가서 새로운 땅을 개척해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거야

 

살고 죽는 것이 다반사인 세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딱딱하지 아니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또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생각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저 발 가는 대로 지내다 보니

인생의 막다른 골목이라고 하면

슬프지 아니한가?

 

 

 

 

기원

 

 

바둑을 배우는 아들은

기원으로 가자고 조른다

사람들이 서로서로

자기 집을 세고

너의 집을 세고

그렇게 서로 집을 짓는 곳

 

아들이 바둑을 두며

큼직큼직 집을 짓는 동안

나도

두 손 모아 기원을 한다

우리에게도 집 한 채 있어

가족이 편히 쉴 수 있기를

 

 

 

 

아버지의 등

 

 

아버지를 불러 오라는 어머니의 말은 어린 나에게

무척이나 반가운 심부름이었다

이웃집 아저씨와 마주 앉은 아버지의

따스했던 등은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고개를 길게 늘이고

아버지와 같은 바둑판을 바라보는

짜릿한 즐거움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등 뒤에 있다는 것은

한 곳을 바라본다는 것

상대의 허점을 찬찬히 살펴보는

둘이 한 편이 된다는 것

 

아버지가 이기면 같이 즐거웠고

지면 같이 애석해 하면서

어머니가 부른다는 이야기는

전하는 나도 듣는 아버지도 건성이었다

한 판이라도 더 두다 갔으면 하는 마음을

아버지의 등에 내 몸을 바짝 밀착함으로 전하던

내 유년의 기억

 

등 뒤에 있다는 건

응원한다는 것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것

 

 

 

 

국수

 

 

대국을 하면 으뜸이 되라고

아들의 바둑시합이 있는 날이면

국숫집 간다

조 국수님은 어떤 국수를 드실까

고기국수일까 아니면 멸치국수

둘 다 섞은 멸고국수 드실까

만세국수가 좋을까?

삼대국수가 좋을까?

 

처음엔 만세국수

대대손손 삼대국수

영원토록 평생국수

바둑대회 열리는 날은

국수 먹는 날

 

 

             *양동림 시집 여시아문如是我聞(한그루, 2023)에서

                                    *사진 : 시계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