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향토문화 기행

바람 부는 날 성산읍 관내 답사기

김창집 2002. 10. 28. 15:15

 

(선인장 하우스의 옥선인장)

 

 어제는 성산읍 관내 답사가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고 좀 추운 날씨였으나 신청한 인원 90명보다 9명이 더 나와서 90명 분의 점심을 갖고 99명이 나눠 먹었습니다. 버스 2대도 모자라 늦게 온 회원의 차를 빌려 6명을 태우고 따라 다니게 했습니다. 불평 없이 서로 이해하며 식사를 나눠먹어 주신 분들, 웃으며 자신의 차를 몰고 따라다녀 주신 분, 모두가 나의 소중한 팬입니다. 신청을 했건 안 했건 좋지 않은 날씨에도 무엇을 탐구해 보겠다고 나선 분들을 돌려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죠.

 

 

(미천굴 내부)

 

 6년 동안 미천굴 주변을 잘 정리하여 금년에 문을 연 일출랜드. 한림공원을 모방한 듯 하면서도 개성 있게 꾸며 굴에 손댄 점은 거슬리지만 앞으로 좋은 쪽으로의 발전이 기대 됩니다. 제주, 대정, 정의 3읍의 돌하르방 이미지를 한 데 모아 비교하면서 볼 수 있게 한 점과 제주 돌멩이를 이용하여 둘이서 3년 동안 쌓았다는 굴 입구의 기둥과 출입구가 빛납니다.

 

 

(패랭이꽃)

 

 통오름과 독자봉의 들꽃은 더욱 만개하여 우리를 맞았고 우리 모두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쑥부쟁이, 물매화, 패랭이꽃, 미역취, 한라부추, 섬잔대, 자주쓴풀과 꽃향유…, 들꽃이 수놓아진 언덕과 꽃무덤. 바람에 날려 은빛 비늘을 파닥이는 억새가 왠지 설레는 것 같다고 했더니, 저 '한라산의 노을'을 쓴 작가 한림화 선생이 누구와 사랑을 하라는 말이냐고 웃습니다.

 

(자주쓴풀)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전설 유적 가운데 빛나는 온평리 '혼인지' 고량부(高梁夫) 삼 신인이 벽랑국 3공주를 맞아 못에서 씻고 굴에서 신방을 차렸다는 곳에서 잔치 음식을 나눠 먹듯 웃음 속에 먹은 점심. 답사 때마다 막걸리를 제공해주시는 강정숙 회원 님. 어제는 스무 병이 모자란 듯 했지만 그래서 더욱 맛있었습니다. 세 쌍이서 신방을 차리기엔 너무 좁다는 굴속에 들어가 사랑만 있다면 좁은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웃었습니다.

 

 

(억새)

 

 섭지코지로 들어가는 길목은 이제야 넓히는 중이었지만 신양리 해수욕장에 윈드서핑 하는 젊은이들이 모여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잠자리 날개처럼 신나게 날아다닙니다. 순비기가 감싸고 잇는 모래 벌판은 갯쑥부쟁이 꽃이 가득합니다. 그 벌판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해 온전하게 남아 있는 협자연대 돌 하나하나에서 선인들의 얼이 느껴지고 그 위에서 바다를 지키며 올리던 연기가 떠오릅니다.

 

 

(협자연대)

 

 고맙게도 내가 내려오기를 기다려 소라를 썰어놓고 기다리던 아저씨들의 건네는 한라산 소주가 맛이 있어 내가 안내를 담당했다는 것도 잊고 권하는 대로 몇 잔 거푸 마셨습니다. 온평리 환해장성은 아무렇게 복원한 부분이 이상했습니다. 이런 성은 어떤 격식이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적이 들어올 때를 대비해서 그냥 적당한 높이로 쌓은 건데 중간중간에 탑처럼 장난스레 올려놓은 돌이 웃깁니다.

 

 

(수산진성)

 

 수산초등학교 울타리가 되어버린 수산진성은 위치나 축성 방식으로 다른 진성과는 다른 면을 지닙니다. 이원진의 탐라지에는 '수산진성은 세종21(서기1439)년에 축성되었으며, 성의 둘레는 1164척이고 높이는 16척'이라고 전합니다. 성의 규모가 진성 중에서 4번째로 큰데, 모양 또한 다른 진성이 타원형을 하고 있는데 비해 사각을 이룹니다. 또한 축성 시기도 100여년 빠르며, 진성이 위치한 곳도 다른 진성들은 모두 바다를 끼고 있는데 수산진성은 적에 자주 노출되어 지금의 고성리에서 이곳으로 옮겼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성을 쌓을 때 희생이 된 13세 소녀를 생각하며 바람 속을 뚫고 돌아오는 길이 쓸쓸해집니다.[2002.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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