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거린악에 핀 꽃

김창집 2005. 8. 16. 00:20


 

* 나도은조롱 열매

 

♧ 2005년 8월 14일 일요일 맑음

 

 말복(末伏)이 마지막 기승을 부리려 했을까? 거린악을 찾은 우리를 더위는 바람 한 점 없음까지 동반하여 엄청난 땀을 요구했다. 하긴 바람 한 점 들어올 틈 없이 우거진 숲도 한 몫 거들긴 했다. 그러나, 우린 참을 만했다. 촉촉이 젖은 땅 속에서 올라오는 서늘한 기운, 트인 곳으로 바라보면 한없이 푸른 나뭇잎, 그리고 가끔씩 등장하는 여름 꽃들까지 힘을 합쳐 우리의 기분을 올려주는 역할을 담당했으니까. 

 

 사실이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기 직전의 숲에는 기대할 만한 꽃이 없다. 있다면 늦장을 부려 핀 여름 꽃이나 철모르고 일찍 피어난 가을꽃밖에는…. 그러나, 가끔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이 있다면 각종 버섯이나 여러 가지 모양을 한 균사체가 있다. 그런데도 이번 산행에서는 산이 깊고 덜 오염된 덕으로 10여 가지 주목할 만한 꽃과 버섯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계절 언제나 개성을 드러내는 거린오름을 그래서 모두 좋아하는지 모른다.

 


 

♣ 냇가의 아름다운 향수 - 백리향

 

 이 녀석들이 아직도 꽃을 피우고 있을까? 사실이지 백리향(百里香)은 6월에 피는 꽃이다. 경험이 많은 고 고문 님이 코를 벌름거리며 냇가를 따라 저만치 가서 찾아낸 백리향은 더위 속에 남아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꿀풀과의 낙엽 반관목인 이 식물은 우리나라 원산으로 일본, 중국, 몽골, 인도 등지의 높은 산꼭대기나 바닷가의 바위틈에 피어난다.

 

 꽃은 6월에 분홍색으로 피는데, 잎겨드랑이에 2∼4개씩 달리며 지름 7∼9mm로서 가지 끝부분에 모여 나므로 수상꽃차례같이 보인다. 작은꽃자루는 털이 나며 길이 약 3mm이다. 꽃받침에 10개의 능선이 있다. 화관은 붉은빛을 띤 자주색이고 길이 7∼8mm로 겉에 잔털과 선점이 있다. 향기가 있어서 관상용으로 심으며, 포기 전체에 정유(精油)가 있으므로 진해, 진경, 구풍에 사용한다.

 


 

♧ 안 매워도 고추나물

 

 백리향을 쫓아다니다가 노란 꽃이 보이길래 혹 개민들레 아닌가 하고 보았더니 고추나물이다. 고추나무가 있고 고추나물이 있고 그냥 고추가 있다 보니 헷갈리기 일쑤다. 이것도 맛을 보면 매울까 궁금했는데도 섣불리 꺾어 맛을 볼 수도 없는 일이고 보니, 아직도 숙제로 남아 있다. 사라봉 정상 못 미쳐 화단에 이게 나서 꽃봉오리가 앙증맞게 생기는 걸 보고 언제면 저게 피려나 했는데, 어느 날 잡초와 함께 베어버렸다. 2년째 지켜봤는데 두 번이나 꽃도 못 피워보고 해를 나게 되었다.

 

 고추나물은 쌍떡잎식물 측막태좌목 물레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들판의 약간 습한 곳에서 자란다. 높이 20∼60cm이다. 줄기는 둥글고 곧게 서며 가지를 친다. 7∼8월에 노란 꽃이 취산꽃차례를 이루어 가지 끝에 많이 달린다. 어린잎을 나물로 먹으며, 한방에서는 6∼8월에 풀 전체를 캐서 말린 것을 소연요(小蓮翹)라 하며 토혈, 코피, 혈변, 월경불순, 외상출혈, 타박상, 종기 등에 처방한다. 제주도, 일본, 사할린섬 등지에 분포한다.

 


 

♣ 누가 이런 버섯을 보았느뇨

 

 동쪽 정상 못 미쳐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막혀 앞장서 뚫고 나가는데 역시 고 고문 님이 오라고 소리친다. 능선에 이르는 길까지 뚫어놓고 따라가 본 즉 저런 해괴한 모양의 버섯이 흙 속에 뿌리를 뻗고 서 있다. 우리는 균류(菌類) 중에서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크기의 자실체(子實體)를 형성하는 무리를 총칭하여 버섯이라 부른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버섯의 맛을 즐겨 '신의 식품'이라고 극찬했고, 중국인들은 불로장수의 영약으로 진중하게 이용하였다.

 

 산과 들에 널리 여러 가지 빛깔과 모양으로 발생하는 버섯들은 갑자기 나타났다가 쉽게 사라지기 때문에 옛날부터 사람의 눈길을 끌어 고대 사람들은 땅을 비옥하게 하는 '대지의 음식물' 또는 '요정(妖精)의 화신(化身)'으로 생각하였으며 수많은 민속학적 전설이 남아 있다. 또한 버섯은 그 독특한 향미로 널리 식용되거나 또는 약용으로 하는가 하면 목숨을 앗아가는 독버섯으로 두려움을 받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옛 기록에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신라 성덕왕 시대에 이미 목균(木菌:金芝)과 지상균(地上菌:瑞芝)을 이용한 사적을 찾아볼 수 있고 '세종실록(世宗實錄)'을 보면 세종대왕 시대에 식용버섯으로 송이, 표고, 진이(眞耳), 조족이(鳥足耳), 약용버섯으로 복령, 복신(茯神)의 주산지까지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 전부터 버섯을 많이 이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근래에는 버섯의 순수배양종균의 생산을 계기로 양송이, 표고, 느타리, 목이, 풀버섯, 동충하초 등 식용버섯의 인공재배가 크게 발달하고 있으며 버섯의 영양가와 약용가치가 점차 밝혀짐에 따라 그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동충하초(冬蟲夏草)는 겨울에 벌레이던 것이 여름에는 버섯으로 변한다고 붙은 이름인데, 숙주가 되는 곤충은 나비, 매미, 벌, 그밖에 딱정벌레, 메뚜기 외에 거미에게도 기생하는 것도 있다. 근래에는 누에에 균사를 집어넣어 재배하고 있다.

 


 

♧ 꿩의 다리 같은 줄기 - 산꿩의다리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인 꿩의다리는 종류도 많다. 저 녀석은 오래 전 산행 때부터 눈에 자주 띄었는데 꽃이 너무 작아 이 디카로는 세밀하게 잡을 수 없어 이곳에 내보내지 못해 왔다. 뿌리줄기가 짧고 양끝이 뾰족한 원기둥 모양으로 굵어진 뿌리가 사방으로 퍼지며 줄기는 곧게 선다. 뿌리에 달린 잎은 1개이고 잎자루가 길며 3개씩 2∼3회 갈라진다.

 

 꽃은 7∼8월에 흰색으로 피고 줄기 윗부분에 원추꽃차례로 달린다. 꽃잎은 없고 꽃받침은 4∼5개로서 작으며 꽃피기 바로 전에 떨어진다. 수술은 많고 고리 모양으로 늘어서며 수술대는 윗부분이 넓고 흰색이다. 열매는 수과(瘦果)로서 2∼6개씩 달리고 1∼4개의 맥이 있으며 9∼10월에 익는다. 한국, 일본, 중국 북부, 헤이룽강에 분포한다. 여기서도 세밀하게 잡지 못한 것을 내보내게 되어 죄스럽다.

 


 

♣ 아직 덜 자란 수정란풀

 

 두 번째 봉우리를 오르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흙 속에 굼벵이가 묻힌 것 같은 이 녀석은 주위에서 몇 개 개체가 발견되었다. 올 5월 29일 고 변신규 회원 1주기 추모 등반 때 북동쪽 정상에서 내려가던 중 싱싱하고 여러 개체가 붙은 수정란풀을 발견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없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자라고 있다.     

 

 수정란풀은 쌍떡잎식물 진달래목 노루발과의 여러해살이 부생식물(腐生植物)로 수정초(水晶草) 또는 석장초라고도 한다. 숲속의 낙엽 속에서 자람며 높이는 10∼20cm이다. 뿌리는 덩어리처럼 생기고 여기서 엽록체가 없는 몇 개의 꽃자루가 흰색으로 자라서 끝에 1개씩의 꽃이 밑을 향하여 달린다. 비늘 같이 퇴화한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이며 다소 톱니가 있다. 꽃은 5∼8월에 은빛이 도는 흰색 꽃이 핀다.

 


 

♧ 애기버어먼초라고 아세요

 

 출발해서 얼마 되지 않았을 시간, 고 고문 님이 '석장'이란 것이 지금 여기 어디 피어 있을 거라고 찾아보라는 얘기를 끝내기도 전에 이상한 버섯 같은 것이 흙 위로 솟은 것이 내 눈에 띄었다. 물어 본 즉 바로 이것이 스님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 같다 하여 '석장'이란다. 지금은 땅에 박혀 그렇지만 나중에 씨앗으로 자라면 더 닮다고 했다. 숲이 너무 어두워 한 컷 찍고는 양보했는데, 고 고문 님은 나중에 삼발이를 세워 찍는데 햇빛이 한 줄기 비쳤다면서 흐뭇해한다.

 

 그런데 남봉을 내려가는데 저게 하나둘 눈에 띄더니 두 개 같이 있는 것이 있어 이렇게 담을 수 있었다. 버어먼초(Burmannia cryptopetala Makino)는 버어먼초과의 부생 초본으로 흰색을 나타낸다. 비늘 모양의 잎은 피침형 또는 좁은 난형으로, 길이 3∼4mm이며, 끝이 뾰족하다. 화서는 단순하거나 1회 갈라진 산형화서로 여러 송이의 꽃이 밀생한다. 포는 잎과 같은 모양이고, 꽃은 직립하며 1.5∼2mm로 제주도 등지에 분포하는데, 개화시기는 9∼10월이다.

 


 

♣ 너만 은조롱이냐 - 나도은조롱

 

 나도은조롱은 이름도 재미있지만 특이하게 생겼고, 또 희귀식물로 분류되어 과거 자생하는 곳을 몰랐는데, 근래에 이곳 거린악과 주변 오름에 자생하는 것이 확인됐다. 쌍떡잎식물 용담목 박주가리과의 상록 덩굴식물인 나도은조롱은 그늘에서 자라는 상록식물이다. 줄기는 크고 단단하며 아랫부분이 나무 줄기이고 윗부분은 녹색의 풀줄기이다. 잎은 마주나고 잎몸은 둥글며 끝이 갑자기 뾰족해지고 밑부분이 수평이거나 약간 심장 모양을 하고 길이와 폭이 각각 7∼12cm이다. 잎자루는 길이가 3∼6cm이다.

 

 꽃은 7∼8월에 연한 노란색으로 피는데, 꽃대가 있는 산형꽃차례가 잎겨드랑이에서 나온다. 꽃대가 잎자루보다 짧거나 비슷하며 털이 촘촘히 난다. 꽃받침은 5개로 갈라지고 갈라진 조각은 둥글며, 화관도 5갈래로 갈라지고 부화관은 5개가 곧게 선다. 열매는 골돌과이고 타원 모양이며 종자에 흰색 털이 있다. 한국과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꽃이 하나둘 피어 있어 찍고 나왔는데, 또 고 고문 님이 제일 위의 사진에 나와 있는 열매를 찾아냈다.
 



♧ 왜, 그런 이름이 - 사철란

 

 사철란이란 이름이 왜 저것에 붙었을까 하는 의문이 머리를 스친다. 춘란(春蘭)은 봄에 피어서, 그리고 보춘화(報春化)라는 다른 이름은 '봄을 알리는 꽃'이어서, 한란(寒蘭)은 겨울 찬 하늘 아래 핀다고 해서, 보세란(報歲蘭)은 새해가 된 것을 알린다 해서 붙은 이름인데 반해 저것은 사철 피지도 않는데도 유독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 외 난초는 꽃의 모양으로 이름을 붙인다. 이를테면, 새우난초, 잠자리난초, 갈매기난초, 해오라비난초, 제비난초….

 

 사철란은 외떡잎식물 난초목 난초과의 상록 여러해살이풀로 잎이 알록달록하여 알록난초라고도 한다. 건조한 숲속에서 자라며 높이 12∼25cm 정도인데, 밑부분이 옆으로 뻗으면서 뿌리가 내린다. 꽃은 8∼9월에 피는데 흰색 바탕에 붉은빛이 돌고 7∼15개가 한쪽으로 치우쳐서 달린다. 동북아에 분포하는데, 털사철란, 붉은사철란, 섬사철란이 있다. 이 난초를 만나기 전 꽃이 막 지기 시작한 붉은사철란을 만났었다.  

 

♬ Non ho l'eta - Gigliola Cinquet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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