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제6회 오름 축제를 마치고

김창집 2005. 10. 4. 16:28

 

* 정물오름 앞에 있는 안경샘

 

△▲△ 처음으로 예산 삭감

 

 오름오름회 회장이 되어 두 번째 치르는 오름 축제. 제6회 오름오름 축제를 주관해 달라는 공문을 받으러 일부러 주최측인 사단법인 한국예총제주도연합회(회장 서정용) 사무실을 찾았을 때,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사무국장이 지금까지 내려주던 예산보다 100만원이 깎였다고 미안해하는 것을 "예산에 맞을 만큼만 열심히 치르면 되겠지."하고 오히려 격려해 주고 나왔다. 

 

 예산은 늘어나지 않고, 행사는 새로 더 생기고…. 나누어 쓰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정말이지 더 해서는 안될 도로 건설에는 예산을 쏟아 붓고, 문화 예술 쪽은 동결하거나 줄어들고. 모든 게 인상(引上)으로 가는데 이래서야 문화예술이 제대로 발전되겠는지 의심이 간다. 그러나, 수백의 오름 모임 중에 그래도 적자(嫡子)라고 행사를 맡겨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 다음 주 오름 등반에 참여한 회원들과 의논 끝에 차를 3대 빌려 40명씩 120명을 모집하여 정물오름과 당오름에서 행사를 치르기로 결정하고, 계획서를 제출했다. 사실이지 오름에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몰리게 할 경우 드넓은 산(山)과는 달리 훼손의 우려가 높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더 모이게 하여 오름을 이해시키고 올바른 자연 사랑법을 일깨워 주는 것 또한 오름 축제에서 해야 할 일이다.

 

 

* 출발하기에 앞서 인사와 주의사항 전달

 

△▲△ 너무 많이 신청해서 고민  

 

 이런 행사는 이를테면 동전의 양면처럼 선과 악이 갈려 적정선을 긋기가 곤란하다. 그래서 수백 명을 수용하고도 비교적 훼손 위험이 없고 일면 참가자들도 안전한 두 오름을 선택한 것이다. 작년처럼 회원 중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김 양의 협조를 얻어 접수처로 삼고, 명단은 나의 메일로 받겠다는 행사 안내를 오름 홈페이지에 싣고, 회원들에게 홍보 협조를 부탁했다.

 

 주최측에서 나오는 광고는 너무 많아 자세하지 못하다 보니, 자연 오름 홈페이지 회원이나 우리 회원들에게 의존하는 수밖에 없는 생각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적정선을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매일 연락해도 크게 신청해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래 느긋이 여기고 일요일에 연락해 보았더니, 30∼40명과 회원들이 주선한 것 뿐이라 했다.

 

 느긋이 생각하여 아침에 메일을 확인했더니 인원이 꽤 되었다. 전화를 넣어 신청을 동결(凍結)시키고 인원수를 확인했다. 아니, 이럴 수가? 우리가 기획한 120명을 훌쩍 넘어 182명이 신청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그렇다고 아는 사람을 찾아서 이번만큼은 양보해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차 하나 더 빌어 식사 40명 더하는 것으로 마음먹고 그 비용은 모임의 자금으로 대체한 후 승인을 얻기로 했다. 

 

 

* 정물오름 위로 오르는 참가자들

 

△▲△ 준비에 만전을

 

 마감된 후, 행사 전날까지도 참가하게 해달라는 전화를 수 차례 받았다.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혹시나 마음을 상할까봐 다음 일요일에 오름에 데려가겠다고, 아니면 내년에는 꼭 일찍 신청해서 같이 가자며 양해를 구했다. 자동차는 넉 대를 예약했으니 한 차에 45명씩 180명은 수용하고, 만약에 100% 온다면 회원의 승용차라도 하나 동원하면 되었고, 식사는 이동식 뷔페이기 때문에 나눠 먹으면 큰 걱정은 없었다.

 

 학생이나 어린이들은 모두 45명 정도여서 문방구에 가서 한 사람에게 하나씩 돌아가게 상품을 정성 들여 싸고, 현수막과 안내 자료 인쇄물을 맡기고 나자 비가 올까 걱정이 앞선다. 작년에는 음식을 장만한 곳에서 생수 한 병씩 나왔는데 금년에는 없다고 해서 예산을 쪼개 생수 160병을 사면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어떤 행사를 하나 기획하고 진행하다 보면 담당자는 얼마나 노심초사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지금 제주는 가을 가뭄으로 농가마다 비를 기다리고 있는데, 비를 걱정하는 것 자체가 농심(農心)에 반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번 제44회 탐라문화제는 종목별로 지역별로 수많은 행사를 개최하는데, 그 중의 하나인 오름 축제도 남의 웃음거리는 되지 말아야 한다고 시나리오를 짜며 열심히 준비했다. 이번 축제는 온 도민의 축제인 탐라문화제 행사를 더욱 알차게 하고, 오름 축제를 엶으로서 제주도의 보배인 오름을 국내외에 바르게 알려, 행사에 참여한 분들에게 자연을 마음껏 즐기게 하면서 오름 보호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한편, 관광자원화 하는 방안을 모색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 어렸을 때 갖고 장난하던 도꼬마리 열매

 

△▲△ 시원치 못한 날씨

 

 10월 2일 일요일. 아침이 밝았으나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고 가끔씩 빗방울이 떨어진다. 더욱이 우리가 행사를 해야 하는 곳이 있는 서쪽 하늘이 더 시커멓게 낮은 구름으로 애를 태운다. 일기 예보엔 비가 조금 온다고 해서 자신에게 몇 번이나 비는 안 올 것이라고 최면 걸 듯이 다짐하며 집결지에 나갔더니, 모두 비는 안 올 것이라고 안심시킨다.

 

 평소 바빠서 안 나오던 회원들도 나와 조별로 차를 안내하고 출석을 체크하며 열심히 노력한다. 예산만 풍부했다면 회원을 제외한 참가자들에게 3천 원짜리 비옷 150벌을 사서 대비할 것이나 45만원이면 총 예산의 거의 4분의 1이나 되어 엄두도 못 내었다. 참가자 중에 작년에 참가했던 분이나 평소에 안면이 있는 분들이 와서 염려 말라면서 오히려 햇빛이 없어 덥지 않고 얼굴이 타지 않아 좋은 날씨가 될 것이라고 안심시킨다.  

 

 날씨에 비해 참가율이 좋아 예상했던 160명이 거의 차서 기대를 가지고 오름으로 출발했다. 오늘의 일정은 날씨를 보면서 조정할 것이나 한림읍 소재 정물오름 등반 → 정상에서 오름 강좌 → 안덕면 소재 당오름 등반 → 점심 식사를 끝내고, 풀꽃 이름 알아 맞추기, 오름 이름 외우기, 현지 진행 행사, 자연 보호 활동 등을 벌인다. 참가자들이 차 속에서 기대에 부풀어하는 것을 보면서 덩달아 나도 흐뭇해진다.

 

 

* 정상에서 열강 중인 필자

 

△▲△ 점점 맑아지는 하늘

 

 서부관광도로를 통해서 차가 제주시를 벗어나 애월읍 지역에 들어서자 구름이 안개처럼 꽉 차고 비까지 후둑후둑 떨어진다. 철렁하는 마음을 누르고 조금 더 나아가 한림읍 지역으로 들어서면서 시계(視界)가 트이고 다시 밝아진다. 현장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렸더니, 가랑비가 폴폴 날리고 어제 비가 왔는지 땅이 젖어있다. 우리 회원들끼리라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걱정 없지만 초조한 마음 감출 길 없다.

 

 길가에서 벗어나 안경샘이 있는 정물오름 입구에 일행을 모아놓고 표지석 위에 올라 이런 날씨에도 성황을 이루어 줘 고맙다는 인사와 당부의 말씀으로 간단히 끝내고 오른쪽으로 출발시켰다. 가파른 편이지만 기운이 왕성한 첫출발이고 거꾸로 하면 땅이 젖어 미끄러질까 봐 생각한 코스였다. 안개는 조금 꼈으나 비는 더 오지 않아 한 줄로 늘어서 꾸불꾸불 오르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곳곳에 잔대, 바디나물, 나비나물, 이질풀, 산부추, 짚신나물, 미역취 등이 피어 있어 앞뒤의 참가자들에게 꽃 이름을 말해주며 올라갔다. 마침 막 피어올라 하늘거리는 억새가 부는 바람에 흔들리며 분위기를 돋운다. 이 정물오름(井水岳)은 표고 466.1m, 비고 151m, 둘레 2,743m, 면적 494,293㎡, 저경 856m의 오름으로 마르지 않은 샘 때문에 일제 말기에 전쟁 준비로 군사시설을 했던 곳이다.

 

 

* 살짝 내 눈에 띈 한라승마

 

△▲△ 정상에서 '오름 강의'를

 

 먼저 회원을 보내 참가자들을 정상에 멈추도록 해두었더니 먼저 도착한 분들은 음료수를 꺼내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며 흐뭇해하고 있었다. 비는 완전히 그치고 구름 안개도 물러서서 가까이 있는 오름들이 부드러운 곡선을 부끄럽게 드러낸다. 바람이 불어오는 분화구를 향해 모두 돌아앉게 하고는 제주도의 탄생과 오름에 대해 잘못 알려진 부분을 주로 얘기했다. 

 

 요즘 들어 기생화산이란 용어는 모든 오름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암석의 연대 측정 결과와 지질조사 결과를 토대로 보면, 오름들의 일부는 용암과 동시에 일부는 용암보다 먼저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산방산, 용머리, 단산, 당산봉 등의 화산들은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라산은 물론 용암대지보다 훨씬 먼저 만들어진 것들이다. 

 

 즉 이들은 한라산이나 용암대지 위에 '기생'하는 화산이 아니라 한라산이나 용암대지보다 먼저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화산체들이다. 다른 대부분의 오름도 용암과 동시에 만들어진 분석구(scoria cone)로 본다. 일본 큐슈의 아소산 같은 것을 보면 좁은 지역에 기생화산이 몰려있어 충분히 옆으로 폭발할 수 있으나, 설령 한라산 마지막 폭발 이후 터진 것이라 할지라도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오름들은 도무지 한 뿌리에서 나왔다고 볼 수 없다.  

 

 

* 내려오다 만난 산부추

 

△▲△ 내려 다시 당오름으로

 

 강의를 간단히 끝내고 몇 가지 질문을 주고받은 뒤 다음 오름으로 가기 위해 하산했다. 뒷자리를 수습하고 뒤따라 내려가면서 보니, 비스듬히 휘어진 오름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오늘 행사를 치르는 두 오름은 서로 이웃하고 있으며, 제주 서부 지역 중산간에 위치해 있어 모든 오름의 대표가 될 만큼 전형적인 곳이다. 

 

 산세가 험하지 않은 반면 대부분이 풀밭으로 이루어져 있어 여러 가지 식물이 골고루 분포되어 자연 관찰에 큰 도움이 된다. 훼손이 덜된 오름으로 가을 들꽃이 많아 행사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위험하지도 않을뿐더러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오르더라도 훼손될 우려도 적다. 행사를 하는 중에도 다른 팀들이 올라왔다가 조용히 내려간다.   

 

 내가 맡은 주행사가 끝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꽃을 찍는 여유를 부리며 따라 내려간다. 청초한 한라승마꽃 두 송이가 숨어 있다 내 눈에 들켰다. 산부추도 많이 분포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억새가 많다. 아직은 꽃필 단계여서 얌전히 서 있지만 저 꽃이 지고 나서 씨앗이 여물 때는 부는 바람에 맞춰 너울너울 춤을 추며 장관을 이룰 것이다.

 

 

* 억새

 

△▲△ 목장안의 소들을 바라보며

 

 두 번째 오른 당오름(堂岳)은 이웃해 있긴 하지만 남제주군에 속한다. 안덕면 동광리 산 68-1번지에 표고 473m, 비고 118m, 둘레 2,869m, 넓이 415,293㎡, 저경 625m의 오름으로 북사면은 다소 가파르고, 남사면은 완만한 구릉을 이루면서 산정상부에 원형 분화구가 뚜렷하고, 남동향으로 침식된 형태로서 침식된 화구 전면에 암설류의 둔덕들이 산재해 있다. 분화구 안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구축한 5개의 굴이 남아있다.

 

 방목중인 소들이 많아 조심스럽게 철조망 문을 통과해서 앞장서 올라가는데, 군데군데 쇠똥 무더기가 구수한 냄새를 풍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은 과거로 돌아가 소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지 가까이서 물끄러미 쳐다보고, 어린 아이들 중에는 소를 처음 보는지 옆에 가기를 꺼려 슬금슬금 피해간다. 그러고 보니, 참가한 연령층도 다양해 네 살부터 초중고 학생, 젊은 연인, 장년층, 고희를 넘긴 노익장 할아버지도 있다.

 

 독특하게 생긴 오름의 분화구를 한바퀴 돌아 바로 내려가기로 했다. 시간이 벌써 12시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오를 때 점심 배달 차가 길을 묻는 전화가 왔었는데, 지금쯤 음식을 다 배열해 놓았는지 궁금하여 남겨둔 회원에게 전화 걸어 확인해보니, 완료 상태라 한다. 천천히 내려와 오랜만에 보는 수수밭 가의 억새를 찍고 나서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 당오름에서 놀고 있는 소들

 

△▲△ 때아닌 진수성찬  

 

 원래 풀밭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으나 땅이 젖어 있고 또 날씨가 어떨지 몰라서 옆에 있는 '젊음의 집' 뒤뜰에 있는 장소를 빌려 점심을 먹기로 하고 부회장과 총무가 가서 수녀님께 말씀 드렸더니, 쾌히 승낙해 줘 화장실까지 빌리게 된 것이다. 마당은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고 복도처럼 길게 지붕이 덮여 있어 비가 오더라도 먹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뷔페식이기 때문에 양쪽에 길게 밥과 반찬이 놓여 마음껏 떠다 먹도록 하였는데, 1인당 5천 원짜리지만 그 질과 양은 너무 좋았다. 국은 제주도 특유의 몸국 두 동이, 두부찌개 한 동이, 순대, 김이 폴폴 나는 삼겹살, 옥돔 튀김, 우뭇가사리 무침, 김치, 오이김치, 톳무침, 야채…. 잊어먹어 다 열거하지도 못할 정도로 차려 모두들 흐뭇해했다.       

 

 느긋하게 먹고 나니 모두들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시간도 얼마 안 남았고 다른 곳에 옮겨 나머지 행사를 갖는 것도 무리인 듯 싶어 의견을 듣고는 차에 올라 처음 출발했던 공설운동장 수영장 옆에 도착한 시간은 3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그간 기획에서부터 진행까지 무리 없이 소화해준 회원들, 그리고 행사에 능동적으로 참가하여 아무 사고 없이 끝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참가자 여러분께 감사 드린다.  

 

 

* 당오름에서 내려오고 있는 젊은 커플

 

♬ How Deep Is Your Love / BeeGe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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