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옷, 대표적인 관광 상품으로
바뀌어
성읍민속마을의 골목으로 들어서면 붉은 빛을 띤 갈옷이 즐비하게 걸려 있는 상점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과거
노동복이던 갈옷은 이제 여러 가지 패션으로 바뀌어 대표적인 관광
상품이 되었다. 무명 천으로 지었던 것이 대부분 광목 천으로 바뀌고,
삼베나 모시는 물론
명주에까지 감물을 들여 고급 브랜드화 시켰다. 다가가서 만져 보니 뻣뻣한 것으로부터 부
드러운 것까지 여러 종류가
있다. 모자도 남녀 구분하여 멋지게 개발되어 다양하다. 1960년대만 해도 농촌 거리에 나서 보면 너나없이 갈옷을 입은 모습이었는데, 이젠 멋을
내는 나들이옷으로 변해버렸다.
어렸을 적, 감물들이고 난 찌꺼기를 뒤져 감씨를 주어먹던 기억이 새롭다. 갈옷은
'갈중이'라고도 하는데, 농가에서 없어서는 안될 작업복이자 일상복이었다. 그러기에 옷을 짓고 감물을 들여 갈옷을 마련하는 일은 농촌에서는
너나없이 연중 중요한 행사의 하나였다. 여름이 되어 날씨가 더워지고 감씨가 굳어질 무렵이면 풋감을 따서 나무 도고리 같은 큰그릇에 넣고
덩드렁마께로 으깬 후 지은 옷을 여기다 주물러 감물을 골고루 들인다. 그런 다음 그늘에서 말리고 밤에 널어 아침 이슬에 적시기를 반복하면 점차
빛이 짙어진다. 그러기에 농가에서 집을 지으면, 대나무와 함께 꼭 심어야 하는 것이 재래종 폿감나무였다.
(상점에 걸려
있는 갈옷들)
갈옷은 처음에는 뻣뻣하여 긁히기까지 하지만 입을수록 부드럽고 색감도 좋아진다. 또, 천연 섬유에 천연
염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공기가 잘 통하여 여름에 시원할 뿐만 아니라 질겨서 잘 헤어지지도 않는다. 감물은 방부제 역할을 해서 땀에 젖은 옷을
그냥 두어도 쉬 썩지 않아 작업복으론 그만이다. 요즘 갈옷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디자인과 색상, 옷감에 변화를 주고 청바지 이상으로 즐겨
입도록 개발되고 있다. 건강을 생각해서 천연 염료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 때, 잘만 만들어 놓으면 좋은 관광 상품이 될 것이다.
▲
오래된 나무와 옛 건물이 어울림
이곳 성읍민속마을에 들어 설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민속마을로서 분위기를 돋우는 것은
오래된 나무와 옛 건물의 조화다. 그러기에 중요민속자료 제188호로 지정된 성읍민속마을은 제주섬을 찾는 이들에게 가장 제주적인 것을 보여주는
곳이 된 것이다. 천연기념물 제161호인 느티나무와 팽나무 중 특히 일관헌 도로변에 있는 두 그루의 팽나무는 벌써 찾는 이곳을 찾는 이들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일관헌에 있는 팽나무 한 그루가 비록 작년 태풍 루사에 의해 가지 하나가 잘려 나갔지만 아직도 콩짜개덩굴을 두르고 대소엽
풍란을 키우고 있는 모습은 고색이 창연하다.
(일관헌과 오래된 팽나무)
정의양로와 정의강사
행사는 객사(客舍) 앞마당에서 이루어졌다. 객사는 조선시대 지방관아 건물의 하나로 수령(守令)이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망배(望拜)를
드리던 곳이어서 근엄하게 지어져 있으며, 사신이 왔을 때 숙소로 사용하기도 한다. 근래에 복원된 정의현의 객사는 다른 지방의 것을 참고로 했기
때문에 탐라순력도에 나오는 모습과 다르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에 비하면 길 건너 현감이 집무하던 일관헌(日觀軒)은 1975년에 콘크리트로
복원한 건물이나 비교적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린다.
일관헌은 1443년(세종25년)에 이건된 후 여러 차례 중·개수를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렀
는데, 일제강점기 때는 면사무소로 이용되다가 해방 후 이사무소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구조는 정면 3간, 측면
2간이며 2층 기단석 위에 축조되었다. 건물의 좌향은 서북편에 영주산을 뒤로 남동향하고 있다. 건물 뒤와 서쪽으로 후박나무, 아왜나무, 식나무,
동백나무가 우거져 있는 모습이 일품이다. 서쪽 울타리 옆에 있는 당집은 안할망당으로 일관헌 안 송악이 오른 팽나무 밑에 담을 둘러 있던 것을
옮긴 것이다. 위패를 모시고 당신(堂神)의 비녀와 구슬을 보관하고 있으며, 입학·취직·승진·경기에서 우승하게 하는 효험을 가졌다고 알려져 지금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초가집을 둘러 보고 있는 관광객들)
▲ 장수노인들을 모시고 벌인
경로잔치
1702년(숙종 28) 11월 3일. 목사 일행은 전날 정의현성의 점검을 끝내고 이 날은 장수 노인들을 모시고
경로 잔치를 벌이게 되는데, 그 그림이 정의양로(旌義養老)다. 현성 내의 건물 배치 상황이 간략히 그려져 있으며, 당시 초청된 노인은 80세
이상이 17인, 90세 이상이 5인으로 나와 있다. 객사 가운데 목사가 자리하여 양쪽에 현감으로 보이는 관리가 배석했고, 앞에는 이날 초청된
노인들이 두 줄로 앉아 있다. 마당 양쪽에 분위기를 띄우는 오색의 군기(軍旗)가 펄럭이고, 노인들 옆 기녀들이 연주하는 음악에 맞춰 마당에서
한창 춤으로 흥을 돋우고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로부터 제주는 장수하는 사람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원진(李元鎭)의 '탐라지(耽羅志)'에는 '가운데 한라산이 있어 남쪽 큰 바다의 독한 기운은 산에 막히 고,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기운이 더운
습기와 열기를 몰아내기 때문에, 한라산 남쪽에 비하여 북쪽이 더욱 장수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제주도는 65세
이상 노인 중 80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19.3%로 전국 평균 14.3%보다 높은 것으로 집계 돼 우리 나라 최고의 장수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금년부터 제주발전연구원에 '제주장수사회 연구센터'를 설립하여 노인 복지 및 제주 장수 요인에 대해
체계적 연구함으로써 제주지역 장수마을 발굴 및 관광 브랜드 상품을 개발한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전국에서 처음으로 장수(長壽) 수당을
지원하는데, 그 대상은 95세 이상 노인으로 연 12만원씩이다. 이런 경로우대 시범시책 사업으로 경로연금 수급대상자를 제외한 장수 노인을 모시고
사는 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장수의 섬' 이미지를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금년에 95세 이상 노인 265명에게 혜택을 주고 이어
2004년부터 대상 범위를 90세 이상 노인까지 확대하여 3,300여명의 장수 노인에게 수당을 지급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이형상 목사의 탐라순력도 중
'정의양로')
'신탐라순력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탐라순력도(10) 정방탐승(正方探勝) (0) | 2003.06.10 |
---|---|
신탐라순력도(9) 정의강사(旌義講射) (0) | 2003.04.08 |
신탐라순력도(7) 정의조점(旌義操點) (0) | 2003.01.10 |
신탐라순력도(5) 별방시사(別防試射) (0) | 2002.12.18 |
신탐라순력도(6) 수산성조(首山城操) (0) | 2002.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