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신탐라순력도

신탐라순력도(9) 정의강사(旌義講射)

김창집 2003. 4. 8. 17:49



(제주의 맛, 옥돔구이 정식)

▲ 진정한 의미의 제주도의 향토 음식

여행의 즐거움 중의 하나는 그 지방 고유의 음식을 찾아 음미하는 일이다. 향토음식은
그 지역의 특산물과 풍속 등이 녹아들어 있는 문화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성읍 민속
마을의 음식점에서 대표적으로 내 놓는 향토 음식은 '토종 흑돼지 구이'와 '오매기술'
이다. 지금 제주에서는 집집마다 통시를 헐어버리고 재래식으로 돼지를 기르는 일은
없어졌지만, 흑돼지 종자를 복원하여 고기를 공급함으로써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흑돼지는 제주도에만 기르는 게 아니어서 육질이 좋은 고기를 계속 공급
하려면 먹이라든가 사육 방식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조리법도 전통 방식에 근거를
두고 연구하여 색다른 형태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오매기술도 마찬가지다. 전국의 민속마을이나 명산
대찰을 낀 산골마을, 그리고 민속 축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동동주와 파전, 도토리
묵과 빈대떡이다. 이곳 성읍민속마을에서도 이와 비슷한 성격의 오매기술과 파전을 팔고
있는데, 그보다는 빙떡 같은 것을 개량해서 다양하게 소를 넣어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오매기술은 과거 조를 많이 생산하던 우리 제주도민들의 일용하던 술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막걸리 수준의 싼 제품만 내놓을 것이 아니라 이를 고급화시킨 청주나
증류시킨 고소리술 같은 여러 가지 상품을 개발하여 이름을 붙이고 등급을 매겨 손님
들의 취향이나 주머니 사정에 맞도록 마시게 해야 한다.



(제주도의 맛을 창출하는 토종 흑돼지)

아무래도 제주도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섬에서 나는 다양하고
싱싱한 해산물 음식이 아닌가 한다. 자리물회나 한치물회는 이미 정평이 나 있지만 가끔
공천포 같은 곳에서 먹어 보면 해삼물회, 소라물회, 옥돔물회, 어랭이물회 등도 맛이
그만이다. 그런가 하면, 갈치국, 옥돔국, 성게국, 멜국, 각제기국, 오분작 뚝배기 같은 탕
종류와 전복죽, 오분자기죽, 보말죽, 조개죽, 문어죽 등을 잘 개발하면 매운탕이나 찜,
무침 정도로 끝나는 다른 지역의 음식 문화와는 다른 면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옛것을 고수해나가는데 그치지 말고 찾아오는 다양한 관광객들의 입맛을 생각해야 한다.


▲ 아직도 이 지역 정신적인 교육기관 - 정의향교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된 정의향교로 가기 위해 일관헌 남쪽 골목으로 들어섰다.
비교적 골목은 그대로 보존되어 옛 정취가 느껴지나 몇몇 가옥에서 관광객을 받아들이기
위해 민구를 모아 어울리지 않게 치장해 놓은 것과 고증 없이 써놓은 글이 눈에 거슬
린다.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니 정문 앞에 종려나무 한 그루가 외로이 서 있다. 대성
문(大成門)이란 현판 아래 '정의향교' 간판을 위시해 '성균관유도회 정의지부', '-청년회',
'-여성회', '정의향교 문명학원'이란 간판이 줄지어 매달려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정의향교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이 지방의 정신적인 교육기관 역할을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성읍민속마을의 초가집과 항아리)

정의향교는 처음 현청 소재지가 고성리로부터 성읍리로 옮겨지던 1423년(세종 5)에
세웠는데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여 배향하는 한편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목적
으로 하여 창건되었다. 원래는 탐라순력도에 나와 있는 대로 서성 안에 있었다. 그 후,
1849년(헌종 15)에 장인식(張寅植) 방어사가 조정에 계청(啓請)하여 지금의 위치로 이건
하였으며, 1967년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복원되어 있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수선당, 수호사, 내삼문, 협문(2동), 동재 등이다. 대성전에는 5성(聖), 10철(哲),
송나라의 6현(賢)과 우리 나라 18현(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고 하는데, 좁은 마당에
두 그루의 배롱나무가 외로이 이를 지키고 서 있었다.

전패(殿牌)를 보관하여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던 향교에는 건물들을 복원하며 베어
버렸는지 고목은 없으나 동백나무, 은행나무, 담팔수,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비자나무
등이 심어져 있다. 과거 향교의 제전은 정의현 관내 여러 마을에서 참가하여 해마다
여러 차례 성대하게 치러졌었는데, 일제강점기 몇 해 동안은 민족문화 말살정책 때문에
공자탄일 하루만 지내도록 통제를 받다가 해방되자 이 구속에서 풀렸다. '2002년도 청
소년 인성 현장 교육'이라는 현수막이 펄럭이는 문명학원 건물 앞에 도열해 있는 송덕
비의 배웅을 받으며 후문으로 나오니, 바로 하눌타리 줄이 엉켜 있는 정의현성 서문이다.



(이형상 목사의 탐라순력도 중 '정의강사' 그림)

▲ 병사들의 활 솜씨를 점검한 '정의강사'

정의강사(旌義講射) 행해지던 날은 1702년 음력 11월 4일, 바로 동짓날이었다. 당시 병
사들의 기본 무기는 칼과 창과 활이었는데, 활쏘기를 잘하는 사람을 사원(射員)으로 뽑아
실력을 연마하도록 했었다. 지금 군대에서도 검열이 나오면 빼먹지 않은 것이 사격 측
정이듯이 당시 전쟁 초기의 성패를 좌우했던 것이 활쏘기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 행사의
중요성을 알 것이다. 이 날의 강사(講射)에는 도훈장인 유학(幼學) 고세웅(高世雄)을 비
롯한 각 면의 훈장 5명과 교사장(敎射長) 7명, 당시 향교에 소속되었던 유학생(儒學生)
166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87명의 사원이 활을 쏘았다. 그림은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보는
형태로 바뀌어 있지만 객사를 사대(射臺)로 동문 남쪽에 있는 표적을 향해 화살을
날리고 있다.

남문 광장으로 걸어나오는데, 지난 9월 28일 이곳에서 펼쳐졌던 '정의골 민속 한마당
대축제' 모습이 떠오른다. 1994년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한 해로 거르지 않고 행해지고
있는 이 행사는 민속의 고장답게 각 반 단위로 한 가지씩 담당하여 꼴베기, 김매기, 방아
찧기, 마당질, 맷돌질, 밭밟기, 달구질 등을 차례차례 시연(試演)하며 노동요가 곁들여
진다. 민속문화 발굴 및 보존, 민속마을 이미지 제고, 민속놀이 재현을 통한 전통문화
계승 발전, 제주도민과 관광객이 함께 참여하는 한마당 민속 축제로 승화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진 이 행사가 더욱 발전하여 전국적으로 크게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