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신탐라순력도

신탐라순력도(12) 천연사후(天淵射帿)

김창집 2003. 6. 20. 23:50

 

 

(그 날 찍은 천지연 사진, 폭포 위 나무는 구실잣밤나무)

 

▲ 천지연 난대림지대를 왜곡시키는 나무들

 

 천지연(天池淵)은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관광지다. 우리가 취재를 위해 찾았을 때도 샤스 때문에 외국으로 가지 못하고 몰려온 수많은 관광객들이 들끓고 있었다. 절벽에 자라는 천연기념물 제379호 천지연 난대림 식물들…. 서홍동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163호와 중복되지만 담팔수나무를 비롯하여 구실잣밤나무, 동백나무, 까마귀쪽나무, 후박나무, 아왜나무, 참식나무, 새덕이, 조록나무, 백량금 등의 상록수 종들은 언제 보아도 정답다. 이들이 천지연을 천지연답게 꾸미는 것들이다. 그러나, 과거 아무 대책도 없이 좋은 나무라면 무작정 심고 보자던 때, 무분별하게 심은 외래 수종들이 본래 난대림 식물들과의 구분을 힘들게 한다.

 

 이래서 어떻게 천연기념물이랄 수 있겠는가? 둥글게 깎아놓은 회양목을 시작으로 하귤나무, 금감나무를 비롯한 감귤 종류, 산철쭉, 유카, 후피향나무, 올벚나무, 왕벚나무, 굴거리, 향나무, 단풍, 산유자, 목련, 참두릅나무, 복숭아, 무궁화…. 이런 나무들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구역에 의젓하게 명찰까지 달고 도열해 있다. 조금만 생각하면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저 천연사후에 나오는 폭포를 보면 본래의 초목만 갖고도 단아한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탐라순력도 중 '천연사후', 즉 천지연에서 활 쏘는 그림)

 

▲ 옛 사람들이 즐기던 활쏘기 '천연사후'

 

 궁도(弓道)는 그 이름처럼 하나의 도(道)로서 심신을 단련하기 위한 운동이다. 더욱이 무기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의 활은 하나의 무기이면서 지금의총이나 마찬가지로 집단을 방어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될 병기이기도 하였다. 요즘도 도내 곳곳을 돌아보면 '사장밭'이라고 하여 과거에 활터로 활용했던 곳이 많다. 이렇게 하여 마을에서도 활쏘기가 생활화되고 그 중 솜씨가 뛰어난 사람은 대회를 열어 상을 주고 중용했다. 또한, 벼슬하는 사람들 중 특히 무인은 활쏘기에 힘써 그 솜씨를 과시하면서, 실제 사냥에 활용하기도 했다.

 

 요즘 대통령이 골프를 쳤다고 해서 논란이 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무인(武人)들의 모임이 있을 때, 아름다운 자연 속에 가면 활쏘기는 빼놓을 수 없는 행사였다. 특히 폭포가 있는 아름다운 경치 속 계곡 양쪽의 거리가 적당한 곳이면, 더욱 활 쏘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했던 것 같다. '천연사후(天淵射帿)' 행사를 치르던 날은 양력 12월 24일이어서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이 위험한 오른쪽 절벽에 올라 맞은 편 과녁을 향해활을 쏘는 모습이 보인다. 정의현감 박상하(朴尙夏), 대정현감 최동제(崔東濟)을 대동한 걸 보면 은근히 목사 자신의 실력을 뽐내려 했을지도 모른다.웃고 떠들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관광객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하려고 한쪽 나무 그늘로 들어가 조용히 옛 그림의 정취를 더듬어 본다.

 

 순력도에 나온 기록대로라면 폭포의 높이가 50여 척으로 15m를 넘고, 너비는 10여 척으로 3m를 조금 넘는다. 그러나, 지금은 3m 정도의 원 줄기 외에 서쪽으로 1m 정도의 작은 줄기가 같이 흐르고 있다. 구실잣밤나무가 너무 무성하게 우거져 그림에 나온 풍경과는 거리가 멀고 짚으로 만든 추인(芻人)이 매달렸던 밧줄을 매었던 곳도 상상하기 힘들다. 다만 들어올 때 보니, 이 천지연의 미관을 해치던 서귀포 지역 최초의 호텔인 '서귀포 라이온즈 호텔'을 철거하고 있는 모습이 보여, 앓던 이를 빼는 기분이다. 서귀포시에서 37억5천만 원이라는 보상금을 지불하고 그를 철거해 시민을 위한 광장을 조성한다는데, 시설물이 미관을 해치는 우를 범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금슬 좋기로 유명하다는 원앙,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 무태장어 서식지 위에서 노니는 원앙새

 

 천천히 걸어나오는데 낯익은 새가 물에서 놀고 있기에 자세히 보니 원앙새다. 전국의 맑은 산간계류에서 서식하는 텃새이나 겨울에 추우면 남쪽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금실이 좋기로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수컷은 그 화려한 몸치장만큼이나 바람둥이다. 올 때마다 이 놈들이 보이는 걸 보면 이곳에 아주 터를 잡았나 보다. 알고 보면 원앙새는 천연기념물 제327호로 보호되고 있는 새이니 만큼, 잘만 하면 또 하나의 천연기념물을 이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보이지 않는 천연기념물은 무태장어이다. 벌써 1938년에 제27호 무태장어 서식지로 지정한 걸 보면 그 희귀성을 알만하다. 무태장어는 일반뱀장어와는 달리 황갈색 바탕에 흑갈색의 불규칙한 무늬가 온 몸에 흩어져있으며, 대형 어종으로 몸의 길이가 2m 이상, 무게는 20kg을 넘는 것까지 있다고 한다. 육식성이어서 수중의 바위틈이나 장애물 사이에 숨어 있다가 야간에만 활동하며, 한반도에서는 매우 드물게 발견되는 희귀종이다. 그러나 그 모습을 살필 수 없어 아쉽다. 물의 낙차를 이용해 폭포처럼 물보라를 일으키게 만든 곳에서 커다란 비단잉어가 그곳을 거슬러 올라 용이라도 되려는 듯 펄떡거리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258호인 무태장어. 길이 2m, 무게 20㎏가 넘는 것도 있다.)

 

▲ 보호가 시급한 서귀포층 패류 화석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 천지연 주차장에서 남서쪽으로 7분 정도 걸어가면 대국해저잠수함 및 해상유람선 매표소와 선착장이 나오는데, 새섬으로 뻗은 방파제가 시작되는 절벽 밑에 집채만한 큰 바위덩어리들이 널려 있다. 이곳이 바로 천연기념물 제195호로 지정된 패류화석지대로 중생대말 백악기(제3기 플라이오세)에 바다 속에 있던 해양생물들이 묻힌 퇴적암이 융기하여 형성되었던 단애였으나 풍화되어 떨어져 나오면서 패류화석들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본층의 두께는 50∼60m 정도로 그리 두텁지는 않지만 3개 층의 패류화석대가 들어 있는 것을 살필 수 있다.

 

 더욱이 이 곳에서는 패류화석 이외에 산호화석, 어류등뼈, 연체동물, 저서성(底棲性) 및 부유성 유공충(有孔忠) 등의 크고 작은 동물화석들이 새로이 발견되고 있어 하루 속히 학술 조사를 마치고 보호 대책이 요망된다. 이 서귀포층 패류화석지대는 면적이 협소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불법채취나 파도 등에 의해 심하게 침식되고 있어서 안타깝게도 원형이 많이 파괴되고 있는 실정이다. 경치가 좋은 곳도 중요하지만 이런 숨어 있는 보석도 잘 다듬어 놓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난대림 지역, 바위틈에 자생하는 풀고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