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신탐라순력도

신탐라순력도(14) 현폭사후(懸瀑射帿)

김창집 2003. 9. 3. 11:08

 

(나무로 뒤덮인 천제연폭포 주변)

 

▲ 혼동해서는 안될 '탐라구지'와 '탐라왕자묘'

 

 하원동 탐라왕자묘(河源洞耽羅王子墓)는 2000년 6월 21일 제주기념물 제54호로 지정된 서귀포시 하원동에 있는 분묘 3기를 말한다. 법화사지 못 미쳐 삼거리에서 토평동으로 빠지는 길로 내려가다 왼쪽 두 번째 시멘트 포장길로 2km 정도 들어간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고려말∼조선초의 일반적인 묘제 형태인 계단식 네모돌널무덤[方形石棺墓]으로 확인되었다. 잘 다듬어진 4∼8단의 판석과 할석으로 축조한 이 분묘에 대해서는 이원조 목사의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과 <대정군읍지>, 그리고 김양익의 <심재집(心齋集)>등의 기록에 나왔을 뿐만 아니라 구전되기도 한다. 한때 원나라 박박태자(拍拍太子)의 무덤이라고 주장하던 학자들이 있었으나 근거가 없고, 일제강점기에 심하게 훼손된 것을 발굴, 복원하였다.

 

 조사단에따르면 1호분과 2호분은 조선 초에 축조되었으며, 1호분의 경우 곽의 구조와 각종 석물(비석·등잔대·문인석), 계단 시설, 축대 등으로 보아 당대의 고위층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3호분에서는 고려 중기의 묘역에서 볼 수 있는 소옥(小玉)과 청동그릇 조각이 출토되었다. 출토 유물로 볼 때 상단에 있는 3호분이 먼저, 다음에 1호분, 2호분 순으로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 3기의 돌널무덤은 제주도에서 발견된 묘 중에서 가장 오래된 분묘군일 뿐 아니라 흔치 않은 형태로 제주 묘제 변천사 연구에 사료적 가치가 높다. 이에 비해 '탐라순력도'에 나오는 '탐라구지'는 용흥동 고둔과원에 위치했던 곳으로, 이 무덤의 주인공들이 살았던 집터로 추측된다.

 

(서귀포시 하원동에 새로 복원된 탐라왕자묘)

 

▲ 푸조나무는 싱싱한데 왜 팽나무는

 

 우리가 천제연을 찾은 날은 일주도로로 이어지는 제1폭포 위로 다리 보강공사가 한창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민등록등을 내보이며 조심스럽게 숲으로 들어선 순간, 나무에서 내뿜는 청량한 기운과 함께 오른쪽으로 병풍을 두른 듯한 천인단애가 나타난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 맑다 못해 푸른 물에 손을 씻고 사방을 둘러보니, 비가 온지 오래여서 폭포수가 절벽에 걸려있지 않은 대신 양쪽으로 숲의 폭포가 청아한 바람소리로 쏟아진다. 이 계곡이 지방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된 담팔수의 자생지라는 점에 유념하며 아래로 빨간 잎을 단 나무를 찾아본다.

 

 자세히 살펴보니, 담팔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머리 위로 웅장하게 뻗은3그루의 푸조나무가 유난히 싱싱하다. 잎사귀에 병이 든 팽나무가 옆에 있어 상대적으로 더욱 푸르게 느껴지는 것이리라. 무슨 까닭인지 지금 온 섬에 있는 팽나무는 거의가 병들어 있다. 팽나무가 어떤 나무인가? 느릅나무과의 낙엽교목인 팽나무는 제주도민과 함께 영욕을 함께 해온 나무다. 설촌하면서 요지에 심어 정자를 꾸미고, 신당에 심어 신목(神木)으로 숭앙해왔다. 그런 나무가 몇 해 전부터 잎사귀에 병충해를 입어 곰보가 되고 새로 돋아난 잎들조차 심상치 않다. 같은 느릅나무과의 푸조나무는 이렇게 싱싱한데. 큰 일이다.

 

 

(천제연폭포, 이쯤에 줄을 매어놓고 활을 쏜 것 같다.)

 

 남쪽으로 조성된 숲길을 걸으면서도 그걸 느꼈다. 난대림지대를 보호하기 위하여 천연기념물 제378호로 지정해 놓은 이곳의 다른 나무들은 다 싱싱한데, 왜 저 팽나무만 저런 것일까? 천선과나무가 둥그렇게 열매 맺고, 마삭줄이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위로 키가 큰 구실잣밤나무, 아왜나무, 보리밥나무, 참식나무, 자귀나무, 산유자나무, 동백나무, 후박나무, 가운데로 송악, 상산, 남오미자, 조록나무, 사스레피나무, 작살나무, 쥐똥나무, 돈나무, 꾸지뽕나무, 모람나무, 아래로 쇠고비, 맥문아재비, 백량금, 석워, 털머위 등을 살피며, 제2폭포 아래편으로 내려가서 시원한 물줄기를 즐긴다. 그런데, 이곳 어디에다 과녁을 세우고 활을 쏘았단 말인가?

 

▲ 천제연에서 활쏘기를 즐기는 그림 현폭사후

 

 현폭사후(懸瀑射帿)는 순력에 나선 목사 일행이 천제연 폭포에서 활쏘기를 즐기는 그림이다. 다른 그림과는 달리 표지 글이나 부기(附記)된 내용이 너무 간단하다. 큰길엔 면한 곳이 대정(大靜)임을 알리는 내용, 착각했는지 '천지연(天池淵)'이라 써놓고 상폭(上瀑), 하폭(下瀑)으로 구분한 것, 그리고 아래 적은 '임오년 11월 초6일에 지나다 들렀는데 폭포의 길이 50여 척에 너비5척'이라는 글뿐이다. 그리고, 폭포의 단수만 다를 뿐 천지연에서 활쏘기를 하는 천연사후(天淵射帿)와 구성이 비슷하다. 병사들이 기를 들고 경계를 서는 모습, 나머지는 오른쪽에 천막을 치고 대기하고, 두 사람은 나서서 활을 쏘는 장면이라든가, 왼쪽에 과녁이 있고 그 사이에 줄을 매어 추인(芻人)을 단 것까지.

 

 

(탐라순력도 중 천제연에서 활 쏘는 그림 '현폭사후')

 

 지난 회 '고원방고(羔園訪古)' 편에서도 지적했듯이 이쪽 부분의 일정은 다시 정리해 놓아야 할 것 같다. 순력의 중간에 속하는 11월 6일부터 10일까지의 치른 행사는 6일의 천연사후, 현폭사후, 고원방고, 10일의 산방배작, 대정조점 등 다섯이다. 그렇다면, 7일부터 9일까지의 행적이 묘연하다. 그리고, 의심이 가는 대목은 6일의 행사인데, 천지연에서 활쏘기를 하고 다시 천제연에 가서 활쏘기를 하다 돌아와 고둔과원 왕자구지에서 귤향을 맡으며 풍류를 즐기고 간다는 게 앞뒤가 안 맞고, 또 순서도 6일의 천연사후가 먼저 나오고 다음 5일에 서귀진에서 조점을 하고 잤다는 순서로 엮어 놓았다. 아무리 따뜻한 산남지역이라지만 양력 12월말에 그 많은 일행을 먹이고 재울 곳은 서귀진과 대정현성 뿐이지 않은가?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숲을 빠져 나와 선임교(仙臨橋)에 오른다. '옥황상제를 모시는 선녀들이 밤에 몰래 목욕하러 다녀갔다'는 전설을 상징하는 악기를 든 칠선녀가 새겨진 아치형의 다리이다. 길이 128m, 폭4m로 230톤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다리 위에서 폭포와 아름다운 계곡을 바라보는 느낌이 각별하다. 다만 우거진 나무 때문에 제2폭포의 전모를 볼 수 없어 여미지 식물원 가는 쪽으로 내려 천제루(天帝樓)에 오른다. 여기서도 한라산은 확연히 보이는데 아무래도 폭포는 무성한 나무에 가려버렸다. 내려와 나무사이를 헤치고 들어가서야 천제연 폭포의 장관을 즐길 수 있었다. 5월에 '칠선녀 축제'가 이곳에서 열린다는데, 내년에 꼭 한번 와보리라 다짐하며 귀가길에 올랐다.

 

 

(새로 복원된 선임교, 멀리 보이는 지붕은 여미지 식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