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의 한 초가집)
♣ 이 글은 <제주문화예술> 2003 봄호에 실었던 '옛날을 생각한다③'입니다.
▲ 육식 과잉으로 걱정이 되는 비만과 성인병
제주도가 관광지로 발전하면서 주민들이 먹고 마시는 기회만 부풀려 놓았다. 관광객을 위해 크게 지어놓은 고급스런 식당은 평소 주민들이 이용하지 않으면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거기다 좋다고 이름난 식당을 가보면 관광객은 손꼽을 정도고, 오히려 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먹다 죽은 귀신 때깔도 좋다며 내 돈 내고 내가 먹는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마는, 사방을 둘러보면 비만아가 늘어가고 배에 기름 아니 낀 어른은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다. 결식(缺食) 아동보다 비만 아동이 늘어가고, 체지방으로 인해 성인병으로 죽거나 고통을 받는 사람의 숫자도 늘어간다.
우리의 식생활 문제, 이래도 되는지 한 번 생각해 볼 시점에 와 있다. 이럴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선인들의 지혜를 빌리는 일이다. 제주는 예로부터 장수(長壽) 지역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아주 열악한 조건을 갖고 있었다. 토질은 척박하여 농사가 잘 되지 않았고, 건천(乾川)이 대부분이어서 가뭄이라도 들면 그야 말로 속수무책이었다. 게다가 태풍이 지나는 길목이 되다보니 어쩌다 잘 자란 곡식도 단번에 쓸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또,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 벼슬살이 온 수령들은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온 앙갚음이라도 하듯 한몫 챙겨가려고 가혹한 세금을 물리는 통에 보통 사람이 평소에 어디 고기 한 근 마음놓고 사먹을 여유가 있었던가?
고기를 먹을 기회란 것이 잔칫집이나 상가(喪家)의 돼지고기 석 점, 명절이나 제사 때의 고기적 한 점, 그 외 어쩌다 추렴해서 먹게 되는 돼지고기 몇 점이 고작이었다. 그래도, 이곳에 사는 조상들은 나름대로 지혜를 짜내 영양을 보충하고 무더운 여름을 탈없이 넘겼으니, 그것이 바로 유월스무날 닭잡아 먹는 풍습이다. 이 때는 시기적으로 여름 농사를 시작하여 파종을 하고 한두 번쯤 김매기가 끝난 상태인데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때이다. 보리 베어 장만하랴, 조밭 밟으랴, 조 솎으랴, 검질 매랴, 그 동안 흐린날 갠 날 없이 매일 밭에 나가 일을 했기 때문에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어, 고기라도 먹어 몸을 보호하지 않으면 여름을 무사히 넘길 수 없었을 것이다.
(겨울 보리밭 김매기)
▲ 제주 사람들의 여름나기 - 유월스무날
봄이 되어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건강한 암탉들은 알을 품어 병아리를 깨내기 위해 둥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러면 농가에서는 모아둔 달걀을 잘 골라 한 20개쯤 둥우리에 넣어 암탉으로 하여금 품게 한다. 어떤 집에서는 두 자리 세 자리 앉히는 수도 있다. 이 때 달걀이 둥그스럼한 것은 암평아리가 되고, 좀 길쭉한 것은 수평아리가 된다 하나 아무리 잘 골라도 6 : 4나 7 : 3 정도의 비율로 수평아리가 나오게 마련이다. 병아리를 기르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병들어 죽는 수도 있지만 까마귀나 매가 채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 봄에 학교 갔다오면 '돝것'이라 하여 돼지 먹이 주는 일과 바구니에 엎어둔 암탉과 병아리를 열어 '곡석'이라 하여 모이를 주고 돌보는 일이 주된 오후 일과였다. 그러나, 또래들과 정신없이 놀다 보면 잊어버리기 일쑤였고, 같이 어울려 '삥이(삘기)'라도 빼 먹고 상동 따먹으러 갔다 와보면, 벌써 매에게 병아리 몇 마리를 잃어 부모님께 호된 질책을 받곤 했다. 밤에는 늙은 도둑고양이나 족제비가 물어가기도 한다. 아무리 암탉이 날개 속에 품어 보호한다고 하나 일순간에 채가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보기만 하여도 정겨운 토종 씨암탉들)
그럭저럭 살아남은 놈들은 6월 보름 정도 되면 몸집도 커지고 모양도 차차 닭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수평아리들도 목을 빼어 쉰 목소리로 울기도 하고 암탉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힘을 겨루기도 한다. 닭은 보통 수탉 한 마리가 암탉 2∼30마리를 거느릴 수 있기 때문에 수탉 여러 마리를 같이 놓아두면 매일 싸움으로 성할 날이 없다. 이 때 서로 성가시지 않게 제일 힘센 놈을 제외한 수탉들을 잡아먹는 것이다. 이 때는 닭이 크기도 적당하며 고기도 연해서 맛과 영양가가 좋기에 그런 풍습이 생겼으리라.
잡아먹을 때는 내장을 빼고 손질하여 닭의 뱃속에 주로 마늘과 쌀을 넣었으며 약이 된다고 하여 옻나무를 잘라 넣거나 마른 지네를 넣기도 했다. 식구 수에 비해 고기의 양이 모자라면 알을 잘 낳지 못하는 늙은 암탉을 잡아먹기도 하고, 그 국물로 닭죽을 쑤어 먹기도 했다. 묵은 수탉은 집을 지을 때 상량식을 하거나 굿을 할 때 희생물로 쓰기 때문에 새 수탉이 제 구실을 하기 시작하면 시장에 내다 팔았다. 암탉은 달걀을 팔아 생계에 보태기 위해서 함부로 잡아먹지 못한다. 다만, 시집간 딸이 남편에게 사랑을 듬뿍 받게 하기 위해서 간혹 처가를 찾은 사위에게 장모가 잡아주는 일은 있어도.
(옛날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빼어놓은 긴 골목, '올레')
▲ 몸에 좋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
비단 우리 제주에 국한된 건 아니지만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몸에 좋다는 것을 너무 밝히고 있다. 펄펄 뛰는 생선회도 관광객보다 더 먹고, 맛 좋고 몸에 좋다는 것을 파는 집에는 어떻게 소식을 듣는지 사람이 들끓는다. 게다가 지역이 좁다보니, 먹을 일도 많고 모임도 잦다. 먹는 일만 해도 그렇다. 과거에는 활동 범위가 제한이 되어서 같은 마을이나 친척집, 그리고 외가나 처가의 일만 돌아보면 되었는데, 이제는 범위가 넓어지고 거기다 초, 중, 고교 동창회나 직장, 또 자신이 소속된 각종 모임의 대소사에 참가하다보니, 많을 때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맛있는 음식을 접할 기회가 생긴다.
행사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여러 가지 모임의 장소를 정하는 데도 먹을 것을 생각하게 되고, 어떤 때는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아는 사람을 불러낸다. 어디 그 뿐인가? 형편이 닿는 집에서는 식구끼리 가서 먹고, 집에서도 챙겨 끼니마다 먹이는 사람도 있다. 몸에 좋다고 보양이 된다고 이렇게 한정 없이 먹어도 될 것인가. 능력이 안 되던 시절에는 없어서 못 먹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오래 살아 장수 지역으로 알려져 왔다. 오늘날에는 좋다는 것을 너무 먹어 탈이 나서 죽는 일이 영양실조로 죽는 사람보다 몇 배 많다. 우리 고장의 세시풍속을 살펴보면 보양식을 먹을 기회는 유월스무날과 남펭날 꼭 두 번이었다.
(고향에 떠올랐던 맑은 하늘의 구름)
▲ 제주지방 사람들의 겨울나기 - 남펭날
'남펭날'은 제주도만이 갖는 풍속의 날로 엿을 고아 먹는 풍습이 있다. 그날은 동지(冬至)를 지나 세 번째 맞는 '염날'이나 입춘(立春) 전 첫 '염날'인데, '미일(未日)' 즉 '염소날'을 말한다. 이 시기는 소·대한을 넘기는 시기이기 때문에 중부 지방에서는 추위가 극에 달하는 때이나 제주도에는 이상하게도 이 때보다도 2월에 눈이 더 많이 오고 춥게 느껴진다. 추위에는 단 것이 좋은데, 과일도 풍부하지 못하고 설탕도 전래되지 않았을 때의 엿은 추위를 타는 사람들의 몸을 보호하는 데 중요한 보약이 되었다.
옛날 제주도 사람들의 주곡은 겉보리였다. 쌀보리가 전해진 것은 일제강점기여서 그 이전에는 논이 별로 없는 이곳에서 겨울철에 잘 자라는 겉보리를 재배하여 주곡으로 삼았던 것이다. 또, 여름에는 밥을 지을 수 있는 곡식인조를 심어 부족한 식량을 보충하였다. 엿은 이 두 가지 곡식을 이용해서 고았다. 우선 동짓날에 다래끼 같은 그릇에다 보리를 물에 흠뻑 축여 방에 들여놓고 헝겊을 덮어 적당히 가온(加溫)을 한다. 이런 것을 '골을 놓는다'라고 하며, 엿기름가루의 재료가 되는 뿌리와 싹이 돋아난 보리를 '골'이라 했다.
(엿기름가루의 재료인 보리)
물을 주며 지켜보다가 뿌리가 돋고 싹이 솟으면 멍석에 널어 말린다. 잘 마른 '골'을 '고래'(맷돌)에 갈아 놓은 것이 엿의 재료가 되는 엿기름가루인 것이다. 보리 속에 있던 탄수화물이 싹을 기르기 위해 맥아당으로 바뀐 때이다. 독특한 성질을 가진 엿기름가루는 메밀묵을 쑤는 데 섞이면 낭패를 본다. 제주도에서는 가끔 고구마엿도 하지만 대부분은 흐린 좁쌀(차조)과 겉보리를 이용해 만들었다. 우선 흐린 좁쌀을 물에 담갔다가 쪄서 적당히 식힌 다음 항아리에 넣고 엿기름가루를 잘 섞어 아랫목에 넣어 둔다. 7∼8시간이 지나고 나면 삭아서 국물이 흥건해지는데, 이것을 헝겊에 짜 낸 것이 감주다. (앞 '고래'의 'ㅗ'는 '아래아'임)
이 감주를 커다란 솥에 넣고 눌어 타지 않게 자주 저으면서 끓이면 엿이 된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커다란 장작으로 불을 좀 약하게 때어 느긋이 기다려야 한다. 색이 짙어지고 걸쭉해지면 엿조배기를 해서 찍어 먹는다. 엿조배기는 보통 차조가루를 물에 쪄서 먹을 만큼의 크기로 잘라 삶아낸 것을 말한다. 그 다음에는 먹을 사람의 용도에 따라 재료를 가감하는데, 마늘은 대부분 다 들어간다. 꿩엿은 꿩고기를 구해 살만 발라내어 알맞은 크기로 찢어 같이 졸인 것이고, 닭엿은 꿩 대신 닭을 넣은 것이다. 양을 불리고 먹을 때 씹히는 맛을 내기 위해 쌀을 씻어 첨가하기도 한다. (앞 '엿조배기'의 'ㅗ'는 '아래아'임)
익모초 삶은 물을 이용해서 엿을 고아 자궁이 약하고 하혈이 터지는데 먹거나, 쑥을 삶은 물을 이용해서 위나 장이 나쁜 사람이 먹는 약용 엿도 있지만 거의 보양식품으로 활용되었다. 그래서 구할 수 있는 대로 오소리 고기를 넣기도 하고, 하다 못해 돼지고기를 넣기도 한다. 이밖에 약재를 넣는 수도 있는데, 하늘타리나 호박 같은 것이 그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날을 정해 주위에서 흔히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서 엿을 고아먹는 정도로 충분히 추위를 이겨 건강하게 겨울을 날 수 있는 지혜를 발휘했던 것이다.
(오름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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