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향토문화 기행

저 맑은 가을 하늘을 누가 가리랴

김창집 2003. 9. 29. 13:32

탐라문화보존회 한림읍 답사기 [2003. 9. 21.]

 

▲ 새별오름에서 술렁이는 억새

 

 한림읍 답사에 애월읍 관내의 새별오름을 넣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왜냐 하면 한림읍 관내의 오름들 중에는 저렇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억새를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 50명이 그린리조트 경마장 입구 주차장에 내렸을 땐 벌써 새별오름 정상에 많은 사람들이 올라 서성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천천히 걸어 지난 정월 대보름날 들불 축제를 벌였던 들판을 가로지르며, 별처럼 점점이 피어난 쥐손이풀꽃과 이질풀꽃에 탄성을 보냈다.

 

 철조망을 건너 불을 붙이기 위해 3m 정도의 폭으로 경계선을 만들었던 길을 따라 오르다 뒤를 바라보니, 뒤로 꾸불꾸불 따르는 일행이 연(鳶)의 꼬리처럼 움직인다. 억새와 띠 속에 나비나물과 이질풀, 잔대, 짚신나물, 쑥부쟁이가 피어 하늘거린다. 불길에 타지 않았던 부분은 데인 상처처럼 군데군데 표가 난다. 억새가 바람에 날리며 서쪽 분화구의 장관을 예고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먼저 올라온 사람들은 그곳을 거치지 않고 그냥 내려가 버렸다."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이런 곳에서도 통하나?

 

(오름을 오르는 사람들)

 

 정상에서 다 올라오기를 기다려 주위의 오름에 대해 설명하고 들꽃 이름을 들려줬다. 저 들판에서 마지막 남은 목호(牧胡)를 토벌한 최영 장군도 이곳에 올라 주위의 장관을 둘러보며 감탄했을까? 새별오름의 이름을 들어 '아침에 떠오르는 샛별같이 솟아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식으로 소개된 것을 보면서 고소를 금치 못한다. 뒤에 더 우뚝우뚝 솟아 있는 오름 때문에 마을에서 보면 하늘 위로 꼭대기도 드러내지 못하는데 샛별이라니?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런 견강부회식 해석을 하며 현학적인 체하는 사람을 가끔 보게 되는데, 이것도 그런 사람들의 작품 중의 하나다.

 

 북쪽으로 내려 나직한 봉우리로 향한다. 태풍이 가시덤불을 들쑤셔 놓아 길이 엉망이다. 북쪽 봉우리에 김해김씨 집안의 며느리 묘소를 교묘하게 앉혀놓았다. 오가는 사람들이 꼭 한 번은 쉬어 가는 이곳은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명당처럼 보인다. 그러나, 명당이란 게 누구에게 맞는 것은 아니다. 몸이 차고 추위에 약한 사람은 이런 곳이 싫을 테고, 몸에 항상 열이 있고 답답한 것을 못 참는 사람은 이렇게 북쪽으로 탁 트인 동산을 선호할 것이다. 남성의 힘있는 성기의 모습을 닮은 망주석과 바람에 닳았는지 작고 아담한 문·무인석과 동자석이 너무 잘 어울린다.

 

(억새가 피어있는 분화구 속으로 내려가는 사람들)

 

△ 억새가 너무도 좋은 새별오름 서쪽 분화구

 

 내가 앞장서지 않아도 일행은 너무 빨리 억새 속으로 빨려든다. 하긴 코스를 일러주고 길이 나 있으니까 못 갈 리 없지. 뒤 따라 가는 나도 억새 사진 찍기에 바쁘다. 이번 매미가 지나면서 억새 줄기와 이삭을 갈기갈기 찢어 놓은 곳이 대부분인데, 이곳은 용케도 피해 갔다. 올 억새는 이곳이 가장 싱싱하게 살아 남은 것 같다. 지난여름 비비추가 있던 자리에는 다른 들꽃들이 자리 잡았다. 간혹 쇠서나물과 잔대꽃이 섞였지만 억새가 눈을 어질러 놓아그곳에 눈이 가질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것/ 죄다 아파하는 것 죄다/ 슬퍼하는 것 죄다/ 바람인 것 죄다/ 강물인 것 죄다/ 노을인 것 죄다/ 내가 버리지 못하는 것 죄다/ 죄다 죄다 죄다/ 너는 버리고 있구나/ 흰머리 물들일 줄도 모르고/ 빈 하늘만 이고 서 있구나/ 돌아가는 길/ 내다보고 있구나.'--- 이근배 '억새' 전문

 

(새별오름 분화구에 피어오른 억새)

 

▲ 밟혀도 끈질기게 피어나는 들꽃

 

 소도 그렇지만 말들의 먹성이야 알아 줄만하다. 배고플 땐, 먹고 소화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씹어 삼켜버린다. 잎은 물론 웬만한 나무 줄기도 어림없다. 그런 와중에 뿌리만 약간 남은 들꽃이라도 종족 보존을 위해 비상 수단으로 마지막 순을 짧은 기간에 뽑아 올리고, 그 꽃이 늦어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면서도 모든 영양을 다 불러다 꽃을 피우는 것이다. 이런 처절한 아름다움을 누가 감히 짐작이나 할 것인가.

 

 '오직 주어진 직분을 다해/ 최대로 요염한 모습으로/ 나비와 벌을 불러들이면 그만인 것을./ 이름 없는 것이 오히려 행복이라고/ 바람 속에 서 있어야/ 온몸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할 수가 있다고/ 눈물 속에서 꽃을 피워야/ 가장 향기로운 꽃을 만든다고/ 오늘도 나에게 속삭이는 그대/ 나는 아직도 들꽃처럼 낮아지지 못해서/ 당신이 나에게 짐 지워주신/ 키 작은 십자가 하나도 감당하지 못해서/ 그대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밤마다 그대의 뜰 앞에서 서성입니다.'-- 이정화(李貞華)의  '들꽃 2' 전문

 

(풀 속에 숨어 수줍게 피어오른 섬잔대)

 

이달봉에 오르며 우리가 잠시 지나온 새별오름을 바라본다. 이젠 처음 대할 때와 모습이 완전 뒤바뀌어 움푹 패인 분화구 부분이 오히려 드러나 보이는 것이 오름이나 사람이나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음을 실감케 한다. 역으로 비치는 억새의 모습에서 배경숙 시인이 딱 2행으로 마감한 시 '억새꽃'의 "회오리치는 하얀 영혼의 살풀이 / 햇살은 칼날로 내리꽂힌다"가 가슴을 찌른다. 지난 초여름에 왔을 때는 범부채가 나를 감동시키더니, 오늘은 섬잔대의 종소리가 이렇게 가슴 설레게 한다.

 

▲ 더욱 푸르러진 하늘에 흐르는 흰구름

 

 가을은 푸른 하늘로부터 온다는 게 내가 평소에 갖고 있는 소신이다. 물론지구가 기울어져 태양이 멀어지기 때문에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다는 걸 모른 바는 아니지만 완연한 가을을 느끼는 건, 단풍도 아니고 이슬도 아닌, 하늘에서 느낀다는 말이다. 차가워진 공기 때문에 먹구름은 오래 견디지 못해 내려가 버리고, 얇고 하얀 구름만이 두둥실 떠오르며 흐르게 되는 것이리라. 저 하얗고 보드라운 구름이 가을 하늘과는 너무 잘 어울린다. 그냥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만 펼쳐져 있는 것보다 구름 한 두 조각 가벼이 나는 것이 얼마나한 위로이랴.

 

(푸른 하늘에 한가로이 떠 있는 구름)

 

 빛 바랜 사진 한 장이라든가/ 곰팡이 슬은 낡은 편지라든가/ 그런 것에도 아직 사랑이 남아 있는 것일까?/ 머언 산만 바라보아도/ 봄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여름 오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바람결에 밀려오는/ 아픈 이야기라든가/ 서러운 이야기라든가/ 그런 것에도 사랑이 남아 있는 것일까?/ 여름을 지나, 마침내 짙은 가을/ 티없이 맑고 높고 푸른 하늘에/ 솔솔솔 눌려오는 사랑의 무게/ 그 청명한 가슴 울림/ 구름--- 구재기의 '가을하늘 1' 전문

 

 풀풀 날고 있는 구름을 바라보다 이달봉 정상에서 저쪽 이달이촛대봉 위를 바라보니, 거기에도 구름이 흐르고 있다. 이 두 봉우리는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 한 쌍의 팽팽한 젖가슴으로 보이기도 하고, 형제처럼 구별되어 보이기도 한다. 주변과 잘 어울리는 섬잔대를 카메라에 담고 부처손이 박혀 있는 커다란 바위와 잡목의 어울림을 즐기면서 정상에 오르니, 이곳 정상에도 무덤이 하나 고즈넉이 누워 있다. 그럼 이 구름 흐르는 산봉우리는 사바세계가 아니란 말인가?

 

(오름 위를 흐르는 구름)

 

▲ 쪽빛 바다에도 벌써 가을이

 

 아직은 얼음을 채운 냉수를 찾을 만큼 더운 한낮이지만 김치전골 냄비가 끓은 속에서도 한가히 앉아 소주를 들이켜도 그렇게 더운 내색들은 않는다. 점심을 먹은 음식점 '도치돌가든'을 나와 중산간 도로로 명월(明月)로 향한다. 원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으로 복원해 놓은 명월진성에 올라 거의 완성되어 가는 남문루를 바라보며 탐라순력도 얘기도 했고, 이것은 증축이나 개축이 아닌 복원이라고 했더니, 모두들 그 뜻을 알아차리고 웃는다.

 

 다음에 찾아간 곳은 명월대. 차를 세울 곳이 없어 폐교된 명월초등학교에 내려 오랜만에 시골 초등학교의 교정을 즐긴다. 교실은 갈옷 만드는 '몽생이'라는 상표의 패션 작업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여름에 감물을 들인 천들이 곱게 물든 채 개어져 있고 여러 가지 상품들이 옷걸이에 걸려 있다. 썩 마음에 들진 않았으나 모자 하나를 사고 나와 명월대(明月臺)로 갔다. 지방기념물 제7호로 지정된 명월대는 옛 선비들이 모여 시회(詩會)를 베풀고 한량들이 모여 주연을 베풀던 경승지이다. 비석에 쓰인 호남 명필 연농 홍종시(硏農洪鍾時)의 글씨가 빛난다. 이어지는 지방기념물 제19호 팽나무군락을 보며 다시 차를 돌렸다.

 

(김녕사굴의 전설을 형상화한 작품)

 

 금릉 석물원(金陵石物園)은 한림읍 금릉리에 있는 야외 석물(石物) 공원인데, 40여 년 간 돌하르방을 만들어 온 명장(名匠) 장공익 옹이 3만 3000㎡대지에 현무암으로 조각한 작품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그가 제작한 돌하르방과 세계 불교 법왕이었던 일붕 서경보 스님의 석상을 비롯해서 해녀상, 동자상, 물허벅을 지고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상을 비롯해 제주의 전설을 돌로 표현한 작품 등, 제주민의 생활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조각품들이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대통령과 총리, 지도자들이 제주도를 방문하였을 때 선물하였던 돌하르방의 모형도 있다.

 

 마지막 오면서 들른 곳은 협재 해수욕장이었다. 비양도가 환히 들여다보이는 이곳에 들른 것은 탐라순력도에 '비양방록(飛揚放鹿)'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교래 벌판에서 생포한 사슴을 비양도에 방사(放飼)하는 내용인데 섬으로 직접 갈 수가 없어 섬을 바라보며 이야기 할 수밖에. 설명하면서 흘낏 바라보니, 낮 더위를 못 참은 몇 분이 물 속으로 풍덩풍덩 들어가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하늘빛을 닮은 물빛도 계절의 흐름을 속일 수는 없는 법. 그래, 저 맑은 가을 하늘을 누가 가리랴.

 

(바다 멀리 비양도, 그 위로 떠도는 구름 한 조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