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생물의 보고 바다. 9/14. 아침 사계리
해안)
♣이 글은 <제주문화예술> 2003 여름호에 실렸던 '옛날을 생각한다④'입니다.
▲ 신토불이(身土不二)는 좋은 것이여
오늘 우리가 먹는 음식물 중에 외국에서 수입하지 않은 식품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 본 일이 있다. 우선 인스턴트 식품의 주원료가 되는 밀가루, 옥수수, 우유 가공품, 콩, 커피, 초콜릿, 쇠고기…. 이 정도만 들어도 혀를 내두를 지경인데, 심지어는 과거 우리 나라의 주 수출품이던 인삼이나 생선류도 값이 싸다는 이유로 마구 들여온다. 횟집 수족관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참돔, 점성어, 농어, 우럭, 오징어…. 물론 제주도에서 잡힌 고기도 있지만 잡어와 양식 넙치를 제외한 대부분의 활어들은 중국에서 수입한 것들이다.
이들 중 농산품은 농약 잔류와 유통 중 장시간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쓴 여러 가지 방부제, 수입 활어들은 양식할 때 항생제를 남용한 것들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느 식품인들 믿고 먹을 게 있느냐고 반문할는지 모르지만 요즘 늘어나는 성인병과, 체격은 커지는데 비해 점점 약해지는 학생들의 체력을 보면, 그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가 있다. 당장에 그 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에, 그러려니 하고 그냥 지나치고 있지만 이쯤에서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수수밭을 지나다가. 8/13. 신흥리 해안도로)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어딘지도 모른 곳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생산해내는 음식의 재료가 되는 것들을 피하는 가장 바람직한 일은 스스로 가꾸어 먹는 일이다. 지금 주변이나 농촌에는 놀리는 땅이 많다. 텃밭이나 자신의 땅이 없을 경우, 이웃 또는 아는 사람끼리 짝을 지어 적당한 곳의 밭을 빌려도 된다. 그렇게 하여 정성껏 지어내는 농산물이야말로 안전하고 확실한 식품이 될 것이다. 또, 그것이 자신이 씨뿌리고 거두어낸 땀이 결정체이기에 맛은 더욱 유별나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직접 재배하지 못할 경우, 아파트 줄 모임이나 반상회 때 발의하여 믿을 수 있는 농가에 계약 재배를 해도 좋겠다.
또, 하나는 자연에서 식품을 얻는 일이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물때에 맞춰 시간을 내서 시내를 벗어나 오염이 안된 바다로 나가 자연관찰을 하면서 구멍 낚시도 해보고, 돌을 뒤집어 게나 고둥을 비롯해서 소라, 오분자기, 군부, 삿갓조개, 말미잘, 거북손, 해삼, 군소, 담치 등을 잡고 모래가 있으면 조개도 잡는다. 바위가 많은 곳이라면 미역, 미역새, 톳, 모자반, 패, 파래, 청각, 우뭇가사리 같은 해조류도 뜯어도 괜찮다. 봄이면, 소풍 삼아 산이며 들에 나가 자연 속에 산재한 고사리나 산나물을 뜯어다 반찬을 만들어 먹는다.
(수족관의 한치. 9/7. 표선 당캐 테우식당)
▲ 제주의 국[湯] 문화
제주 사람들은 국을 먹으면서 살아왔다. 아니, 반찬 없이는 밥을 먹을 수 있어도 국 없이는 밥을 못 먹었다. 척박한 땅, 게다가 가뭄 때문에 곡식을 거둘 수 없어 밥 지을 쌀이 없었던 흉년에는 국을 먹고 끈질긴 삶을 이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갑인년 흉년에도 먹당 남은 게 물'이라고, 맹물에 된장만 풀어놓아도 국이 되고, 해산물이면 해산물, 채소면 채소, 어떤 재료를 가지고도 국을 끓이는 방법을 터득했다. 본토 사람들이 주로 찌개를 선호하는데 비해, 제주 사람들은 국을 두어 그릇 들이켜야 뱃심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기에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 구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국을 끓여야만 했을 것이다.
장례나 잔치 같은 큰일이 있으면 돼지를 잡는다. 고기를 삶았던 국물은 맛있고 영양가가 풍부하다. 여기다가 말려두었던 모자반을 빨아 썰어 넣고 소금으로 간만 하면 '몸국'이 된다. 먹을 때 쪽파를 채 썰어 뿌리면 한층 입맛을 돋운다. 밥에, 몸국에, 김치만 곁들이면 고기 없이도 사나흘 동안 그 많은 일가친척들과 일꾼을 대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장례를 치르는 날 새벽 동원된 역군들을 상대로 '국 두어 그릇 드르싸사 행상 매주기'하며 양동이에 멀건 국물을 들고 다니면서 "몰국! 몰국!" 외치던 풍경을 잊을 수 없다. **'몸국'과 '몰국'의 'ㅗ'는 '아래아'임.
(모든 횟국에 들어가는 부추. 9/5. 이것은 부추꽃)
하기에 하찮은 물고기를 가지고도 국을 끓이는 지혜를 발휘했다. 누가 멸치를 가지고 국을 끓일 생각을 먼저 했을까? 내가 자랐던 곽지 바다는 여름철멸치 어장이었다. 돌고래나 고등어, 갈치 같은 큰 고기들이 멸치를 몰아 오면 밖으로 그물을 둘러 모래사장 위로 끌어올린다. 저녁에 시작한 멸치잡이가 새벽까지 계속되면, 먼저 끌어올린 멸치를 가져다가 머리와 창자를 발라내고 어린 배추를 넣어 '멜국'을 끓여 갔다. 푸른 나물 사이로 뾰얀 속살이 드러난 멸치를 건져 먹는 맛과 그 국물이 베지근함이란!
갈치를 가지고 국을 끓일 생각을 했던 건 제주도여서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냉장시설이 덜 발달되고 운송이 느렸던 옛날, 싱싱하게 갈치를 전달받지 못했던 본토에서는 주로 찜을 하거나 구워먹을 뿐이었다. 갈치가 한창 잘 잡히는 시기에 맞춰 주렁주렁 달린 시퍼런 호박을 썰어놓고 끓여낸 갈치 호박국의 맛을 본토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그렇게 음식의 궁합이 잘 맞아떨어질 수는 없다. 그 뿐이 아니다. 옥돔이나 장태, 미역치는 미역이나 무를 넣고 끓여야 제 맛이 난다는 것을 간파해 낸 것도 대단한 지혜가 아닐 수 없다.
(공천포 식당에서. 4/26. 물회 재료로 쓰기 위해 손질하려고 놓아둔 자리돔)
▲ 횟국을 개발해 낸 조상들
지금은 본토로 번지기 시작했지만 횟국을 개발해낸 것도 우리 선조다. 과거 역사 기록이나 전설에는 제주도에 가뭄이 매우 잦았던 것으로 나와 있다. 한여름 가뭄에 타들어 가는 농작물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목이 탓을 것이다. 그래서, 그 갈증을 해소시켜 줄 것은 아무래도 바다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테우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여 위에서도 쉽게 잡을 수 있는 자리돔, 이 자리돔이야 말로 제주 도민의 반찬거리 역할을 도맡아온 고기였다. 젓을 담가서 일년 내 먹기도 하고, 큰 것은 구워 먹고 작은 것은 지져 먹고. 자리돔을 장만하는 어이를 못 참아 강회나 물회를 하는 중에 통째로 질겅질겅 씹어먹기도 했다. 중간 크기의 자리돔을 골라 비늘을 벗기고 머리를 잘라낸 다음 지느러미를 자르고 내장을 깨끗이 빼낸 후 어슷하게 썬 것과, 오이, 들깻잎, 부추, 풋고추를 모아 양념된장을 풀어놓은 뒤 식초와 참기름을 친 자리물회에 초피나무 잎을 넣으면 더욱 맛이 있다. 머리는 버리지 말고 칼로 으깨어 국물을 우려 넣어야 더욱 배지근한 맛이 난다.
옥돔물회도 비슷한 과정으로 만드는데, 걸쭉하게 만들면 숙취 해소에 그만이다. 자리물회는 나날이 발전되어 이제는 날로 먹을 수 있는 모든 해산물로 물회를 만들게 되었다. 어랭이(놀래기)는 물론 오징어나 한치, 쥐치, 소라, 전복, 해삼, 조개, 하다 못해 군부까지도. 이 횟국들은 요즘 얼음이 곁들여지면서 한결 시원한 맛을 더하고 있으며,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내용물들의 독특한 맛이 물회를 차별화 시키는 요소이다. 이러한 횟국에서 냉국으로의 전환도 주목할 만하다. 냉동 오징어를 데쳐 썰어낸 것을 넣고 오이 냉국을 만든다든지 삶은 배추나 유채나물, 양파를 곁들여 된장을 풀어만든 냉국도 맛이 있다.
(어렸을 적 많은 해산물을 잡던 고향 바닷가. 8/24. 곽지해수욕장)
▲ 주위에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국으로 개발
농사일을 하는 틈틈이 계절에 맞춰 해안가로 나가 뜯어온 해초도 훌륭한 국거리가 된다. 미역은 말렸다가 제사나 생일, 그리고 분만시에 국거리로 활용하는가 하면, 날미역을 데쳐 내어 냉국을 해먹는다. 톳 역시 늦은 봄에 채취해서 말렸다가 수시로 냉국을 해먹을 수 있다. 봄이면 파래나 미역새를 뜯어다 산뜻한 국을 끓일 수 있으며, 청각 역시 여름에 따 말려 두었다가 냉국을 해먹거나 횟국에 넣으면 좋다. 지금은 거의 공동으로 채취해서 본토로 나가고 있지만 옛날에는 우뭇가사리를 틈나는 대로 뜯어다 바래어 냉국거리로 활용했다.
한가한 시절이 돌아오면 바다에 나가 돌을 뒤집어 게를 잡아다 반찬을 해먹든지 국을 끓이거나 죽을 쑤어먹는다. 칼슘이 풍부해 특히 무릎 아픈데 좋다는 게국은 게를 빻아 즙을 짜낸 뒤 그 즙을 미역과 함께 넣어 끓인다. 성게 알을 모아 끓여내는 성게국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모래가 있는 해변에 가서 물써기를 기다려 모래톱에서 캐어낸 조개로 끓인 국물은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바위틈에 붙어 자라는 홍합 비슷하게 생긴 담치도 조개와 같은 국물을 낸다. 고둥(보말)도 맛있는 보말국의 재료가 된다.
(수족관의 소라들. 7/13. 사계리 만미식당에서)
물론, 국은 우리 나라의 식생활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음식이었다. 옛날부터 상을 차릴 때 밥과 나란히 놓았다. 국은 건더기가 되는 많은 재료와 국물의 맛을 내는 주된 조미료인 간장·고추장·된장 등에 따라 각각 다른 명칭이 붙으며 그 종류도 많다. 국의 재료로는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양고기 등의 육류와 생선·조개 등의 어패류, 배추·무·시금치·감자·호박 등의 채소류와 국의 맛과 간을 맞추는 간장·된장·고추장·소금 등을 써 왔다.
제주도에서는 예로부터 국을 즐겨왔고 국 없이는 식사를 못할 정도로 중요시했다. 그런 이유로 본토와는 다른 국문화가 창조되었고 끊임없이 토속 음식으로 개발하여, 오늘날에는 중요한 관광 상품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집에서 식사할 때에도 외지에서 들어온 인스턴트 식품이나 재료는 될 수 있는 대로 배제하고, 반찬을 줄여 국 위주의 식사를 하면 어떨까? 그러면 건강에도 좋고 가계비 지출도 줄일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잘 익은 호박. 9/14. 한수리)
'향토문화 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늦가을의 정취를 찾아서 (0) | 2004.01.20 |
---|---|
저 맑은 가을 하늘을 누가 가리랴 (0) | 2003.09.29 |
유월스무날과 남펭날의 지혜 (0) | 2003.08.25 |
[역사기행] 의녀반수 김만덕의 삶 (4) (0) | 2003.07.29 |
[역사기행] 의녀반수 김만덕의 삶 (3) (0) | 2003.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