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시절이 하 수상하니

김창집 2005. 11. 16. 16:13

▲ 한경면 저지리 마중오름 답사기[2005. 11. 13.]

 

 

 오늘은 11월 둘째 주 회원의 날이어서 계획된 오름을 오르는 날이다. 14명이 모여 있는 오바 앞에 모인 회원들은 시원치 못한 날씨 탓에 어딘지 모르게 안정이 되지 못한 느낌이다. 흐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비가 온다는 예보는 없는 터라 안심해도 좋으련만 기대했던 쾌청한 가을 날씨가 아닌 때문이리라. 오늘 따라 일기에 너무 민감한가?

 

 오늘에 오를 오름의 면면을 살펴보면 1년 내내 무관심했던 한경면에 산재한 오름들인데 그렇게 높지도 않고 색다른 볼거리도 없어 그냥 미루어 두었던 곳들이다. 도내에 산재해 있는 368개의 오름 중에 어느 것은 좋고 어느 것은 나쁘다고 무시할 수도 없지만 1년 또는 2년에 한 번쯤은 방문해 주어야 오름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아 일부러 계획에 넣은 것이다.

 

 * 싱싱한 쑥부쟁이

 

 점심 때 모슬포에 가서 방어 축제에 참여해 회 한 점 먹어보자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 뒤 3대의 차에 나눠 타고 서부관광도로를 질주했다. 만추(晩秋)의 길가에는 억새가 허옇게 센머리를 풀어 손짓하고 밀감 따는 농부들의 손끝에서 묻어나는 밀감 향기가 그윽하다. 이시돌 목장을 통해 금악리를 거쳐 새로 조성한 저지예술인마을로 들어가 올해 문을 연 방림원 옆길로 오른다.

 

 200m쯤 들어간 곳에 북제주군에서 세운 마중오름 간판 구조물이 서있고 그 아래로 비석이 있다. 이 마을에서는 옛날 못의 물을 먹어야 했던 곳이기 때문에 마을의 식수용 못을 만들 토지를 내놓은 훈장 조종무(趙宗武)를 기념하는 비석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은혜에 보답하려는 소박한 시골 인심이 백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다사롭기 그지없다.   

 

 * 여우팥 열매

 

 차에서 내려 오름에 오를 차비를 차리고 골목에 막 들어서는데 아래 밭에서 걷어올린 줄기에 수많은 개똥참외가 무늬도 선명하게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렇게 많은 개똥참외를 보기는 참으로 오랜만이다. 저게 싱싱한 줄기에 달려 익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냥 사진을 찍어 나중에 보았더니, 어지러워 못 쓰겠다.

 

 이제는 닦지 않아 이끼 속에 갇힌 연못인 되빌레물을 바라보며 오름 입구에 다다르니 빨갛게 익은 베풍등이 우리를 맞는다. 이곳은 그늘인데도 이제야 자금우와 맥문동이 자리를 잡고 있다. 마중오름(마종이, 馬中岳)은 한경면 저지리 산2143-18번지 일대에 표고 168.6m, 비고 44m의 나지막한 오름이어서 단숨에 능선까지 오를 수 있었다. 

 

 * 작살나무 열매

 

 지난번에 올 때는 남쪽으로 진입했는데 오늘은 제대로 오르는 셈이다. 지대가 낮은 곳이어서 그런지 말오줌때 열매가 이제야 싱싱하게 익어 벌어졌다. 철조망을 넘어 띠와 억새가 우거진 정상으로 오른다. 멀리 마을 너머로 저지오름이 두렷하게 보이고 길게 뻗친 오름 줄기가 저만치 소나무를 이고 있다. 

 

 한쪽에 보리수나무 열매가 있어 가르쳐주었더니 아직은 조금 덜 익었단다. 빛 고운 작살나무 열매와 여우팥 열매를 찍고 남쪽 자락으로 가는데 멀리 노루 두 마리가 놀라서 도망친다. 벌써 이곳까지 내려온 노루를 보니 혹시 이곳을 근거로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앞선다. 과거 소나무를 베어 그루터기만 앙상할 때는 누가 이렇게 해놓았는지 화가 났었지만 지금은 뿌리조차 찾을 길 없다. 

 

 * 노박덩굴 열매

 

 지금까지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 그런지 봄에 피는 꽃 여름에 피는 꽃 구별 없이 얼려 피었다. 개성이 강해서 그렇다고 하는 우스개를 들었지만, 벌노랑이, 뱀무, 패랭이꽃, 아기달맞이꽃, 쑥부쟁이 등이 섞여 피어있는 것을 보면서 요즘 돌아가는 세태를 닮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서 나오는데 윤노리나무는 제대로 물들었다. 노박덩굴도 누렇게 잎사귀를 물들이며 그 열매껍질을 열고 빨간 알을 드러낸다. 별로 높은 오름이 아닌데도 둘레는 1,613m로 제법 큰 오름이다. 서쪽사면에는 넓은 말굽형 화구가 벌어지고 묘지가 드문드문 들어섰는데, 북쪽 사면도 말굽형으로 화구가 벌어져 2개의 화구가 등을 맞대어 하나의 화산체를 이루고 있는 복합형 화산체로 볼 수 있다.

 

 하늘타리가 나무에 달려 있어 그것을 찍고 늦게 와보니 앞에서 인심 좋게 생긴 아저씨가 차에서 밀감을 나누어주고 있다. 이 마을 이장을 지내셨다는 분인데, 방문해준 손님들에게 이 정도 나누어준 것이 무슨 대접이겠느냐는 말에 아직도 시골 인심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며 몇 번이고 고맙단 인사를 드렸다. 그 때문일까? 다음 답사지인 마오름으로 가면서 껍질을 벗겨 한 갑을 입에 넣으니 침이 자르르 흐른다.

 

 * 하늘타리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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