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오름 이야기

산방산에 부는 가을바람

김창집 2006. 9. 7. 13:15

 

* 동쪽으로 오르는 코스 중간쯤에 서있는 바위

 

▲ 2006. 9. 3. 일요일 맑음

 

 9월 들어 모처럼 선선하고 맑은 날씨가 되리란 기대를 갖고 '오늘은 어딜 가나' 하면서 모이는 장소에 이르는 순간 퍼뜩, 산방산이 생각났다. 여름 습기가 많은 날은 더워서 오르기 힘들고 시계가 불량하면 오른 값도 못하는데 이런 날은 금상첨화일 것 같았다. 지난 3월 탐문회 회원들을 이끌고 갔다가 작년에 화재 때문에 산화 경방 기간에는 산행을 금지시킨다고 하여 돌아온 뒤로 가지 못한 산이다.

 

 뒤에 오던 승용차의 타이어 펑크 때문에 앞차에 탐승했던 회원을 나머지 차에 분승시킨 뒤 현장에 도착해보니, 오늘 따라 많은 사람들이 산방산에 몰리고 있었다. 아직 채 끝내지 못한 도로 확장 공사 때문에 어질러진 도로 이곳 저곳에 차를 세우고 벌써 올라간 팀도 있고, 이제 막 도착하여 산에 오를 채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일행을 천천히 올라가도록 한 뒤 길가에 남아 뒤에 오는 차를 기다렸다. 2∼30분은 족히 넘겨 늦게 도착한 일행과 함께 산으로 오르며 전화기를 보니 10시가 다 되어 간다. 제주시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1시간 반이 소비돼 버린 것이다. 먼저 간 일행을 쫓아 빨리 걸어 올라가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매미들은 마지막 남은 여름이 아쉬운지 사방에서 경쟁하듯 울어댄다. 하기는 저 노래 한 열흘 부르려고 땅속에서 7년여를 준비했을 터….

 

 * 선인탑에서 보이는 바위와 용머리

 

▲ 9월 들어 선선해진 산의 날씨

 

 그늘로 들어서니, 숲 속에서 서늘한 기운이 온 몸을 엄습한다. 밤사이 식은 돌과 숲을 흐르는 공기가 아직도 데워지지 않은 탓이리라. 아무튼 9월 들어 더위가 한풀 꺾인 것은 확실하다. 연 40여 일간 대기를 달군 열대야의 마지막 몸부림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는 지구의 온난화와 함께 제주도의 기후가 아열대로 바뀌었단 소리를 수없이 들어왔다.

 

 몇 년 전 조선일보 '산' 편집부장과 사진기자를 데리고 함께 오르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습한 날씨에 바람 한 점 없는 이곳을 오르면서 흐른 땀이 중간도 안 되는 이 곳 무덤에 이르렀을 때는 옷을 적시고도 남아 뚝뚝 흘렸다. 옷을 벗어 쥐어짜고 무덤에서 주변을 바라보며 구름 모자를 쓴 산꼭대기를 포함한 주변 풍경을 찍던 사진기자를 풀모기들이 합세하여 맹공격을 했다.

 

 * 북쪽 바위에서 보이는 사계리 해안과 끝 송악산. 그너머로 보이는 조그만 가파도와 마라도

 

 사진기자는 촬영을 하느라 수없이 모기에게 물린 곳을 북북 긁으며, 좁고 낮은 숲길로 접어들자마자 한껏 울어대던 매미가 갑자기 들어선 틈입자에 놀라 한꺼번에 날아오르려다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며 푸드득푸드득 사람의 얼굴에 날려들기도 하였다. 처음 제주도에 왔다는 이 사진 기자는 기겁을 하여 곤충이 인간을 공격하는 줄 알았다고 표현했다.

 

▲ 새가 만들어 놓은 숲

 

 오르는 길은 급경사가 심한데 미끄러짐은 생각보다 덜하다. 뒤에 오던 황 선생이 벌의 습격을 받아 코에 서너 방 벌침을 맞았다고 했다. 통증 정도를 물어보고 심하지 않다고 하여 침이나 오줌을 바르라고 웃으며 올라가려니 하나씩 둘씩 내려오는 사람들도 보인다. 인사를 하고 일제가 파놓은 굴에 머물러 유심히 살피고 다시 올라가는데, 그제서야 제일 뒤에 처져 있는 우리 회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 선인탑에서 산방산 너머로 보이는 한라산

 

 이제 얼마 안 남았다고 힘을 북돋아주며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이곳의 식생은 거의 상록수로 구성되었다. 나무줄기가 검은 것은 식나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등속이고, 줄기가 하얀 것은 동백나무다. 거의 400m나 되는 바위로 이루어진 종상화산체에 이들 나무를 있게 한 것은 아무래도 새들이다. 그들은 맛있는 열매를 먹고 딱딱한 속껍질은 소화를 못해 이곳에 와서 배설을 했기에 돌 틈에서 발아한 나무가 어렵게 자라 씨를 떨어뜨려 이렇게 많은 후손을 퍼뜨린 것이다.

 

 도토리 열매가 달리는 나무의 숲을 만드는 것은 다람쥐라 하나 이곳에는 다람쥐가 없으니, 새가 그 직분을 담당한 것이다. 그래서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는 이 정상에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동백과 구실잣밤나무는 작은 열매를 따먹은 새가 더러는 소화를 못시켜 배설해 놓은 것이 씨앗이 되었으리라. 한라산 남쪽으로 가보면 웬만큼 높은 오름 정상에는 몇 백 년 된 구실잣밤나무가 능선을 타고 늘어서 있는데, 그것도 그렇게 해서 그곳에 존재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 선인탑에서 바로 아래로 보이는 형제섬

 

▲ 신선처럼 선인탑에 앉아

 

 정상에 오른 회원들과 조우해서 그곳 정상 숲에서 조금 쉬었다가 바다 쪽으로 조망이 가능한 선인탑에 먼저 온 팀이 자리를 비우면 우리가 가자고 해서 쉬었다. 아무래도 나이를 못 속이는 회원들과 처음 산행을 시작한 회원은 확연히 구분된다. 오늘은 한 회원이 중3 아들을 데리고 올라왔으니 이 학생에게 뭔가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겠다.

 

 선인탑에 오르니 앞이 환히 트인다. 아직 완전히 맑진 않았지만 시계(視界)만큼은 양호한 편이다. 동쪽으로 한라산, 그 오른쪽으로는 섶섬, 문섬, 범섬까지 보이고, 제지기오름도 조금 머리를 내밀었다. 눈앞에는 용머리로 시작하여 형제섬, 송악산, 그 너머로 가파도, 마라도가 손에 잡힐 듯하다. 북쪽으로는 단산, 금산, 모슬봉, 가세오름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의젓이 앉아 있다.

 

 * 산방산 북쪽으로 보이는 들판과 단산, 모슬봉, 가세오름

 

 산방산 서쪽과 북쪽 등 주변은 평평한 들판에 아직 여름작물을 파종하지 않아서 붉은 색의 빈 밭으로 남아 있는 곳이 많다. 사계리 해안으로 사람발자국 화석이 있는 해변의 파도가 멋있게 펼쳐진다. 그 위로는 조개무덤 즉 패총지역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저기 바다에서 조개를 잡고 돌아오던 그 사람들이 발자국이 찍힌 것이다.

 

▲ 해군기지 유치 문제로 시끄러운 화순항

 

 남쪽으로 안온하게 펼쳐진 화순해수욕장과 화순항…. 요즘 한창 시끄러운 곳이다. 한동안 뜸했다 싶더니만 화순항에 해군기지가 들어선다고 반대와 찬성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요란하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평화의 섬에 군사기지가 들어서느냐고 하는 목소리는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다. 사실이지 오키나와에 군사기지가 들어섰을 때 그 주민들이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죽어 갔는지를 생각하면 그런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 산방산 동쪽 능선에서 보이는 화순해수욕장의 일부와 화순항

 

 냉전시대, 모든 것에 앞서 군이 지배하던 사회에서는 반대하는 것부터가 대역죄가 되었지만 오늘날과 같은 시대는 주민의 입장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사회 행정부의 도리다. 게다가 미군부대까지 틈을 노리는 것을 보면 아무리 입지적 조건이 좋다하더라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이 일어나거나 테러가 생긴다면 그 목표는 군사시설이 되기 때문이다.

 

 일부 군 관계에 근무하던 분들의 모임이나 주민 중 일부는 그런 부대가 들어오면 더 든든하다는 말과 주민에게 주어지는 약간의 혜택, 그리고 무엇보다도 군사도시가 되면 주민들이 일자리가 창출되고 장사를 해먹을 수도 있지 않으냐는 우스꽝스런 논리에 솔깃해 찬성으로 나서는 것이다. 나는 군부대가 있는 도시에 많이 가보았으되 정상적으로 발전되었다기보다는 군사 문화가 중심을 이루는 편향적인 면을 볼 수 있었다.

 

 * 동쪽 능선 안으로 보이는 산자락

 

▲ 산방산 주변은 넓은 평야가

 

 사진 촬영과 주변 둘러보기를 기다려 새로 온 분들과 특히 중3 학생을 위하여 제주도가 생겨났을 때부터 오름이 생긴 이치, 산방산에 얽힌 이야기, 주변의 오름들과 바위의 생성, 산방산의 구름모자 등 일련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어느 정도 이르렀을 때 너무 지루하지 않게 대충 끝내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도록 했다. 

 

 이곳은 좀 좁고 다른 분들이 왔을 때 자리를 내어줘야 하기 때문에 내려가 저 아래쪽에 있는 바위에 올라가 조망한 다음 정상 부근에서 입가심을 하기로 했다. 이곳과는 달리 아래쪽에는 바위로 가는 곳이 위험하기 때문에 신발에 묻은 흙도 털고 조심조심 오르기를 당부했다. 그곳에의 조망은 그 밑으로 펼쳐진 오름의 경사면과 그 앞의 너른 평야지대를 관망하기에 그만이다.

 

 * 동쪽 능선에서 대정쪽으로 보이는 능선과 안성, 보성, 인성리 마을

 

 그곳의 바위 밑에는 해안을 살필 수 있는 곳을 만들려 했는지 서너 사람이 들어가도 될만한 굴이 파여 있다. 돌아오다가 보니, 펑크난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 늦게 도착한 부회장이 선인탑에 앉아 있다. 혼자 너무 허겁지겁 오르다가 다리에 쥐가 나 있었다. 그래서 산행 할 때는 언제든지 여유를 갖고 해야지, 그렇지 않다간 무슨 변수가 생기지 모르는 것이다.

 

▲ 전설 많은 산방산에서 맛있는 새참을

 

 옛날 한 사냥꾼이 한라산에 사슴사냥을 갔다가 잘못하여 활 끝으로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건드려 화가 난 옥황상제가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내던져 그것이 날아와 박힌 것이 산방산이고 그 패인 자리가 백록담이 되었다는 전설로부터 산방산의 여신 된 산방덕의 전설과 진시황이 용 모양의 꼬리를 잘라버렸다는 용머리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신령스런 산이다. 이런 산을 오를 때는 마음가짐을 경건하게 하고 몸은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 동쪽 능선에서 본 한라산과 오른쪽 군산

 

 점심 도시락을 준비한 건 아니지만 싸온 먹거리들은 풍성했다. 고구마와 감자 찐 것, 삶은 달걀, 떡, 오이, 하우스 감귤, 거기에 술안주라고 하면서 백숙까지 올라왔다. 생수병에 담아 온 집에서 담근 오디주와 송순주 한 병씩을 비운 뒤, 쥐가 난 부회장과 도우미 일행을 빼고 나머지는 남쪽 능선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바깥쪽은 절벽이어서 가는 곳마다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준 뒤 앞장서 숲으로 들어갔다.

 

 중간 중간에 조금 덜 위험하고 전망이 좋은 곳을 골라 주변을 조망하는데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한 곳에 보니, 동백나무겨우살이가 퍼져 있는데, 이건 사스레피나무에도 자라고, 심지어 겨울에 잎이 지는 섬쥐똥나무에도 기생하고 있다. 이 녀석은 암 예방과 치료약에 쓴다는데 이곳은 특이한 지형이어서 주변의 나무마다 전부 옮겨 사는가 보다.

 

 * 동쪽능선에서 만난 동백나무 겨우살이

 

▲ 희귀식물이 많아 천연기념물로 보호

 

 395m에 달하는 산방산은 해안가에 위치해 있어 표고가 곧 비고인 셈이여서 매우 높고 가파르다. 화수해수욕장 쪽이나 사계리 쪽에서 보면 엄청나게 높아 절벽으로 형성된 단순한 종 모양을 하고 있으나, 실제로 올라와서 보면 이곳저곳으로 능선이 뻗치고 울퉁불퉁한 곳도 있어 보는 곳마다 풍경이 다르고, 가는 곳마다 생김새가 다르게 보인다.

 

 산 이곳저곳에는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까마귀쪽나무, 생달나무, 참식나무 등 상록수림이 울창하고, 특히 암벽에는 암벽식물인 지네발란, 섬회양목 등 희귀식물이 자생하고 있어 천연기념물 182∼5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조사된 관속식물은 79과 186속 201종 33변종 1아종으로서 모두 255종이다. 산방(山房)은 산 속의 굴을 뜻하는 말인데, 산방산 남측 해발 150m쯤에 해식동굴이 있어 산방산이라 이름지은 것이다.

 

 * 동쪽능선 안으로 본 산자락

 

 하산 길에 들어서도 비슷한 숲이다. 저쪽 절로 내리지 않고 올라온 길로 찾아 내리려다가 길에 면한 태양이 비치는 곳에 우거진 가시나무들을 헤치느라 고생한 것 외에는 별 탈 없이 내려오니, 몇 번을 오른 사람이나 처음 온 사람이나 모두들 흐뭇해했다. 시간이 벌써 2시가 되어 배도 고프고 우선 사계리 만미식당으로 가서 해물탕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 산방산 - 고혜경

 

서부 산업도로 타고
산방산으로 가는 길목
마지막 가을 정취
늘어진 억새풀 사이로
고운 햇살 속 입김 되어
마음을 부서트리고

 

멀리서 바라다보는 산방산
투박한 농부의 낯빛으로
흙먼지 풀 풀 날리며
건넨 손길 금방이라도
영혼 깊숙이 호흡 속으로
넉넉함 채워 줄
정겨움으로 다가오는구나

 

산방산 아래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쪽빛 바다
시인(詩人)의 열린 폐부 속
혼이 담긴 생기로
흘러 들어 와
두터운 시름의 벽
저 멀리 파도 속
무명의 그림자로 떠나 보내고

 

생명의 풀 남기고 간
들판의 흔적마다
억센 바다 바람맞고
향기와 빛깔 잃지 않고 선
너를 바라봄이
갈증 없이 타오르는 
겨울의 유한한 생명력 되어
심장의 온기로 일어서게 하는구나

 

 * 산방산 위로 흐르는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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