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국내 나들이

추억의 부산 여행

김창집 2005. 12. 27. 00:21

△ 탐라문화보존회 경남 남부 답사 (2)

 

      2004년 2월 21일(토요일) 흐림

 

 

▲ 자갈치시장에서 회를

 

 부산광역시에 있는 수산물 시장. 중구 남포동(南浦洞)과 서구 충무동(忠武洞)에 있는 수산물 시장이다. 부산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으로, 자갈치란 이름은 지금의 충무동 로터리까지 뻗어 있던 자갈밭을 자갈처(處)라 불렀던 데서 유래하였다. 원래는 현재 부산시청이 있는 용미산(龍尾山) 동남쪽 해안과 남포동 건어물시장 주변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1930년대 남항(南港)이 매립된 뒤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이 곳의 장이 성장하게 된 것은 1889년 일본인들이 자국어민을 보호하기 위해 인근에 부산수산주식회사를 세우면서부터였다. 그곳으로 상인들이 몰리자 자갈치시장 상인들도 서서히 근대화를 모색하게 되었는데, 1922년에 이르러 부산 어업협동조합이 남포동에 건물을 짓고 위탁판매 사업을 시작함으로써 자갈치시장의 상인들이 구심점을 찾아 모여들었다. 

 

 이에 따라 부산의 어시장은 북항의 부산수산주식회사와 남항의 부산어협 위탁판매장으로 양분되었는데, 그 뒤 부산수산주식회사는 국내 최대의 어시장인 현재의 부산 공동어시장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남항에 출어하는 영세어선들의 어획물을 다루는 영세상인들이 부산어협 위탁판매장 주변에 모여 지금의 자갈치시장을 이루었다. 현재는 전용면적 7,243㎡에 부산어업협동조합·어패류조합 등 근대화된 어시장이 480여 개의 점포에서 주로 연안이나 남해에서 잡히는 대구, 청어, 갈치, 조개, 해조류 등을 판매하고 있다.

 

 

△ 영도 태종대(太宗臺)에서 보는 오륙도  
 
 부산 영도구 동삼동(東三洞)에 있는 명승지. 1972년 6월 26일 부산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다. 영도의 남동쪽 끝에 위치하는 해발고도 200m 이하의 구릉지역으로, 부산 일대에서 보기 드문 울창한 숲과 기암 괴석으로 된 해식절벽 및 푸른 바다 등이 조화를 이룬다. 옛날에 신선이 살던 곳이라 하여 신선대(神仙臺)라고도 부르며, 신라 태종무열왕 사후(射侯)의 장소였다는 속전(俗傳)에 따라 현재는 태종대라는 호칭이 보편화되었다. 

 

 오륙도(五六島)가 가깝게 보이고, 맑은 날씨에는 56km 거리인 일본 쓰시마섬[對馬島]이 해상의 흑점(黑點)처럼 희미하게 보이기도 한다. 6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영도등대가 섬 남동부의 가파른 해안절벽 위에 서 있고 부근에 신선대바위·망부석(望夫石)이 있으며 순환 관광로의 중간지점인 전망대에는 이곳 명물인 모자상(母子像)이 있다. 그밖에 인공해수(人工海水) 풀장인 '곤포(昆布)의 집'을 비롯한 위락시설과 바다낚시터 등이 있으며 너비 10m, 길이 4km 가량의 순환 관광로가 섬의 명소들을 누비며 지나간다.

 

 

▲ 오랜만에 보는 부산항  
 
 항내 수면적(港內水面積) 1,610만㎡. 주요 항만시설로는 접안 시설인 안벽 8,012m, 물양장 4,605m, 외곽시설로는 방파제 1,065m, 호안 7,527m가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항구로 항만법상 제1종항이다. 1876년(고종13) 2월 27일에 근대항으로서는 제일 먼저 개항하여 1세기에 걸친 축항과 항만시설의 정비로 한국 최대의 항만이자 내외무역의 관문이 되었다. 

 

 1910년 최초로 제1부두가 축조된 후 1945년까지 제2, 3, 4부두, 물양장, 방파제가 축조되었다. 1974년부터 착수한 세계은행(IBRD) 차관에 의한 부산항 개발 1단계 공사로 컨테이너와 양곡 전용부두인 제5부두, 고철, 광석, 석탄을 취급하는 제7부두, 특수화물만을 취급하는 제8부두, 국제여객·연안여객부두, 기존부두인 제1, 2부두에 대한 대대적인 개축, 정비 등으로 선박 접안(接岸)능력을 높여 최대선박 5만 t급 3척을 비롯한 52척의 대소형 선박이 동시 접안할 수 있고, 하역능력은 연간 700만t에서 1500만t으로 늘어나 국제항으로서 면모를 갖추었다. 

 

 

 1978년부터 제2단계 개발공사를 시작, 컨테이너 전용부두인 제6부두, 기존부두인 제3, 4부두, 중앙부두 제5물양장 개축공사를 하였다. 2단계사업의 완료로 전체 하역능력은 연간 1,500만t에서 1,860만t으로, 컨테이너 처리능력도 연간 20만 개에서 40만 개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부산항에 입항하는 외항선은 연간 7,895척으로 전국의 반을 차지하기에 이르렀고, 수출화물의 대부분을 담당하게 되자 점차 기능이 마비되었다. 또 북외항 입구에 컨테이너 부두와 방파제를 축조하고 보조항으로서 감천항을 개발하여 정부예산과 민자 유치로 양곡, 고철 등을 취급하는 전용부두와 어선 및 조선기지를 조성했다. 다대포항을 개발 북항에 산재한 합판공장과 저목장을 통합 수용할 수 있는 합판공업지원항으로 만들었다. 

 

 수출 화물은 주로 시멘트, 목재, 수산물, 기계류, 철재, 기타 화물이 있으며, 수입화물은 양곡, 유류, 무연탄, 목재, 염류, 기계류, 철재 등이다. 부산항에는 국내 유일의 국제여객 항로로서 부산∼일본 시모노세키[下關] 간에 5,000 t급 카페리가 주 2회 운항한다. 국제여객과 컨테이너 화물 등을 수송하고 연안항로인 부산∼제주간에 카페리 2척, 거제도와 한려수도 등을 연결하는 쾌속선 등 13개 항로에 19척이 운항한다.

 

 

△ 새로 놓은 광안대로(廣安大路)  

 

 부산 수영구 남천동과 해운대구 우동의 센텀시티를 연결하는 해상 다리. 부산시의 항로 및 산업 물동량의 원활한 우회 수송을 통해 수영로, 중앙로 등 도심 간선도로의 교통난을 완화하고, 해상 관광 시설의 역할을 제고할 목적으로 1994년 8월에 착공해 2003년 1월 6일 완전 개통하였다. 광안대교라고도 한다.

 

 총 길이는 7.42㎞로, 이 가운데 중앙 900m는 현수교이며, 접속교량은 6.52㎞이다. 2층 복층 구조의 왕복 8차로로 너비는 18∼25m이며, 사업은 부산광역시 건설본부가 맡았다.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동 49호 광장과 해운대구 우동 센텀시티 구간을 연결하는 다리로, 총 공사비는 7899억 원이 들었다.

 

 국내에서 가장 긴 교량으로, 서해대교보다 약 100m가 더 길고, 시간 대별, 요일별, 계절별로 구분해 10만 가지 이상의 다양한 색상을 낼 수 있는 경관 조명시설을 갖추었다. 국내 최초의 2층 해상 교량으로, 현수교 역시 국내 최대 규모이다. 또 국내 최대 규모의 3경간 연속 2층 트러스교를 현수교 양측에 360m씩 건설함으로써 광안해수욕장의 야경과 함께 부산광역시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통행료는 소형차 1,000원, 대형차 1,500원이다.

 

 

▲ 해운대해수욕장(海雲臺海水浴場)의 엘리지  

 

 부산 해운대구 중동(中洞), 좌동(佐洞), 우동(佑洞)에 걸쳐 있는 해수욕장. 백사장 길이 1.8km, 너비 35∼50m, 면적 7만 2천㎡이다. 수심이 얕고 조수의 변화도 심하지 않아 해수욕장으로서의 조건이 좋다. 숙박, 오락시설이 잘 정비된 국내 1급의 해수욕장으로, 국내 유수의 온천장까지 끼고 있어 해마다 여름철에는 50∼60만의 인파로 붐빈다. 

 

 원래 "해운대"라는 이름은 신라말의 석학 고운 최치원 선생의 자(子) "해운(海雲)"에서 따온 것을 고운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가야산으로 가던 중 해운대에 들렀다가 달맞이 등 절경에 심취되어 떠나지 못하고 머물렀는데 이 시기 동백섬 남단 암벽에 "해운대(海雲臺)"라는 세 글자를 음각(陰刻) 함으로서 이곳의 지명이 되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 해저 테마 수족관 - 부산 아쿠아리움

 

 부산 아쿠아리움은 부산 해운대구청과 한국 아쿠아리아 21 주식회사가 호주 오세아니스 그룹의 민자 유치 사업으로 해운대 해수욕장에 건설한 국내 최대 규모의 최첨단 "해저 테마 수족관"이다. 지상층은 시민 휴식 공간인 야외공원 및 주차장으로 구성되며, 지하1층에서 지하 3층까지 연면적 4천여 평의 국내 최대의 해양 수족관으로서, 지하1층은 시뮬레이터관, 테마식당, 휴게실, 기념품점이 자리잡고, 지하 2층과 3층은 수족관 시설이 있다. 

 

 수족관의 대표적인 전시관을 둘러보면 길이 3m 이상의 대형 상어가 전시되는 3천톤의 메인 탱크가 80미터에 이르는 270도 및 90도의 해저 터널과 어울려 장관을 이루며, 또한 상어를 비롯한 다양한 물고기와 함께 수영할 수도 있다. 수심 7미터에 달하는 산호초 전시관은 각양각색의 산호어류들이 한데 어울려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시 생물은 총 250종 3만5천여 마리인데, 포유류 수달 4마리, 파충류 2종 10마리 : 바다거북, 돼지코거북, 양서류 2종 8마리 : 중국장수도롱뇽, 한국도롱뇽, 조류 1종 30마리 : 자카스펭귄, 어류 210종 3만여 마리 : 그레이너스샤크, 나폴레옹피쉬, 무척추동물 34종 4천5백여 마리 : 해파리, 산호 등이다. 주요 전시종으로는 세계 최대의 민물고기인 피라루크, 살아 있는 화석인 앵무조개, 말굽게, 철갑상어, 아프리카레어, 세계 최대의 문어인 태평양대문어, 바다의 사냥꾼 상어 등이 있다.

 

 

▲ 해동 용궁사(海東龍宮寺)  

 

 부산 기장군 시량리에 있는 절. 고려시대 1376년(우왕2)에 공민왕의 왕사였던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창건하였다. 혜근이 경주 분황사(芬皇寺)에서 수도할 때 나라에 큰 가뭄이 들어 인심이 흉흉하였는데, 하루는 꿈에 용왕이 나타나 봉래산 끝자락에 절을 짓고 기도하면 가뭄이나 바람으로 근심하는 일이 없고 나라가 태평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이곳에 절을 짓고 산 이름을 봉래산, 절 이름을 보문사(普門寺)라 하였다. 그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930년대 초 통도사의 운강(雲崗)이 중창하였다. 1974년 정암(晸菴)이 부임하여 관음도량으로 복원할 것을 발원하고 백일기도를 하였는데, 꿈에서 흰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이 용을 타고 승천하는 것을 보았다 하여 절 이름을 해동용궁사로 바꾸었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웅전을 비롯하여 굴법당, 용왕당(용궁단),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은 주지 정암이 1970년대에 중창하였다. 대웅전 옆에 있는 굴법당은 미륵전이라고 하여 창건 때부터 미륵좌상 석불을 모시고 있는데 자손이 없는 사람이 기도하면 자손을 얻게 된다 하여 득남불이라고 부른다. 대웅전 앞에는 사사자 3층석탑이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3m 높이의 바위(미륵바위)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절이 폐허가 되고 한국전쟁 때 해안경비망 구축으로 파괴됨에 따라, 1990년에 정암이 파석을 모으고 손상된 암벽을 보축하여 이 석탑을 세우고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불사리 7과를 봉안하였다. 

 

 이밖에 단일 석재로는 한국 최대의 석상인 약 10m 높이의 해수관음대불, 동해 갓바위 부처라고도 하는 약사여래불이 있다. 절 입구에는 교통안전 기원탑과 108계단이 있고, 계단 초입에 달마상이 있는데 코와 배를 만지면 득남한다는 전설이 전한다.

 

 

△ 금정산성(金井山城)에서  
 
 부산 금정구와 부산진구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 석축산성. 사적 제215호로 길이 1만 7,336m, 면적 21만 6,429평. 동래온천장의 북서쪽 해발 고도 801m의 금정산정에 있는 한국 최대의 산성이었으나, 현재는 약 4km의 성벽만이 남아 있다. 산성의 위치나 규모로 보아, 신라 때 왜적을 막기 위하여 축조된 것으로 보이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증보문헌비고』와 『동래읍지』에는 1703년(숙종29) 경상감사 조태동(趙泰東)이 석축으로 개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707년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가 수축하였고, 1808년(순조8) 부사 오한원(吳翰源)이 동문(東門)을 신축하고 성을 보수하였으며, 1824년 부사 이규현(李奎鉉)이 성내에 건물을 짓고 진장(鎭將)을 배치하였다. 1970년에 4개 성문 중 동, 서, 남문이 복원되었다.

 

 

▲ 금정산 범어사(梵魚寺)  

 

 부산 금정구 청룡동 금정산(金井山)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절. 화엄종(華嚴宗) 10찰의 하나이며, 일제강점기에는 31교구 본산의 하나였다. 창건에 대하여는 두 가지 설이 있으나 그 중 『삼국유사』에 나오는 678년(문무왕18)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타당한 것 같다. '범어사 창건사적'에 의하면 당시 범어사의 가람 배치는 미륵전, 대장전(大藏殿), 비로전(毘盧殿), 천주신전(天主神殿), 유성전(流星殿), 종루(鍾樓), 강전(講殿), 식당, 목욕원, 철당(鐵幢) 등이 별처럼 늘어서고 360채의 요사(寮舍)가 양쪽 계곡에 꽉 찼다.

 

 사원에 딸린 토지가 360결(結)이고 소속된 노비(奴婢)가 100여 호에 이르는 대명찰(大名刹)이라 하였는데, 이 많은 것이 창건 당시 한꺼번에 갖추어졌다고 믿기는 어려우며 상당 기간에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 후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버려 10여 년을 폐허로 있다가 1602년(선조35) 중건하였으나 또다시 화재를 당하였고, 1613년(광해군5) 여러 고승들의 협력으로 중창하여 법당, 요전(寮殿), 불상과 시왕상(十王像), 그리고 필요한 모든 집기(什器)를 갖추었다. 

 

 현재 보물 제434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3층석탑(보물 250호)과 당간지주(幢竿支柱), 일주문(一柱門), 석등(石燈), 동, 서 3층석탑 등의 지방문화재가 있으며 이 밖에 많은 전각(殿閣), 요사, 암자(庵子), 누(樓), 문 등이 있다. 옛날부터 많은 고승들이 이 곳을 거쳤으며, 중요한 인물만도 의상을 비롯하여 그의 고제(高弟) 표훈(表訓), 낙안(樂安), 영원(靈源) 등이 있다. '선찰대본산 범어사안내(禪刹大本山梵魚寺案內)'에는 역대 주지(住持), 승통(僧統), 총섭(摠攝), 섭리(攝理) 등으로 구분하여 수백 명이 기록되어 있다.

 

 

♬ 유리벽 / 신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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